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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대, ‘6월항쟁’ 졸업하고 ‘촛불혁명’ 진학하다

등록 2017-06-28 10:50수정 2017-06-28 11:00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49]
이인영 의원 6월항쟁 30주년 연속토론 마무리
“정권교체 그때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성공”
‘86세대’의 끝없는 도전…“세번째 혁명은 통일”
우상호 임종석 김영춘 등 정치 리더로 떠올라
젊은 시절의 강렬한 체험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역사적 사건을 집단으로 경험한 세대는 그 사건이 곧바로 그 세대의 정체성이 되기도 합니다. 1950~1953년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가 반공 이데올로기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그런 이치입니다.

20대 젊은 나이에 1987년 6월항쟁을 겪은 세대가 있습니다. 이들은 대학 캠퍼스 안에 갇혀 있던 학생운동을 대중운동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야당 정치인, 그리고 젊은 직장인 ‘넥타이 부대’와 함께 시민혁명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비록 1987년 12월 대선 패배로 좌절했지만, 시민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자부심과 긍지는 이들의 자산이었습니다.

20대 젊은 나이에 전두환 정권과 맞서 싸운 경험 때문인지 이들은 정치에 대한 감각이 유난히 뛰어났습니다. 1987년 대선, 1988년 총선, 1992년 총선, 1995년 지방선거, 1996년 총선 등을 계기로 정치인의 참모나 당직자로 대거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각 대학 학생회장을 지낸 유명인사들은 2000년 새천년민주당, 2004년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 사회는 이들을 ‘386’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는 30대, 대학 학번은 80년대 학번, 출생연도는 1960년대생이라는 뜻입니다. 10년쯤 지나서 40대가 되자 ‘486’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또 10년쯤 지나자 이제는 ‘586’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86세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호칭은 달라졌지만 ‘386’, ‘486’, ‘86’이라는 단어 앞에는 ‘싸가지없는’이나 ‘출세 지향적인’이라는 부정적 수식어가 붙어 다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젊고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반기지 않습니다. 그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더구나 보수 성향의 정치인이나 논객들은 학생운동 출신 젊은 정치인들을 매우 위험한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이념 성향이 ‘반미친북’이라고 의심했고, 대한민국의 기존 질서를 위협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86세대는 지난 20여년 동안 ‘세대의 굴레’ ‘이념의 굴레’ ‘계급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살았습니다.

세월은 흘렀고 86세대는 어느덧 50대가 됐습니다. 2007년 대선에 이어 2012년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패배하면서 86세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그들에게 ‘낡은 진보’라는 새로운 굴레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배들은 86세대 선배들을 기득권 세력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때 가장 혁신적인 세력이라고 자부하던 86세대가 ‘낡은 진보’ ‘기득권 세력’으로 몰리는 굴욕을 당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86세대 안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86세대는 자신들이 대한민국 정치에서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여전히 혁신 세력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습니다. 30년 전의 6월항쟁만 붙들고 사는 ‘퇴물’들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주역임을 입증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을 맞은 것입니다.

이인영 의원.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인영 의원.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1987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초대 의장을 지낸 이인영 의원이 6월항쟁 30주년 연속 토론회를 마련한 것은 30주년을 1년이나 앞둔 2016년 6월이었습니다.

그는 두 가지를 다짐했습니다. 첫째, 6월항쟁은 승리하고 그해 대선은 패배했던 1987년의 데자뷔가 되지 않도록 실천하겠다고 했습니다. 둘째, 어떤 경우에도 6월항쟁이 특정한 세력이나 특정한 인사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매달 한 차례씩 무려 1년 동안 연속 토론회를 진행했습니다.

우리에게 6월항쟁은 무엇인가?(함세웅)

6월항쟁과 개헌(박명림)

6월항쟁과 통일(진희관 임을출 김영윤)

6월항쟁과 노동(김국진 이원보)

6월항쟁과 경제(손종칠 주동헌 유철규)

6월항쟁과 시민사회운동(박석운 이태호 조영선)

6월항쟁과 대선

6월항쟁과 박종철(박래군 권영국)

6월항쟁과 학생운동

6월항쟁과 언론(신태섭)

6월항쟁과 정치(최형익 김용철 안용흔 김형철)

6월항쟁과 민주화운동 역사(박종구 정문영 차성환 이선태 안진걸)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토론회가 진행되는 사이에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 사유화 및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고 광화문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했고,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이인영 의원의 다짐대로 1987년과 달리 이번에는 시민혁명이 곧바로 정권교체로 이어진 것입니다.

지난 6월27일 저녁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1년 동안의 토론회를 결산하는 ‘토크쇼’가 열렸습니다. 6월항쟁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나와 6월항쟁과 촛불혁명을 얘기했습니다. 문익환 목사의 통일운동, 김근태 전 의원의 민주화운동을 얘기했습니다. 이인영 의원이 마지막으로 이런 인사말을 했습니다.

“6월항쟁의 역사 속에서만 살 수는 없었다. 정말 졸업하고 싶었다. 이제 6월항쟁을 졸업하고 촛불혁명으로 진학할 수 있게 됐다. 삶에 자부심이 다시 생겼다. 30년 전에 우리가 그랬듯이 촛불혁명을 경험한 젊은이들이 이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두 번의 시민혁명을 경험한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세 번째 시민혁명에 성공할 수 있다는 욕심이 있다. 통일이다. 올여름부터 민통선을 따라서 걸을 것이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걸을 것이다. 통일될 때까지 걸을 것이다.”

86세대 정치인들은 촛불혁명과 정권교체를 통해 정치인으로서 존재 가치를 입증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5월 11일 오후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을 방문해 우상호 원내대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5월 11일 오후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을 방문해 우상호 원내대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역할에 도전할 것입니다. 한양대 총학생회장 출신 임종석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옆에서 도와 정권교체에 성공했고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발탁됐습니다. 2016년 부산에서 당선된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 김영춘 의원은 최근 해양수산부 장관이 됐습니다.

이들 외에도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활약한 86세대 국회의원들, 단체장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이들이 바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의 리더들입니다. 이들의 정치적 기반은 이제 1987년 6월항쟁이 아니라 2016~2017년 촛불혁명입니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4일 오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4일 오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보수를 자처하는 논객들은 86세대 정치인들을 끊임없이 ‘종북세력’이나 ‘패권세력’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5·9 대선 이후 그런 비난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비판 자체가 사실은 과장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86세대 정치인들의 처신에 그동안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종북이나 패권이라고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대체로 기득권 세력이 반사이익을 챙기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의 프레임이었습니다.

둘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및 구속 수감의 효과입니다. 지금은 보수를 표방하는 기득권 세력이 무슨 말을 하든 다수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싸움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반통일 기득권 세력은 힘을 길러 돌아올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통일을 추구하는 86세대 새로운 정치 리더들은 좀 더 큰 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현대전의 특징은 대치 전선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좀 더 정교하고, 좀 더 겸손하게, 그러면서도 좀 더 담대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86세대 정치인들의 6월항쟁 졸업과 촛불혁명 진학을 축하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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