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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호남은 ‘잘못된 만남’ 이었을까

등록 2017-08-06 16:17수정 2017-08-06 18:10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막전막후 156
전당대회 전격 출마선언에 호남 언론·국회의원 반발
‘중도 노선’ 안철수, ‘저항·투쟁·평화’ 호남과 정체성 달라
2016년 4·13 총선 앞두고 ‘반문재인’ 고리로 전격 제휴
호남-햇볕정책 불가분인데도 대선 때 양비론으로 비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전당대회 대표경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전당대회 대표경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국민의당 의원 40명 가운데 지역구 국회의원은 27명입니다. 호남이 23명으로 거의 전부입니다. 광주 8명 전원(장병완 박주선 송기석 천정배 김경진 최경환 김동철 권은희), 전남 10명 가운데 8명(박지원 이용주 주승용 손금주 정인화 황주홍 윤영일 박준영), 전북 10명 가운데 7명(김광수 정동영 김관영 조배숙 유성엽 이용호 김종회)입니다. 비호남은 김성식 의원(서울 관악갑)과 민주당에서 입당한 이찬열(경기 수원갑)·이언주(경기 광명을)·최명길(서울 송파을) 의원입니다.

2016년 4·13 총선 당시 국민의당은 호남 지역구를 거의 다 쓸어담았습니다. 정당 득표율도 크게 앞섰습니다. 광주는 국민의당 55.61%, 더불어민주당 26.74%, 전남은 국민의당 47.73%, 더불어민주당 30.15%, 전북은 국민의당 42.79%, 더불어민주당 32.26%였습니다.

2017년 5·9 대선에서는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에게 크게 밀렸습니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도 꽤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광주는 문재인 61.14%, 안철수 30.08%, 전남은 문재인 59.87%, 안철수 30.68%, 전북은 문재인 64.84%, 안철수 23.76%였습니다. 그래도 국민의당의 지역 기반이 호남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호남 없이 국민의당은 존립하기 어렵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의 8·27 전당대회 출마로 호남이 술렁이고 있습니다. 8월 3일 출마선언을 호남 신문들이 어떻게 다뤘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광주매일신문>은 1면 머리에 ‘호남민심 안철수 당권도전 싸늘’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광주일보>는 ‘국민의당 앞길 호남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무등일보> 사설은 ‘안철수 당대표 출마 바람직한지 의문이다’입니다. <새전북신문> 3면 머리기사의 제목은 ‘안철수 8·27 등판…호남권 발칵’입니다. <전남일보>는 ‘당 위기 추스린다지만…제3지대 행보 아니냐’는 1면 머리기사를 실었습니다.

<전북도민일보>는 3면에 ‘안철수 당대표 출마선언…당내반발 확산 내홍속으로’라는 제목을 달았고, <전북일보>는 3면에 “국민의당 생존 위해 대표 도전”이라는 안철수 전 대표의 발언을 제목으로 올려 기사를 썼습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지지자들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안 전 대표의 8·27전당대회 출마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왼쪽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4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 국민의당 광주시당 앞에서 시민주권행동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안철수 전 대표의 정계은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지지자들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안 전 대표의 8·27전당대회 출마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왼쪽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4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 국민의당 광주시당 앞에서 시민주권행동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안철수 전 대표의 정계은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안철수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에 반대하는 국민의당 의원 12명(김종회 박주현 박준영 유성엽 이상돈 이찬열 장병완 장정숙 정인화 조배숙 주승용 황주홍)이 8월 3일 성명을 냈습니다. 이 가운데 8명이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입니다. 박지원 김경진 의원도 안철수 전 대표 출마를 적극적으로 만류하고 있습니다.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천정배 의원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에 대한 호남의 반발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명분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안철수 전 대표가 출마를 강행한 이유가 뭘까요?

안철수 전 대표는 “우선 당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당 자체가 사라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당제의 축은 국민의당이 살아야 유지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가요? 정동영 의원이나 천정배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국민의당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일까요? 정동영 의원이나 천정배 의원은 오히려 다당제의 효용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민의당이 존재해야 자신들의 정치적 앞날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진짜 이유는 뭘까요? 대선 이후 호남의 분위기는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쪽으로 확 쏠리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무총리도 호남, 청와대 비서실장도 호남, 검찰총장도 호남입니다. 장·차관 인사에서 호남 출신들이 대약진하고 있습니다. 국민의당 사람들이 ‘인사 폭탄’이라는 단어로 위기감을 표현할 정도입니다.

안철수 전 대표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당 대표를 호남 사람인 정동영 의원이나 천정배 의원이 차지하면 자신은 아이스크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정치인에게 가장 큰 고통은 유권자들에게 잊히는 것입니다. 안철수 전 대표도 이제 정치인입니다.

국민의당 8·27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안철수 전 대표가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혁신 비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국민의당 8·27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안철수 전 대표가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혁신 비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8월 3일 출마선언 장면을 보셨습니까? 8월 6일 기자 간담회 장면을 보셨습니까? 저는 안철수 전 대표의 얼굴에서 활기를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 정치인들의 얼굴에만 나타나는 그런 활력과 윤기 말입니다. 기자들은 이를 ‘카메라 마사지 효과’라고도 합니다.

아무튼 안철수 전 대표가 일단 출마를 결심한 이상 대표 경쟁에서 그가 정동영 천정배 의원보다 훨씬 유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국민의당은 그가 만든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안철수 전 대표의 출마에 반대했던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출마한 이상 도울 수밖에 없다”고 돌아서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미래가 활짝 열릴까요? 안철수 전 대표의 희망대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손잡고 유력한 제3의 정당으로 우뚝 서서 정국을 주도하게 될까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시즌 2’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호남 민심의 흐름을 잘 살펴야 합니다.

사실 안철수 전 대표와 호남의 결합은 처음부터 좀 어색했습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와 호남의 제휴가 갑자기 이뤄졌습니다. ‘반문재인’이 연결고리였습니다. 호남 고연령층을 중심으로 반문재인 정서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호남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탈당한 안철수 전 대표를 대안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정서가 작용한 셈입니다. 이런 식의 결합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 3일 출마선언을 하는 자리에서 정동영 천정배 의원의 노선이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동영 천정배 의원과 안철수 전 대표는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정체성이 다릅니다. 정치인의 정체성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습니다.

정동영 천정배 의원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호남입니다. 두 사람은 호남의 엘리트 출신으로 오랫동안 호남 차별에 맞서서 싸웠습니다.

둘째는 정치개혁입니다. 두 사람은 한때 ‘천신정’으로 불리며 정치개혁에 온몸을 던졌던 동지였습니다.

셋째는 인권과 진보입니다. 천정배 의원은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정치인입니다. 정동영 의원은 희망버스를 타고 현장을 찾아다니던 정치인입니다.

넷째는 햇볕정책입니다. 두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실천하고 계승하고 발전시킨 정치인들입니다.

국민의당 8·27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정동영 의원이 6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국민의당 8·27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정동영 의원이 6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국민의당 8·27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천정배 전 공동상임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국민의당 8·27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천정배 전 공동상임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안철수 전 대표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첫째, 영남입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출신 지역 때문에 차별을 받아본 경험이 없을 것입니다.

둘째, 반정치입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새정치’를 내세워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안철수의 새정치’는 반정치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나마 이제 퇴색해가고 있습니다.

셋째, 중도입니다. 중도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극중주의라는 단어가 안철수 전 대표의 노선을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넷째, 햇볕정책에 대한 양비론입니다. 이런 태도는 중도 노선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햇볕정책에 대해 좀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햇볕정책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입니다. 햇볕정책 때문에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역대 정권에서 햇볕정책 이외에 대북정책이 과연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햇볕정책은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거의 유일한 대북정책입니다. 자유한국당이나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종북세력의 대북정책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도 역대 선거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은 색깔론으로 햇볕정책을 공격했습니다. 표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이번 대통령 선거 텔레비전 토론회에 나와서 “햇볕정책에도 공과가 있다”고 했습니다. 새누리당에서 떨어져 나온 보수 성향의 표를 어떻게든 흡수하려는 계산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철수 전 대표의 발언은 중대한 실수였습니다. 호남 민심이 안철수 전 대표에게서 떠나는 계기가 됐기 때문입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가 박지원 의원의 초대 평양대사 발언을 공격한 일이 있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는 “농담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박지원 의원의 초대 평양대사 발언은 농담이 아니라 그의 오랜 염원입니다.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후보 단일화를 위한 물밑협상이 오고 간 일이 있습니다. 박지원 의원은 안철수 전 대표에게 “내가 탈당할 테니 유승민 후보와 후보 단일화를 하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호남 민심의 이탈을 우려한 안철수 전 대표는 박지원 의원의 탈당에 반대했고 후보 단일화도 포기했습니다. 실제로 박지원 의원이 탈당했다면 호남 민심은 안철수 전 대표에게서 더욱더 멀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와 역사에서 호남은 단순히 어떤 지역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호남이라는 단어 속에는 차별에 맞선 저항, 독재에 맞선 민주화 투쟁, 분단에 맞선 한반도 평화 등 여러 가지 개념이 녹아들어 가 있습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정권은 호남을 탄압했습니다. 단순한 지역 차별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차별세력, 독재세력, 분단세력이었기 때문에 호남을 짓밟은 것입니다. 호남이 맞서 싸운 것은 단순히 영남이 아니라 차별과 독재와 분단이었던 것입니다.

안철수 전 대표가 만든 국민의당은 이런 호남에 지역 기반을 가진 정당입니다. 그런데 안철수 전 대표의 정치 노선은 중도입니다. 중도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주의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차별에 맞선 저항, 독재에 맞선 민주화 투쟁, 분단에 맞선 한반도 평화와는 잘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정치인 안철수와 호남 사이에는 처음부터 건너기 어려운 큰 강이 흐르고 있었던 것은 혹시 아닐까요?

8·27 전당대회에서 안철수 전 대표가 당권을 장악하면 바른정당과 합당이나 연대를 추진할 것입니다. 그가 내세우고 있는 중도 노선이나 극중주의에 의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바른정당은 바른정당의 논리와 원칙이 있습니다. 바른정당은 거칠게 말하면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입니다. 김무성 의원이나 유승민 의원은 대북정책에서 자유한국당 못지않게 극우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안철수 전 대표가 바른정당에 합당이나 연대를 요구하면 바른정당은 안철수 전 대표에게 햇볕정책과의 결별을 조건으로 내세울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박지원 의원을 쫓아내라고 주문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안철수 전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할까요? 호남이라는 ‘지역’은 바짝 끌어안고 햇볕정책이라는 ‘이념’과는 좀 거리를 두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호남과 햇볕정책은 분리가 가능하지 않습니다.

일요일인 6일 국회에서 세 사람이 각각 기자 간담회를 했습니다. 천정배 의원은 11시, 안철수 전 대표는 오후 2시, 정동영 의원은 오후 3시였습니다.

■ 천정배

“호남은 국민의당에 정치적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어미의 뱃속과도 같은 곳입니다.”

“호남에 갇혀서도 곤란하지만 호남을 외면해서는 국민의당의 미래는 없습니다. 지난 대선 패배는 결국 호남 민심을 얻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 중 하나였습니다.”

“안 전 후보가 생각하는 소통의 대상에 호남은 있습니까? 호남은 안 전 후보에게 사랑과 존경의 대상입니까, 극복과 배제의 대상입니까?”

■ 안철수

“호남이 국민의당을 세워주신 것은 그것을 기반으로 전국정당이 되라는 염원이었습니다. 직접 대화한 호남분들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밀어줄테니 뻗어나가라, 더 발전하라, 민주당과 강하게 경쟁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번 전당대회를 호남-비호남으로 나누려는 시도는 이해가 안 됩니다. 전당대회에서 당을 분열시키는 게 아닌가 우려됩니다. 친안철수-비안철수, 호남-비호남 이런 구도는 당이나 정치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고 실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정동영

“극중주의는 한국 정치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구호입니다. '새정치'라는 말이 지금까지 모호했듯이 극중주의라는 구호 역시 모호합니다. 극중주의라는 구호에는 방향이 없고, 신념이 없다는 점에서 기회주의적입니다. 지난 1년 반 당이 걸어온 길이 극중주의라면 실패한 것입니다. 극중주의가 당의 보수화를 말하는 것이라면 5월 대선을 만들어낸 촛불민심으로부터의 이탈입니다. 촛불을 들었던 국민의 요구는 개혁인데 극중주의란 모호한 말로 보수화의 길을 간다면 국민의 지지는 회복할 길이 없게 됩니다.”

누구의 말이 가장 설득력이 있습니까? 누가 국민의당과 호남과 대한민국을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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