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운영하는 ‘국민제안’의 신뢰도에 물음표가 달리고 있다. ‘국민 목소리를 듣고 좋은 제안을 발굴해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조직적 동원’ 정황이 관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지난 13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진행되는 대통령실 누리집 ‘국민제안’ 코너의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에 대한 국민참여토론 추천·비추천 투표수를 확인했다.
그 결과 지난 20일 추천과 비추천이 1만5천여건으로 엇비슷하게 집계됐다. 그러나 22일 저녁 8시 기준으로는 ‘추천’과 비추천이 각각 6만7000여건과 3만6000여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앞서 한 달간 진행했던 ‘텔레비전 수신료 징수방식(TV 수신료와 전기요금 통합징수) 개선 안건의 찬·반 의견 수가 찬성 5만6천여건, 반대 2천여건으로 집계된 것과 견주면 특이한 ‘급증’ 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참여 급증에는 조직적 동원과 독려가 원인으로 꼽힌다.
보수 커뮤니티와 단체 채팅방에서는 “대통령실 누리집에서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에 대한 국민 의견을 묻는 데 적극 참여해 의견을 밝혀달라”는 설득 메시지가 확산됐다.
보수 유튜버 채널에서는 연일 국민제안 누리집 주소를 공유하며 “반대가 찬성을 넘어서면 안 된다”고 참여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대통령실 국민제안 토론에 노조에서 좌표 찍은 듯. 하룻밤 사이에 반대표, 반대 댓글 급증”, “대통령실 국민제안 토론에 민(주)노총, 민주당 좌표 찍은 후 50명 차이로 좁혀져 곧 민(주)노총이 앞설 듯” 같은 ‘받은 글’들이 온라인상에 돌았다.
대통령실 쪽은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태도다. 한 관계자는 <한겨레>에 “국민제안 코너는 정책을 결정하는 기능이 아닌 의견 수렴하는 곳이며 국민 접점 창구일 뿐”이라며 “관리 책임만 있다. 어뷰징(동일인 중복응답 등) 행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7월부터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등을 주제로 국민 토론을 벌였으나 동일인 중복응답 논란으로 투표 자체를 무효화 한 바 있다.
국민제안 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국민제안 투표가 종료되면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국민제안 심사위원회가 투표 결과를 반영해 토론한 뒤 관계 부처에 권고안을 전달하게 된다. 심사위가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심사위원회 명단은 ‘심의’라는 업무 특성상 공개하기 어렵다는 태도다. 심사위원회의 토론 내용도 비공개다.
이런 상황에서 집회·시위 자유와 시민 안전 같은 국민 기본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내용을 국민제안에 부치고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참고할 정도의 의미를 가진 국민제안을 이용해 대통령실 의지에 따라 여론을 만들어내는 무기로 삼는다면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여론을 호도한다는 의구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제 선정 방식과 전문가 집단인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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