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23
바른정당의 ‘박대통령 최후진술 분석’ 보니
관련자 진술·증거 다 무시하고 “몰랐다” 잡아떼
지지세력 탄핵 부당 믿음 강화…불복 여건 조성
관저 순순히 비워줄지 삼성동 돌아갈지도 의문
바른정당의 ‘박대통령 최후진술 분석’ 보니
관련자 진술·증거 다 무시하고 “몰랐다” 잡아떼
지지세력 탄핵 부당 믿음 강화…불복 여건 조성
관저 순순히 비워줄지 삼성동 돌아갈지도 의문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닙니다. 상식을 가진 대다수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합니다.
바른정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새로 만든 정당입니다.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를 자처합니다. 그런데 정당 지지도가 형편없이 낮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물론이고 국민의당보다도 낮습니다. 친여성향 유권자들을 놓고 벌이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논쟁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기감을 느낀 바른정당 사람들이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하태경 의원 주최로 3월6일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대통령의 탄핵심판 최후진술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긴급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하태경 의원은 “65세 이상 어르신들은 탄핵을 좌우대립으로 보는데, 지금 좌파보다 극우가 더 문제이고 탄핵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과 극우집단의 대결이라는 것을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세미나에는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가 ‘전면부인 일관한 대통령 최종 변론의 의미’, 이기재 바른정당 대변인이 ‘재판에서 확인된 탄핵 사유의 결정적 증거’, 이준석 바른정당 노원병 당협위원장이 ‘대통령 변호인단의 고의적 사실왜곡과 가짜뉴스’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후진술을 분석 대상으로 삼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 비리가 불거진 뒤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번 사태에 대한 공식 발언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이 문화융성과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자신이 주도한 것처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최후진술에서는 “전경련 주도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관련 수석으로부터 처음 들었다”며 완전히 잡아뗐습니다. 발언의 차이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 2016년 10월20일 수석비서관회의
“물론 이와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기까지 기업인들과 소통하면서 논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예를 들면 작년 2월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해 기업인들을 모신 자리에서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의 실현을 통한 우리 경제의 대도약을 위해 기업인들의 문화체육에 대한 투자 확대를 부탁드린 바 있고, 또한 지난해 7월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 기업 대표를 초청한 행사에서도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이 바로 문화콘텐츠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융복합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문화체육 분야를 집중 지원하고 우리 문화를 알리며 어려운 체육 인재들을 키움으로써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수익 창출을 확대하고자 기업들이 뜻을 모아 만들게 된 것이 두 재단의 성격으로 알고 있습니다.”
# 2016년 11월4일 2차 대국민담화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기울여온 국정과제들까지도 모두 비리로 낙인찍히고 있는 현실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2016년 11월29일 3차 대국민담화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 2017년 2월27일 헌법재판소 제출 의견서
“기업인들도 ‘한류가 세계에 널리 전파되면 기업의 해외진출이나 사업에 도움이 된다’며 저의 정책 방향에 공감해 주셨고, 그래서 저는 전경련 주도로 문화재단과 체육재단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관련 수석으로부터 처음 들었을 때, 기업들이 저와 뜻에 공감을 한다는 생각에 고마움을 느꼈고, 정부가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라고 지시를 하였던 것입니다.”
최후진술에는 이밖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무고함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 곳곳에 들어 있습니다. 잡아떼도 어떻게 이렇게 철저히 잡아뗄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몇 군데만 인용하겠습니다.
“저는 정치인의 여정에서 단 한 번도 부정과 부패에 연루된 적이 없었고 주변의 비리에도 엄정했습니다. 최순실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의 잘못된 일 역시, 제가 사전에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엄하게 단죄를 하였을 것입니다.”
“일부 공직자 중 최순실이 추천한 인물이 임명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저는 최순실로부터 공직자를 추천받아 임명한 사실이 없으며, 그 어떤 누구로부터도 개인적인 청탁을 받아 공직에 임명한 사실이 없습니다.”
“사기업의 인사에 관여하였다는 부분에 있어서도, 제가 추천을 했다는 사람중 일부는 전혀 알지도 못하며, 제가 도움을 주려고 했던 일부 인사들은 능력이 뛰어난데 이를 발휘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능력을 펼칠 기회를 알아봐주라고 이야기했던 것일 뿐, 특정기업의 특정부서에 취업을 시키라고 지시한 사실은 없습니다.”
“지금껏 제가 해 온 수많은 일들 가운데 저의 사익을 위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으며, 저 개인이나 측근을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거나 남용한 사실은 결코 없었습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정호성 비서관의 휴대폰과 피의자 신문조서, 안종범 수석의 수첩과 신문조서, 김종덕 전 장관과 김상률 전 수석의 진술 등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함께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여러가지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도대체 왜 모든 사실을 다 부인하는 것일까요? 너무나 뻔한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자신의 잘못과 위법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탄핵당할 만큼 ‘중대한’ 사유가 아니라고 방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바른정당 긴급 세미나의 초점은 여기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의 분석은 이렇습니다.
“2·27 최종변론은 공식성, 최종적, 불가역적, 관련자에 대한 구속력 등을 가지는 만큼 이 입장은 대통령과 그 지지집단의 지침으로 작용한다. 거짓과 음모에 의한 탄핵이고 최순실이 대통령이 전혀 모르게 대통령을 팔아 사익을 취한 것에 불과한 사건으로 규정하려 한다. 이런 접근은 국민 다수의 인식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국민설득이나 탄핵재판, 이후 예상되는 형사재판 등에 대한 합리적 대응으로 보이지 않는다. 탄핵이 부당하다는 지지세력의 믿음을 강화시키고 탄핵인용시 불복의 여건을 조성하려는 것으로 추측된다. 대통령의 음모론을 믿는 지지세력과의 정치적 소통 강화는 탄핵인용시 이들의 정치적 결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인용 이후에도 정치를 계속 할 생각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지지층을 중심으로 불복 분위기를 조성해 정치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기재 바른정당 대변인은 정호성, 안종범, 최순실, 차은택 등 이번 사건 관련자들의 재판에서 지금까지 드러난 증거를 중심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최후진술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주장인지 입증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자료들입니다.
# 국정농단 묵인·방조 행위
정호성 2회 신문조서
“저와 최순실이 하나의 구글 지메일을 공유하는 방법으로 최순실과 의사소통을 하였습니다.”
최순실 10회 신문조서
“저와 정호성이 서로 자료를 메일로 올리면 문자메시지로 그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정호성 12회 신문조서
문) 최순실에게 문건을 보내주고 의견을 듣는 것은 대통령의 뜻인가요, 아닌가요?
답) 대통령님의 뜻인 것은 맞습니다.
문) 대통령 뜻과는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최씨에게 문건을 유출한 것은 아닌가요?
답) 아닙니다. 대통령님이 최순실의 의견을 들어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뜻에 따라 문건을 보내준 것입니다.
# 재단설립 관련 권한남용
차은택 4회 피의자신문조서
“김홍탁, 김성현이 재단 명칭으로 여러가지 단어를 최순실에게 보고하였고 최순실이 그 내용을 가지고 있다가 며칠 후에 추천받은 단어중에 ‘미르’를 재단명칭으로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안종범 수첩 메모
‘현대차, 문화, 체육지원, 체육인재 양성기금, 30억+30억 60억’
‘CJ, 문화체육 기금, 통일, 한류 20억~50억, 30억+30억’
# 사기업 특혜 제공 관련 권한남용
안종범 7회 피의자신문조서 및 황창규 진술
“대통령은 2015년 1월 초순께 안종범에게 ‘이동수라는 광고계에서 유명한 홍보전문가가 있는데 케이티에서 채용될 수 있도록 케이티 회장에게 연락해서 추천을 해봐라’고 지시”
“대통령은 2015년 7~8월경 안종범에게 이동수의 자리 이동을 지시하였고, 안종범은 황창규에게 ‘VIP께서 케이티의 광고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신다. 이동수를 광고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로 옮겨 맡겨봐라. VIP에게 급히 보고를 해야 하니 신속히 조치해달라’는 취지로 수차례 연락”
이준석 바른정당 노원병 당협위원장은 탄핵과 관련된 대통령 대리인단의 전술 변화를 분석했습니다. 이준석 위원장은 “대리인단이 변론 종결과 더불어 법조 시스템과 정치권 일반에 대한 공격으로 전환하는 중”이라며 “대중의 사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풍조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대리인단의 이런 전술 변화가 “탄핵 인용에 대한 현실적 저지보다는 탄핵 이후의 정치적 상황을 주도하려는 목표”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봤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진박세력들은 그동안 보수층 결집을 위한 근접편향의 단계를 거쳐 확증편향의 단계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이미 전통적 보수층의 상당수는 탄핵의 정당성에 대해 부당하다는 방향으로 확증편향되어 있다. 인용 이후 바른정당 주도의 건전한 보수층 재결집 구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안은 무엇일까요? 하태경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유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홍진표 상임이사는 “고령세대를 중심으로 어떤 언론도 믿지 말라며 끊임없이 가짜뉴스를 유통시키고 있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하루이틀 사이에 끝날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준석 위원장도 “우리의 대응책이 안이했던 것을 반성해야 한다”며 “탄핵이 인용되면 보수층이 정리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전혀 그게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준석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면 관저를 순순히 비워줄 것인지도 의문”이라며 “청와대에서 나가도 삼성동으로 가지 않고 티케이 지역으로 내려갈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미리 생각해두어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이기재 대변인은 “첫째, 헌재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둘째, 정당이나 정치 리더는 선고에 관여해서는 안되고, 셋째, 탄핵과 관련된 팩트를 가려서 잘 숙지해야 한다”며 “탄핵 이후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국민통합을 추진하며 대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4일 청와대에서 2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98주년 3.1절인 지난 1일 서울 광화문에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가 주최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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