다키자키 시게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29일 오전 한-일 국장급 회담 참석을 위해 서울시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 외교 당국이 8개월 만에 직접 얼굴을 맞대고 강제동원 배상 판결 등 양국 현안에 대해 논의했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연내 한국에서 개최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를 위한 사전 준비기간을 생각할 때 올해 회의 개최는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29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다키자키 시게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과 2시간 동안 만나 강제동원 배상 판결, 한-중-일 3개국 정상회의,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 양국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외교부는 회담 뒤 내놓은 자료에서 “김 국장은 강제징용과 관련된 우리 입장을 재차 설명했고, 일본 정부와 피고 기업들이 성의 있는 자세를 보일 필요를 강조하는 한편 일본 정부가 부당한 수출규제를 조속히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다키자키 국장 역시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금화는 매우 심각한 상황을 부를 수 있어 절대로 피해야 한다. (한국에게) 일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서둘러 제시하도록 강하게 요구했다”는 뜻을 전했음을 밝혔다. 한-일의 국장급 외교 당국자가 직접 얼굴을 마주한 것은 코로나19 위기 전인 2월6일 이후 처음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양국 모두에게 어떻게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자는 공감대는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일 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지난달 16일 취임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참석하는 한-중-일 3개국 정상회의의 연내 개최에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 하지만, 스가 총리는 지난달 24일 문재인 대통령과 첫 전화 회담에서 “우리의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한국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해가겠다”고 말했고, 26일 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도 “건전한 일-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한국 쪽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선 한국이 현금화 절차 중단 등 ‘성의 있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변하지 않은 것이다. <요미우리신문>도 29일 “일본 정부는 자산매각명령이 임박한 상황에서 스가 총리의 방한에는 신중한 입장을 한국 쪽에 전하고 있다. 문 정권이 연내 회담을 실현하려면 징용공 문제에서 양보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다키자키 국장은 김정한 국장과 회담에 앞서 이도훈 한반도본부장과 만나 서해 피살 사건 이후 북한 동향에 대해 논의했다.
스가 총리의 연내 방한이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한-일 관계의 조기 개선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이후 양국 정상이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계기는 2021년 여름 도쿄 올림픽 개막식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 기간 내에 현금화가 이뤄진다면, 한-일 관계는 단교에 버금가는 혹독한 격랑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
길윤형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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