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26
문재인 대세론에 관심 높아지는 ‘적폐청산’ 슬로건
문 “정치의 주류세력을 새로운 민주체제로 교체할 것”
적폐청산 통한 통합,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을까
문재인 대세론에 관심 높아지는 ‘적폐청산’ 슬로건
문 “정치의 주류세력을 새로운 민주체제로 교체할 것”
적폐청산 통한 통합,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을까
23일 오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북도의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상훈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최근 유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몹시 불편한데, 청산이라는 말이 민주주의의 언어로 합당한 언어인지 선생님의 의견을 여쭤 보고 싶습니다.
최장집 전쟁이나 혁명의 언어지, 민주주의의 언어라고 볼 수는 없죠. 싹쓸이, 발본색원처럼 뿌리째 뽑는다는 뜻이잖아요. (중략) 사회의 특정한 의사와 이익에 기초해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정당이라고 할 때, 그 반대세력의 존재를 항상 전제로 합니다. 한 손에는 촛불 다른 손에는 정치는, 보수와 진보를 전제하는 말이기도 해요.
박 이번 탄핵은 보수와 진보가 힘을 합친 결과이기도 하죠.
최 (중략)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자체를 지나치게 과대, 그걸 무슨 선악의 대립이라든가 이런 식으로 판단해 내친김에 아주 그냥 적폐를 청산, 뭔가 굉장한 것을 만들어 보자고 하는 발상은 이건 민주주의 기본 원리와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박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지만 민주정치의 원리를 위반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좌파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태도로 국정 교과서 하나의 역사관만 만들겠다는 것을 너무 심하게 생각했고, 친박이 아닌 사람들은 다 배신자로 보는 이게 저는 권위주의 쪽의 적폐청산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제 진보 쪽 또는 야당 쪽 분들도 이 점은 조금 고려하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적폐를 개선하는 방법은 적폐를 싹 쓸어 없앤 다음 새로운 걸 시작하는 게 아니라 적폐적인 것보다 더 나은 것을 하나하나 추가해 기존의 적폐의 영향력을 조금씩 조금씩 대체해 가는 게 민주적 과정이라고 봅니다.
“이 언어가 공식 정치 담론으로 등장한 것은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대통령의 언어에서였다. 당시 그가 무엇을 ‘적폐’로 지목하고 어떻게 ‘청산’하고자 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언어가 가져다준 충격은 생생히 기억한다. 민주주의자의 언어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뜻 그대로 풀이하자면 오랫동안 쌓여온 폐해를 일거에 해결한다는 것인데, 무엇이 ‘적폐’이며 어떻게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까? 누가 ‘적폐’의 내용을 정의하는 권한을 가질 것이며, 또 누가 ‘일거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박 전 대통령은 아마도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한 어떤 제도나 관행을 ‘적폐’로 정의했을 것이고, 본인 스스로가 그것을 해결할 권한을 갖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주체는 주권자인 시민들이어야 한다. 시민적 공론장이 자유롭게 작동하고 그곳에서 문제가 정의되면 법 앞의 평등 원리를 적용하여 해결해가는 과정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는 것, 그 자체가 민주주의다.”
“친일세력이 해방되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떵떵거리고, 독재 군부세력과 안보를 빙자한 사이비 보수세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해 나가고, 그때그때 화장만 바꾸는 겁니다. 친일에서 반공으로 또는 산업화세력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이것이 정말로 위선적인 허위의 세력들이거든요.”
“제가 지난번에 국민성장을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부패 대청소라는 표현을 썼지 않습니까? 부패 대청소를 하고 그다음에 경제교체, 시대교체. 과거의 낡은 질서나 체제, 세력에 대한 역사교체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법적, 제도적으로 근본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고요.”
“가장 강렬하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정치의 주류 세력들을 교체해야 한다는 역사적인 당위성입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데, 그것은 국민들이 심정적으로 가장 원한다 해도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죠. 그래서 대청산, 대개조, 시대교체, 역사교체, 이런 식의 표현들을 합니다. 기존의 우리 주류정치 세력이 만들어왔던 구체제, 낡은 체제, 낡은 질서, 낡은 정치문화, 이런 것들에 대한 대청산, 그리고 그 이후 새로운 민주체제로의 교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대청소를 주창하고 있는데, 실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도 제가 어떤 공격을 받는지 한번 보십시오. 저를 향한 무도한 공격들을 보면 무섭잖아요. 그 공격이 단순한 반대의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향해 가야 하는데 과거에 얽매여 못 가고 있다는 둥, 분열을 조장한다는 둥, 국민을 네 편, 내 편으로 나눈다는 둥, 패권주의라는 둥 갖가지 이데올로기로 음해하고 공격하죠. 국민정서를 반으로 찢어발기려고 합니다. 그건 살인보다 더 위협적이고 두려운 일이죠.”
“포용, 중도확장을 이야기하면서 걱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게 타협할 생각이라면 정치를 하지 말았어야죠. 지난번 제가 당 대표 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제가 무조건 타협할 생각이었다면 당대표 하면 안 되는 거죠. 지금은 우리가 새로워져야 할 때입니다.”
“주권자 혁명은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혁명입니다. 우리에게 일상적인 행복을 빼앗아간 비겁한 권력으로부터 우리의 행복을 되찾아오는 혁명이고요.”
“민주화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세계나 신념체계만 고집하면 될지 몰라도, 정치를 통해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나라를 새롭게 바꿔보겠다는 각오라면 전체를 다 통합하는 태도와 너그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권력의 기반은 도덕성과 역사적 소명의식입니다. 그 힘으로 기득권 세력의 연합을 우리가 깨나가야 합니다. 국민의 손을 꼭 붙잡고 함께 가야 합니다. 그 손을 놓아버리면 절대로 이겨낼 수가 없죠.”
“국민들이 주저하거나 반대한다면 그 속도를 늦춰서라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고, 그렇게 해나가야죠.”
“지난 대선의 패인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저와 민주당의 평소 실력 부족일 것입니다. 민주, 인권, 평화, 복지, 연대, 환경, 생명, 사람 등 좋은 가치가 모두 우리 쪽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선거에서 지는 것일까요? 왜 국민들이 더 많이 지지하지 않는 것일까요? 심지어는 왜 거리감을 느끼기까지 하는 것일까요?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요? 저는 제 자신도 포함해서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일종의 근본주의에서 해답을 찾고 싶습니다.”
“지난 대선 때 종편 방송을 상대하지 않았던 것도 일종의 근본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근본주의가 우리의 세력과 지지 기반을 넓히는 데 스스로 발목을 잡았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제가 외연 확장에 가장 성공한 사례가 윤여준 전 장관의 영입이었다는 데 많은 분의 평가가 일치합니다. 저도 생각이 같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영입할 때 내부에서 반발이 있었습니다. 5공, 6공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정운찬 전 총리와 손잡을 때도, 구민주계(YS계) 인사들을 영입할 때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됐습니다.”
“저 자신도 반성을 합니다. 제 내부에서도 꼭 같은 근본주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저 역시 반대 앞에서 자신이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문재인 경선캠프 사무실(더문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동영상으로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2017.3.24 (서울=연합뉴스)
“이제 우리는 상처와 분열과 갈등을 넘어서서 하나가 돼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통합의 길로 가야 합니다. 타도와 배척, 갈등과 편 가르기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통합은 적폐를 덮고 가는 봉합이 아닙니다. 새로운 나라로 가기 위한 국민적 열망, 정의롭고 상식적인 나라로 가기 위한 국민 모두의 소망 아래 하나가 돼야 합니다. 적폐를 확실히 청산하면서 민주주의 틀 안에서 소수의견도 존중하고 포용하는 원칙 있는 통합이 중요합니다. 통합이야말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결과물이어야 합니다. 또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가기 위한 통합이어야 합니다.”
“영국은 1649년 청교도혁명 때 국왕 찰스 1세를 처형했다. 그러나 그같은 정적에 대한 보복은 혼란과 내분을 가져왔다. 그 결과 크롬웰이라는 더 지독한 독재자가 출현했다. 그 후 영국 국민들은 1688년 명예혁명 때는 찰스 1세의 왕권지상주의를 그대로 답습한 그의 둘째 아들 제임스 2세를 축출할 때 그가 프랑스로 도망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제임스 2세는 프랑스에 머물며 망명정부를 세우고 그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무려 3대에 걸쳐 왕권을 수복하겠다고 영국 정부를 괴롭혔다. 영국 정부는 그러한 사태를 예상했지만 그들을 살려두었다. 정치 보복으로 입게 될 정치적, 사회적 후유증에 비하면 오히려 그편이 낫다고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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