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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정치인’ 박지원의 화려한 ‘원맨쇼’

등록 2016-08-31 05:01수정 2016-08-31 18:47

정치BAR_박지원 ‘금귀월래’ 동행기
2016년 6월8일 오전 국회 본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회의에서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왼쪽)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6년 6월8일 오전 국회 본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회의에서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왼쪽)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박지원 원맨쇼’. 대선 주자들의 틈바구니에서도 그의 ‘플레이’는 멈추지 않는다. 아침 회의마다 현안에 대해 언어유희에 가까운 화려한 메시지를 쏟아낸다. 국민의당 대주주인 안철수 전 대표를 치켜세우는 한편, 더불어민주당 당적을 갖고 있는 손학규 전 고문, 때로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까지 손을 내민다. 당 안팎에선 ‘혼자 너무 나간다’며 견제와 의심의 눈길이 번득인다. 누구도 그 속을 알 길이 없다. 그의 지역구인 전남 목포로 가는 열차에 함께 몸을 싣고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금귀월래(金歸月來, 금요일 저녁 지역구로 돌아가 월요일 새벽에 서울 국회로 돌아옴). 더위가 한창이던 8월 중순의 토요일, 목포행 케이티엑스(KTX) 열차에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올랐다. 토요일까지 빡빡한 일정이 이어져 ‘금귀’가 아닌 ‘토귀’를 하는데도 박 위원장은 쌩쌩했다. 서울~목포 간 왕복 5시간이 “자는 시간 빼면 유일하게 멈추는 시간처럼 느껴진다”며 웃었다. 18대(2008년) 목포에서 당선된 뒤로 주말마다 서울~목포를 오가는 생활을 계속해 왔다. 박 위원장은 여야 253명의 지역구 의원들에게 ‘금귀월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 당사자이다.


KTX 안 유일한 휴식시간, 그의 손은 페북과 트위터로

그러나 ‘쉼표의 시간’ 동안 박 위원장은 단 일분일초도 쉬지 않았다. 열차 안에서 진행하던 인터뷰 도중에도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페이스북·트위터를 열고 보란듯이 쓰고 고쳤다. “동행하는 모 기자 표 때문에 3시간 늦었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으라 성화시지만 원내교섭단체 당대표 원내대표 박지원이 코레일에서 표 2매 구하지 못하고 2시간 반을 기다렸다면 믿겠습니까” 등등. 조금도 쉬지 않고 말과 글을 쏟아내는 박 위원장의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집착요. 내가 생각해도 내가 징하죠.”

그는 스스로 “머리 쓰는 능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성실성은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1992년 통합민주당 수석부대변인으로 정치를 시작하면서 수많은 동교동계 가신을 제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으로 단박에 자리잡은 비결을 바로 ‘집착’이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착하고, 그의 말을 외우고 익혔다. 그의 집착은 어디에서 왔을까?

1942년 진도에서 태어난 그는 “이러면 섬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듣고 자랐다.

“목포로 가니 섬놈이라고 놀림받고, 그것이 싫어 서울로 올라가니 전라도놈이라고 손가락질받고, 그도 싫어 떠난 미국에서는 차이니즈라고 멸시받았죠. 그래서 차별이라면 이골이 났지.”

몸으로 느끼면서 배운 차별에 대한 감수성은 유별났다. 1980년대 초 가발업으로 성공한 재미 사업가가 됐지만, 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 1983년 김대중을 만났다. 섬(진도)에서 섬(맨해튼)으로 도망치듯 살아온 자신의 삶과 그 차별에 맞선 김대중의 삶이 비교되는 순간, 그는 김대중에게 자신을 걸기로 했다. 돌아보면 그것은 차별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정치인 김대중이 미국에서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박지원의 후원 덕분이었다.

1995년 10월23일 국회 국민회의 총재실에서 열린 지도위원회의에서 김대중 총재와 김상현 지도위원장(왼쪽), 박지원 대변인이 전직대통령 비자금설과 6공 정치자금 조성경위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5년 10월23일 국회 국민회의 총재실에서 열린 지도위원회의에서 김대중 총재와 김상현 지도위원장(왼쪽), 박지원 대변인이 전직대통령 비자금설과 6공 정치자금 조성경위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음흉한 구정치 유산을 물려받은 상속자”

인터뷰에 앞서, 그를 오랫동안 취재했던 한 선배한테 물었다.

“박지원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마이 네임 이즈 박지원’ 빼고는 믿을 수 없는 사람.”

1990년대 초 처음으로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을 출입하기 시작했을 때 한 당직자가 ‘박지원을 조심하라’며 그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당시 막 전국구(현 비례대표) 의원이 된 박 위원장은 미국에서의 인연으로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 자리를 꿰찬 덕에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았다. 또 지금처럼 현란한 수사로 기자들을 응대하다 보니 말의 ‘행간’이 많아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공보수석, 문화관광부 장관을 거쳐 국민의 정부 마지막 비서실장까지 “왕실장”으로 살아온 그에게 “간신”이란 견제와 비판이 늘 따라다녔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을 보좌하는 동시에, 김대중의 정치를 물려받았다. 독재정권과 겨루던 시절의 정치방식이다. 한편으론, 자신의 한계에 대해 “음흉한 구정치 유산을 물려받은 상속자”라고 표현한다. 최근에도 자신을 ‘헌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다. 2015년 2·8 전당대회 때 문재인 후보와 경쟁할 때도 그는 갖가지 언어로 문 후보를 깎아내리며 호남과 문재인을 갈라치기 했다. 호남이 문재인과 돌아선 데는, 박 위원장의 ‘입’이 결정적이었다고 여기는 이들도 많다.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그의 말을 100% 믿는 기자는 드물다. 어떤 꿍꿍이가 숨어 있을지 의심한다. 그래도 모두들 박지원의 입을 바라본다. 예전에 그의 말에서 ‘김대중’이라는 이름이 압도적이었다면, 지금은 말끝마다 ‘안철수’를 붙이는 게 달라진 모습이다.

“(안철수 전 대표가) 더 했으면 좋겠다. 더 많이 등장하고, 더 많이 말하고.”

호남의 한 의원이 “왜 안철수 덕분에 우리가 당선됐다고 말합니까? 왜 우리를 안철수 당이라고 합니까?”라고 항의했을 때, 그는 스스럼없이 “안철수 없이 당선될 수 있었겠냐”고 되물었다고 했다. 안 전 대표와 이렇다 할 인연이 없지만, 그는 솔직하게 실리를 취하고 있다. 박 위원장에게 김대중이 운명이었다면 안철수는 기회다. 그는 “20년 전 호남이 승리를 위한 통합으로 김대중에게 표를 몰아줬다면, 20년이 지난 지금은 패배를 각오한 통합으로 안철수에게 기회를 줬다. 그 기회를 우리가 감사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더민주 전대 기간에 호남과 안철수를 재료로 차려낸 온갖 요리

박 위원장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국면에서 정계개편과 관련한 모든 주제를 꺼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계개편에 대해 물었다. “논의는 아직 이르다”고 답했다. 그동안의 공개적인 발언들과는 결이 달랐다. 호남연정론부터 시작해 국민의당이 중심축인 플랫폼 정당론, 제3지대론 등 호남과 안철수라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요리를 선보이더니, 정작 “원래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니.

“문 전 대표가 갑자기 야권통합을 들고나오니 맞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여기서 정리를 안 해주면 당이 흔들리니까요.”

방어전략이었지만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플랫폼 정당을 얘기하며 박원순 서울시장, 손학규 더민주 고문, 정운찬 전 총리 등을 호명했고 언론은 박지원과 국민의당에 눈길을 돌렸다. 김종필 전 총리를 만나 자신이 언급한 호남연정론이 허언이 아님을 확인시켰다. 종횡무진 오가는 그의 원맨쇼에 정치판이 움찔했다.

판이 열리면 물러나지 않는다. 박 위원장은 “시대를 선도하는 게 지도자인데, 그걸 못하면 적응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적응이란 싸움이었다. 박 위원장은 자주 ‘호남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 위원장은 “호남 민심은 4월(총선) 그대로”라며 “더민주는 가장 중요한 기반을 잃은 것이다.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호남의 가치와 몫이 실현되는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보란듯이 그는 더민주 당대표 선거가 있었던 27일 손학규 더민주 고문을 만났다. 그가 판을 깔아놓자 이튿날인 28일엔 안철수 전 대표가 광주를 찾아 “대선은 과거와 미래의 대결”이라며 내년 대선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김홍업 전 의원, 권노갑 고문, 박지원 의원이 2009년 8월26일 오전 서울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난 뒤 김 대통령의 배웅을 받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뒤 조문 및 영결식 참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전직 대통령을 방문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김홍업 전 의원, 권노갑 고문, 박지원 의원이 2009년 8월26일 오전 서울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난 뒤 김 대통령의 배웅을 받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뒤 조문 및 영결식 참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전직 대통령을 방문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DJ 유지 ‘통합’ 떠올리면 마음 찢어져…마지막 꿈은 최초의 평양대사”

하지만 그는 싸움이 길어지기 전에 전장을 이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계개편 논의가 길어질 경우 그다지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이다. 박 위원장은 “야권통합 논의는 국민의당이 사멸하도록 하는 길이고 이것은 현재 3당구도를 만들어준 민의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의 이런 속내와는 달리, 현실에선 정계개편론이 솔솔 나오고 있다. 추미애 더민주 대표는 지난 29일 박 위원장과 상견례한 자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인 ‘통합’을 꺼내들었다. 박 위원장은 “한방 먹었다”고 되받았다. 다음날인 30일 박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았다. “추 대표가 (김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뭐라고 했는지 (김 전 대통령에게) 물어보러 가겠다”며 농담을 던졌지만, 추 대표를 보는 박 위원장의 속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아침에 더민주 당대표실 지나서 내 사무실로 올 때면 마음이 찢어집니다. 김대중 대통령한테도 죄지은 것 같고요. 박지원이 어디 민주당과 디제이를 떠나서 살 수 있겠습니까.” 더민주 탈당 이후, 그의 몸과 마음은 따로 움직여온 것이다.

도착지가 가까워지자 박 위원장은 곧 지역구 주민들과의 만남을 트위터에 공지했다. 박선숙·김수민 의원 등 핵심 당직자들이 연루된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에 대해 물었다. “한 번 정도의 위기가 남았다고 봐요. 그때도 지금처럼 물러서지 않고 원칙대로 해결하면 되겠죠.” 국민의당을 기다리고 있는 또다른 위기란 무엇일까? 그게 무언지 물어도 그는 웃기만 했다.

대선이 열리는 내년, 그는 75살이 된다. 앞으로 진짜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걸까? 그는 “정권교체를 위해 무슨 일이든 헌신하고 싶다”고 했다. 정권교체가 되면 ‘최초의 평양대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그는 “안 되면, 그냥 끝”이라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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