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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의원들이 반긴 ‘단식 청년들’ 누구?

등록 2015-12-02 14:58수정 2015-12-09 17:53

[정치BAR]
노동법 개정 촉구 단식 등 여당 행사 단골로 등장
박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땐 청와대 초청받아 방청
12월1일 오전,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는 원유철 원내대표의 표정에는 흡족함과 자신감이 흘렀다. 전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야당의 협조 속에 무난하게 가결시킨 ‘성과’ 때문인 듯 보였다.

원 원내대표는 한중 에프티에이 비준안 처리 이후 다음 타깃으로 ‘노동개혁 5대 입법’ 개정안 처리를 제시했다. 곧 표정이 비장하게 바뀌었다. “오늘(1일)부터 우리 청년들이 노동개혁 입법을 촉구하기 위해 국회 앞에서 ‘한끼 단식 릴레이’ 시위를 한다고 한다.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저도 오늘 11시20분에 국회 앞에서 단식을 하는 청년들을 방문해서 격려하고자 한다.” 원 원내대표는 격려 방문 시간까지 공지하는 친절함을 잊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 국회를 찾아 ‘한끼’ 단식을 하는 청년들이 궁금했다. 원 원내대표를 따라 국회 정문으로 갔을 때 ‘노동개혁입법 촉구 릴레이 한끼 단식 국민운동, 19대 국회 D-9일’ ,‘노동시장개혁은 청년에게 희망입니다’라고 쓰인 피켓을 든 청년 3명이 나와있었다. 이들 청년 3명과 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 4명이 나란히 서서 피켓을 나눠 들었다. 노동개혁을 호소하는 청년들과 이들의 절절한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여당 의원들에게로 수십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 격려와 호소가 이어졌다.

“우리 청년들이 이력서를 들고 기업을 찾아다녀야 하는데, 청년들이 일자리 달라고 피를 뽑지 않나, 서명을 받아서 건의서 만들고 국회에 쫓아오지 않나. 정말 저희도 청년에게 죄송하고 미안한 심정이 가득하다. 야당은 청년의 절규를 외면하지 말고 노동 5법 처리에 함께 해달라!” (원유철 원내대표)

“청년들은 현재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저주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취업난 때문이다. 야당은 하루라도 빨리 대한 청년들 위해서 노동개혁 입법에 참여해달라!”(민천식 자유대학생연합 대표)

“꿈과 희망을 가지고 현실을 개척해나가야 할 청년들이 지금 거리로 나와서 ‘국회가 제역할을 하라’고 호소하고 있다. 참담한 심정이다. 하루빨리 야당은 진지하게 논의에 임해달라!”(권성동 여당 환노위 간사)

“저희 청년들 모두가 1만인 서명까지 모아서 노동개혁 이뤄달라는 부탁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응답이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중요한 건 야당의 선택, 결단이다. 국회 중지를 모아서 청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신보라 ‘청년이 여는 미래’)

각자의 발언이 끝난 뒤 원 원내대표와 새누리당 의원들은 청년단체 대표들에게 “우리가 열심히 하겠다!” “힘내세요!” “화이팅”하고 격려했다. 청년들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약 7~8분 동안의 만남은 잘 짜인 각본처럼 빈틈이 없었고, 좋은 ‘그림’을 만들어냈다.

사실 이들은 초면이 아니었다. 이날 한끼 단식 릴레이 시위에 참여한 신보라 대표와 조승수 ‘청년이 만드는 세상’ 공동대표는 여러 차례 새누리당이 마련한 노동개혁 촉구 행사에 얼굴을 비쳤다. 신보라 대표는 지난 8월 새누리당 노동시장선진화특위가 개최한 ‘청년 구직자 간담회’에 참석했다. 지난달 16일에 신 대표는 원유철 원내대표를 만나 ‘청년고용 촉진 및 노동시장 개혁을 바라는 청년선언 1만명 서명’을 전달했다. 11일 뒤인 27일에는 신 대표와 조승수 공동대표가 새누리당 중앙청년위원회 주최의 ‘노동개혁을 통한 청년일자리 창출’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서기도 했다.

앞서 박근혜 정부의 또다른 개혁 과제였던 공무원연금개혁 진통이 한창이던 4월 말에는 신보라 대표와 조승수 공동대표가 국회를 찾아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책임있는 자세로 공무원노조 설득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공교롭게도, 정부·여당이 강력 추진하는 개혁의 고비마다 ‘청년’의 이름으로 정부·여당에 힘을 실어주고 야당과 노동계 등을 압박하는 자리 대부분엔 이들이 함께했던 것이다. 새누리당 출입 기자들 사이에선 지도부가 청년 대표를 만나는 일정이 잡힐 때마다 “신보라 대표 등 아니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분위기가 있을 정도다.

문제는 새누리당이 ‘청년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귀기울이는 이들 대부분이 보수 청년단체로 분류되는 청년단체의 대표나 임원이라는 점이다. 신보라 대표가 속한 ‘청년이 여는 미래’는 2010년 천안함 침몰 때 좌파 단체를 중심으로 대학가에 유언비어가 확산되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청년들이 모여 발족한 단체다. 민천식 대표가 이끄는 자유대학생연합은 종북세력청산범국민협의회에 가입돼 있는 대표적 보수학생단체로 꼽힌다. 조승수 공동대표가 맡고 있는 ‘청년이 만드는 세상’은 지난 10월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의지를 재확인한 국회 시정연설 당시 이례적으로 청와대 쪽 초청을 받아 본회의장에서 방청을 하기도 했다.

이들이 보수단체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한끼 릴레이 단식 시위 자체에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이들이 ‘청년’의 이름으로 특정 정당의 입맛에 맞는 목소리를 반복적으로 전달하고, 그 특정 정당이 소수의 주장을 청년 전체의 뜻인양 호도해 자신들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도구로 삼는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른 편의 청년단체나 일반 청년들 가운데선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개혁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유연화에 목을 맨 노동개혁이 노동약자인 청년세대에겐 더 가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동개혁으로 질 낮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보다, 양질의 안정된 일자리가 늘어나길 바라는 청년들의 외침에도 정부·여당은 마음을 열 의무가 있다.

내 멋대로 상상을 해본다. 간절한 바람을 갖고 있는 청년이라면 ‘한끼 단식’이라는 가벼운 퍼포먼스를 떠올렸을까. 노동개혁을 멈춰달라는 청년의 절규였다면 새누리당이 버선발로 뛰어나가 ‘파이팅’을 외쳤을까.

무엇보다, 원 원내대표가 정말 “청년들이 단식을 하는 게 참으로 가슴 아팠다”면, 그들을 찾아가 단식 시위를 ‘격려’할 게 아니라 단식을 ‘중단’하라며 손을 잡아주는 게 맞지 않았을까.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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