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투자자가 휴대전화로 주가를 확인하고 있다.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yongil@hani.co.kr
“과거엔 대운하 등 주요 대선후보들이 내세우는 정책과 관련된 기업들의 주가가 올랐다면, 지난 대선부턴 개인적 친소관계 여부가 테마주의 핵심 요소가 됐다.”
이종우 아이비케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전하는 대선 테마주의 기류 변화다.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선 테마주의 역사는 2002년 대선부터 시작됐다. 이 시기에 가정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보급되면서 테마주에 대한 여론이 온라인상에서 형성되기 시작했고, 집에서 주식거래를 쉽게 할 수 있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의 이용자도 빠른 속도로 늘었다. 하지만 테마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도이전·대북경협 공약 관련 일부 기업들에 그쳤다.
본격적으로 테마주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 시기는 2007년 대선 때였다. 지지율이 압도적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 국외 자원개발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투자자들은 이들 공약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제하고 수혜 기업들을 찾았다. 인맥으로 엮인 세중나모여행(회장 천신일), 효성(이 대통령 사위인 조현범씨의 사촌들이 대주주) 관련 주들도 주가가 오르긴 했으나, 대운하주나 자원개발주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았다. 이들 기업의 주가는 이 대통령 당선시에 고점을 찍으며 임기 5년간 꾸준히 내려 제 가격을 찾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2012년부터는 테마주의 연결고리가 ‘인맥’으로 급격히 쏠리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의 친동생 박지만씨가 대주주인 이지(EG)가 대표적이다. 안철수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그가 창업한 안랩의 주가도 급등했다. 안랩 출신의 임원이 부사장으로 재직했던 써니전자는 2011년 10월 200원대 주가가 2012년 8월 1만원대를 찍으면서 주가가 50배 이상으로 오르기도 했다.
이종우 센터장은 “테마주 열풍이 부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2007년 대선 때는 6개월 전부터였다면, 지난 대선은 1년 전부터, 내년 대선은 1년 반 전부터 테마주가 활개를 친다”고 말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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