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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안철수 지지 심상찮다

등록 2017-04-16 14:06수정 2017-04-16 14:34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32

여론조사 지지도 티케이에서 수직 상승
재보선 싹쓸이 ‘샤이 박근혜’도 안 지지
지역 유력인사들 잇따라 국민의당 선택
95·96년 반김영삼 ‘전략적 투표’와 비슷
“박근혜 실망 탓 투표율 낮을 것” 전망도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1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1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9일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대결 구도가 무너졌다는 얘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재인-안철수 양강은 어느 한 지역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지 않습니다. 과거 대선처럼 영남과 호남, 충청 지역 유권자들이 한 사람에게 지지를 몰아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티케이(대구·경북)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다소 높고, 피케이(부산·울산·경남)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다소 높습니다. 충청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더 높고 호남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더 높습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보면 지역대결 구도는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티케이 지역에서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 대한 지지가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자체 조사해서 매주 발표하는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티케이 지역을 살펴봤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3월 첫주 6%에서, 둘째주 10%, 셋째주 9%, 넷째주 8%에 머물다가 다섯째주에 갑자기 19%로 뛰었습니다. 그리고 각 정당 경선이 끝난 4월 첫째주에는 38%, 둘째주 48%로 올라갔습니다. 놀라울 정도의 급상승세입니다.

같은 기간 티케이 지역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3%→18%→21%→21%→25%→15%→25%로 등락을 거듭했습니다. 안철수 후보의 상승세와 대조적입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둘째, 4월12일 재보궐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자유한국당이 싹쓸이를 했습니다.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대구시의원, 달서구의원, 구미시의원, 칠곡군의원, 그리고 티케이 영향권인 경남 합천군의원까지 자유한국당 후보들이 당선된 것입니다. 대구에서 발행되는 <매일신문>은 4월14일치 1면에 자유한국당이 대구·경북 재보선을 석권했다는 뉴스에 “티케이 ‘샤이 박근혜’ 대선 최대 변수로”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습니다. 기사 내용 일부를 살펴보겠습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 구속을 거치면서 티케이 한국당 방죽이 완전히 무너지는 듯했으나 막판 ‘샤이’ 표심이 한국당의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5·9 대선에서 이 숨은 표심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대선 판도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크다. 최근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숨은 표심은 대체로 적극 투표층인 강성 보수 성향이 짙은 데다 반문재인 정서가 강해 차악으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에게 쏠렸다. 이들이 강성 친박(친박근혜) 민심으로 대변되는 신당 새누리당을 밀어준다면 안 후보의 표가 잠식돼 문 후보가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재보선에서 자유한국당 싹쓸이를 만들어낸 ‘샤이 박근혜’ 지지층이 대선에서는 안철수 후보를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 및 전망입니다.

셋째, 대구·경북 유력인사 중에서 안철수 후보 쪽으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4월14일 국민의당이 지방분권위원장으로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를 영입했습니다. 지방분권론자인 김형기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과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을 지냈습니다. 김형기 교수는 안철수 후보를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 지도자로 안철수 후보를 평소 존경해왔다. 미래를 대비하는 데 중요한 것이 지방분권 개헌이다. 지역별로 다극발전체제로 가야 한다. 광역정부에 입법, 행정권을 대폭 이양해야 한다.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라고 명시해야 한다. 각계 원로 및 대표들과 상의해서 이 자리에 섰다. 안철수 후보는 지방분권 추진의 확고한 철학과 의지를 가진 분이라고 믿는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었다가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대구에서 당선된 무소속 홍의락 의원도 국민의당 입당을 검토 중입니다. 티케이 지역의 유력인사들이 안철수 후보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이 지역 민심이 안철수 후보 쪽으로 급속히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티케이 지역은 우리나라 보수 기득권 정치 세력의 지역적 기반입니다. 1987년부터 살펴보면 티케이 유권자들은 대체로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을 지지했습니다. 노태우-김영삼-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랬던 티케이가 이번에는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뭔가 좀 이상하지요? 안철수 후보는 티케이가 아닙니다. 굳이 따지면 피케이(부산·울산·경남)입니다. 국민의당의 지역 기반은 호남입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대부분 호남입니다. 티케이는 호남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티케이가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가 뭘까요? 티케이의 안철수 지지는 5·9 대선에서 실제 표로 이어질까요? 티케이 민심을 잘 아는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유권자들이 문재인 후보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갖고 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정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문재인 후보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거부감이 있다.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권자들이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둘째,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야당에 대한 관성적 거부감도 있다.

반면에 안철수 후보는 온건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의당이 호남기반 정당인데도 개의치 않는다. 어쨌든 문재인을 당선시키면 안 되기 때문에 안철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티케이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한 지지가 높았던 것도 같은 이유다. 문재인을 당선시키지 않을 수 있다면 누구든 좋다는 것이다.

홍준표 후보는 될 것 같지도 않고 영 마땅치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보수 정체성이 확실한 유권자들까지도 안철수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김태일 교수는 “티케이의 안철수 지지는 상층부의 선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밑바닥을 흐르는 여론”이라며 “정말로 기류가 심상치 않다”고 거듭거듭 강조했습니다. 김태일 교수는 문재인 후보의 잘못도 지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껴안기 전략을 적극적으로 펴지 않고 지금까지 해 왔던 갈라치기 전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십년 동안 영남 기반 보수 정당만 찍었던 티케이 유권자들이 5·9 대선에서 정말로 안철수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까요? 티케이 유권자들도 전략적 투표를 해 본 경험이 있기는 한 것일까요?

이런 의문에 대한 답변은 “그렇다”입니다. 티케이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은 행태만 보면 과거 호남 유권자들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몰려다닌다”는 것입니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당시 티케이 유권자들은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선거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대구시장 선거에서 민자당 공천을 받은 조해녕 후보가 득표율 16.87%로 4등을 한 것입니다. 당선자는 무소속의 문희갑 후보(36.79%), 2등은 자민련의 이의익 후보(22.14%), 3등은 무소속 이해봉 후보(21.35%)였습니다. 대구의 기초단체장 8개의 당선자는 민자당 2, 자민련 1, 무소속 5였습니다. 경북의 23개 기초단체장 당선자는 민자당 8, 민주당 1, 무소속 14였습니다. ‘무소속 돌풍’이 분 것입니다.

다음 해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대구에서 ‘자민련 돌풍’이 강하게 불었습니다. 대구의 13개 의석이 신한국당 2석, 자민련 8석, 무소속 3석으로 나뉘었습니다. 자민련은 충청도 사람인 김종필 총재가 만든 정당입니다. 쉽게 말해서 1995~1996년 티케이 유권자들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을 혼내주기 위해 ‘전략적으로’ 무소속이나 자민련 후보들을 찍었다는 얘깁니다.

이번 5·9 대통령 선거에서 티케이 유권자들은 문재인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투표장으로 몰려가 안철수 후보를 찍는 ‘전략적 투표’를 정말로 할 수 있을까요? 김태일 교수는 “그렇다”고 말합니다.

물론 다른 주장도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북갑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헌태 위원장은 “안철수 후보의 인기가 급상승 추세에서 한풀 꺾였다”고 분석했습니다. 이헌태 위원장은 이번 대선에서 티케이 지역 투표율이 잘해야 65% 정도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영남일보> 4월15일치 1면 기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영남일보> 1면에는 ‘토요 현장토크-대구 택시기사가 본 대선’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자가 1주일 동안 대구 택시기사들의 말을 듣고 기사를 쓴 것입니다. 이 기사의 제목은 “묻지도 마이소…뽑을만한 사람도 없어예”였습니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택시기사가 많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티케이 지역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 시절 수십년 동안 자신들이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보수 성향이 강하고 폐쇄적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밀어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구속까지 되면서 자존심을 크게 다쳤습니다. ‘상처입은 티케이’가 5·9 대선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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