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은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의 아버지는 김일성 전령병으로 활동한 항일 빨치산 1세대 태병렬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한국의 대표적 통신사인 <연합뉴스>가 8월18일 오전 6시 ‘단독’이라고 강조해 보도한 기사의 핵심 내용이다. 다수의 언론 매체가 이 기사 내용을 받아서 보도했다.
전날 저녁 7시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까지 탈북한 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이라며 태영호 공사 가족의 한국 입국 사실을 발표한 터라, <연합뉴스>의 이 보도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항일 빨치산 혈통’은,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백두혈통’을 빼고는 가장 높게 평가받기 때문이다. 더구나 태병렬은 1997년 사망하기 전에 조선인민군 대장까지 지낸 북한의 권력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은 8월23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태영호는 태병렬의 아들이 아니다”라고 보고했다.
사실이 아닌데도, 유력 언론사의 경험 많은 기자가 ‘단독’이라 확신하고 보도하게 만든 ‘북한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은 누구일까? 국가정보원이나 외교안보 부처의 고위 인사일까? 북한 권력기관과 선이 닿아 있다고 주장하는 북한이탈주민일까?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과 교역을 하는 사업가일까? 북한을 상대로 인도적 지원이나 교류협력 사업에 오래 종사해온 사람일까? 북한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학자일까? 의문은 꼬리를 물지만, 소식통의 실체를 가늠할 단서가 없다. ‘대북 소식통’은 정체가 없다. 유령이다.
외교안보 익명 취재원에도 급이 있다
저널리즘에선 실명 보도가 원칙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 첫째, 프라이버시 등 인권을 보호하느라 익명 보도가 불가피한 경우다. 성폭력 사건을 보도할 때 피해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게 대표적이다. 둘째,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반드시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실명으로는 절대로 발언하지 않는 고급 취재원을 대상으로 할 때다. 미국 등 서구 언론에선 대외정책 분야의 고위 공무원을 취재할 때 예외적으로 익명 보도를 한다.
한국 언론은 고위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익명 보도를 외교안보 분야로만 한정하지 않고 더 폭넓게 활용한다. 바람직한 취재 관행은 아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소식통’과는 달리, 익명 취재원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실마리가 될 다양한 장치를 둔다. 인권 보호가 아닌 취재 편의를 위해 불가피하게 익명 보도를 할 때에는 ‘취재원이 누구인지 독자나 시청자가 짐작할 만한 장치를 최대한 많이 둔다’는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다.
공무원을 취재원으로 한 익명 보도엔 나름의 표기 관행이 있다. 취재원의 위상을 고려해 ‘고위 관계자→고위 당국자→당국자→관계자’ 순으로 구분한다. ‘고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정무직 고위 공무원, 곧 장관과 차관을 뜻한다. 예컨대 ‘정부 고위 관계자’라고 하면 수십명이나 되지만 ‘외교부 고위 관계자’라고 하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임성남 외교부 1차관, 조태열 외교부 2차관, 세 명 중 한 명이 취재원이라는 뜻이다. ‘통일부 고위 관계자’라고 하면 홍용표 통일부 장관 아니면 김형석 통일부 차관, 둘 중 하나다.
‘고위 관계자’는 장·차관, ‘당국자’는 중앙부처 국장급
‘고위 당국자’는 흔히 장차관이 아닌, 차관보나 실장급 등 고위 직업 공무원을 뜻한다. 예컨대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인 김홍균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익명 보도를 전제로 기자들한테 뭔가를 얘기했다면, 흔히 ‘외교부 고위 당국자’라고 적는다. 더 친절한 기자는 ‘6자회담 등 북핵 업무를 맡은 외교부 고위 당국자’라고 표기할 수도 있다.
‘당국자’는 정부 중앙부처의 국장급을 지칭한다. 예컨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한-일 정부의 12·28 합의 협의·이행에 관여해온 외교부 당국자”라고 한다면, 사실상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을 뜻한다.
‘관계자’는 정부 중앙부처의 과장급을 가리킨다. 과장보다 직급이 낮은 공무원은 특별히 예외적인 사정이 없는 한 기사에 취재원으로 인용하지 않는다. 실무 수준에서라도 정책 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부 고위 관계자→고위 당국자→당국자→관계자’라는 위계를 구분한 익명 보도는, 기사의 맥락을 읽어낼 배경 지식을 지닌 독자라면 해당 발언의 화자가 누구인지 가늠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반면 ‘소식통’은 ‘공무원이 아닌 취재원’을 익명 처리할 때 주로 활용된다. 하지만 정해진 규칙이 있는 건 아니어서, ‘소식통’의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사정 탓에 ‘당국자·관계자’발 보도와 ‘소식통’발 보도는 같은 익명 보도라도 하늘과 땅만큼이나 신뢰도에 차이가 크다.
원칙적으로 책임 있는 언론 매체와 취재윤리에 철저한 언론인은 ‘소식통’을 주어로 삼은 기사를 쓰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 사안의 민감성 탓에 불가피하게 취재원의 정체를 철저하게 은폐해야 할 때 ‘소식통’으로 인용할 수는 있다. 다만 이때엔 교차 확인이라는 취재 보도의 불문율을 더욱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소식통’의 의도에 휘말려 ‘선전 일꾼’으로 악용되거나 오보를 하게 된다.
국정원, ‘소식통의 탈’을 쓰고 미확인 첩보를…
예컨대 이런 사례. 2월10일 오후 통일부는 담당 기자들한테 “북한, 군참모장 이영길을 2월초 전격 숙청”이라는 제목이 달린 문건을 제공했다. 핵심 내용은 “북한은 2월초 군총참모장인 이영길(61살, 대장)을 ‘종파분자’ 및 ‘세도·비리’ 혐의로 처형했다”는 것이었다. 통일부는 “‘대북 소식통’으로 인용해달라”는 조건을 걸었다. 2월10일은,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로켓 발사(2월7일)에 대응해 ‘개성공단 전면 폐쇄’ 방침을 밝힌 날이다. 통일부의 ‘이영길 처형’ 자료 제공은, 남북관계의 ‘마지막 안전판’으로 불린 개성공단 전면 폐쇄에 따른 여론의 반발을 흩트리고,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일삼는 무모하고 흉악무도한 김정은 정권’이라는 비난 여론을 증폭시키려는 선전전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정부 직제상 통일부는 대북정책 집행 부서다. 대북 정보 수집은 국정원의 업무다.
정부가 ‘대북 소식통’이라는 가면을 쓰고 민감한 ‘북한 첩보·정보’를 언론에 흘린 행태는 무책임하고 정략적이다. 더군다나 그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가 2월초 처형됐다고 밝힌 리영길은 5월9일 소집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차 전원회의에서 중앙군사위원과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사실이 <노동신문> 5월10일치 보도로 확인됐다. 죽었다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이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16일치에 실린 “소문, 오보, 익명”이라는 제목의 기자 칼럼에서 “국정원은 한국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에 익명 취재원으로 자주 등장한다”고 짚은 뒤, “한국의 현 정부, 특히 국정원은 국내 여론에 영향을 끼치거나 정부 정책을 밀어붙일 요량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선별된 정보, 심지어는 불완전하고 검증할 수 없는 북한 관련 첩보를 제공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식통’발 보도가 늘 오보로 귀결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이런 사례. “한 정보 소식통은 15일 ‘김정일 위원장이 1월8일께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세 번째 부인 고영희씨에서 난 아들 정운을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교시를 하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의 최선영·장용훈 기자가 2009년 1월15일, 북한이 ‘3대 세습’을 결정했음을 세계 최초로 보도한 기사의 핵심 내용이다. 이 기사는 보도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당시까지 ‘김정운’으로 이름이 잘못 알려졌을 정도로 공개석상에 얼굴 한번 내밀지 않은 김정은이 ‘3대 후계자’가 되리라고 예견한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2010년 9월, 북한이 44년 만에 소집한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옆에 선 김정은의 사진을 <노동신문>(2010년 9월29일치 1면)에 공개하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에이피티엔>(APTN) 인터뷰에서 “이제 우리는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를 모실 영예를 얻게 됐다”고 ‘후계자 김정은’을 처음으로 공개 언급함으로써 ‘세계적 특종’임이 뒤늦게 확인됐다. 두 기자는 2011년 한국기자상 대상을 받은 뒤에도 ‘한 정보 소식통’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소식통’의 신뢰도 검증 과정과 익명 보도의 불가피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03년 장성택 부장의 가택연금 기사, 김정일 위원장의 네 번째 부인인 김옥에 관한 기사 등 북한 관련 단독 기사들도 동일한 소식통들을 통해 기사화할 수 있었다. … 북한 권력층 관련 첩보나 정보의 신빙성 문제와 20대 중반에 불과한 삼남 정운이라는 의외성 때문에 즉각 기사화하는 것을 미루고 국내는 물론 미국과 일본, 중국에 있는 신뢰할 만한 취재원을 총동원해 북한 권력 내부의 변화를 추적했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특성상 팩트에 대한 복수의 확인이 없이는 기사화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 취재원 신원을 밝히는 게 원칙이지만 북한 관련 취재원의 경우 신변안전 문제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 더욱 취재원을 보호해줘야 할 필요성이 커서 ‘소식통’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제42회 한국기자상 대상 취재후기)
소식통의 발호, 경색된 남북관계 ‘슬픈 자화상’
북한 보도는 어렵다. 북한은 직접 취재가 거의 불가능한데다,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를 검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외부 언론의 취재에 응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을 활용하는데, ‘선전’과 ‘사실’을 구별하는 일이 쉽지 않다. 북한 당국은 외부 언론의 대형 오보에도 정정 보도 신청이나 법적 소송 등 ‘오보 대응’을 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쏟아지는 북한 관련 보도의 옥석을 가리기가 어렵다.
북한 관련 보도가 요즘처럼 ‘소식통발 카더라 통신’에 휘둘리기만 한 건 아니다. 소식통발 보도와 남북관계는 반비례 관계다. 당국회담이 자주 열리는 등 남북관계가 원만하고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도 활발하면, ‘북한 사람’을 직접 만나는 남한 사람이 많아진다. 기자들의 북한 방문과 현장 취재 기회도 많아진다. 그만큼 북한 관련 보도의 취재원이 다양해지고, 보도의 근거도 튼실해진다.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한해 수십차례의 당국회담이 열리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 다종다기한 교류협력이 이뤄지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엔 지금처럼 정체불명의 ‘소식통’발 보도가 홍수를 이루지 않았다. 정부의 책임있는 당국자가 회담 결과를 공개 설명하고, 숱한 교류협력 일꾼들이 실명으로 북한 소식을 전하는데, 언론이 굳이 ‘소식통’의 말에 의존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2월25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8년이 넘도록 한국의 기자 가운데 취재 목적으로 평양을 공개 방문한 이가 단 한 명도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가물에 콩 나듯 하는 남북 당국회담조차 오랜 관행인 ‘공동취재단’ 형식의 현장 취재를 불허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야만적인 언론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언론도 이를 문제삼지 않는다. 손발이 묶인 한국 언론의 북한 관련 뉴스를 뒤덮은 ‘소식통’발 보도는, ‘남북관계 제로(0) 시대’의 자화상이자 저주다.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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