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직접 기록원 찾아가 필사
추혜선, 방송·통신 천착 ‘갑질’ 밝혀
채이배, 회계사 출신으로 재벌 겨냥
정용기, 다주택 공직자 전수조사
지상욱, 대기업 부정 봐주기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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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만큼 거둔다.’ 국회의원이 한해 농사의 결실을 거둬들이는 국회 국정감사의 불문율이다. 유권자의 관심을 먹고 사는 의원들에게 국감만큼 한껏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는 없다. 하지만 298개 정예팀(의원실)이 각자의 승리를 위해 내달리는 상황에서 한 끗을 가르는 건 결국 주전선수인 의원 본인의 노력이다. 며칠씩 밤잠을 못 이루고 질의서를 만들어도 “의원이 얼마나 내용을 잘 소화하느냐”에 한해 농사의 성패가 달렸다는 게 보좌진들의 설명이다. 하물며 의원이 직접 발로 뛰어 ‘취재’까지 해준다면 풍작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초선으로 올해 두 번째 국감을 치르는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행정안전위·비례)이 그런 경우다.
이 의원은 지난 9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청와대 보고·회의 문건을 입수해 ‘한 방’을 터뜨렸다. 아니, 여러 방을 터뜨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보고받았고, 청와대가 야당 지방자치단체장을 사찰하는 등 노골적인 정치 개입에 나섰다는 폭로였다. 박 전 대통령 당시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회의에서 조직적 노동 탄압이 기획된 사실 등도 이 의원의 추적으로 드러났다. 그의 활약에 의원회관에선 “청와대가 이재정 의원에게 전 정부 문건을 통째로 내준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들이 나왔다. 하지만 이 의원의 잇딴 ‘특종’은 얻어걸린 게 아니다. 그가 지난달 직접 보좌관과 함께 국가기록원을 찾아 이틀동안 관련 문건들을 열람하고 필사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17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기록관이 문 열때 들어가서 문 닫을 때까지 자료를 검토했다”고 전했다. 이틀 간 아침부터 밤 11~12시까지 면장갑을 낀 채 비닐에 보관된 문서들을 일일이 꺼내봤다. 자료를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옮겨적은 보좌관은 농반진반 “손목 터널증후군이 생길 정도”라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을 피감기관으로 둔 이 의원은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고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면서부터 기록물 전문가들과 청와대 기록물의 처리에 대해 고민해왔다. 자칫 국정농단의 실태가 길게는 30년 동안 봉인될 수 있어서다. 올해 초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세월호 당시 기록 등 박근혜 청와대의 자료들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할 때도 목소리 높여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의 제정 취지와 무관하게 범죄 혐의점이 있는 문건들마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돼 공소시효를 넘기도록 봉인돼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국감에서 꾸준한 관심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의원이 되기 전의 ‘전공’을 살려 활약하는 이들도 있다. 언론 시민단체 출신인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비례)은 방송 공공성, 통신비 인하, 방송통신서비스 분야의 노동 문제 등을 전방위로 다루며 일당백을 맡고 있다. 추 의원은 통화에서 “다른 정당에 견줘 인원은 적고, 검토할 자료 범위는 많다 보니 시스템에서 밀린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촛불민심 이행 국감, 적폐청산 국감, 노동 중심 개혁 국감이라는 우리 당의 기조를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의원이 되기 전부터 싸워온 태광그룹의 케이블방송사업자 ‘티브로드’노사 문제를 사쪽으로부터 “정의당 미친 X” 소릴 들을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 있다. 티브로드 사장을 이번 국감의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추 의원의 제안은 당초 여야 의원들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2일 국감장에서 티브로드 사쪽이 추 의원을 겨냥해 “정의당, 그 미친 X 입을 찢어 죽여버릴까”라고 말한 녹취록을 추 의원이 공개하자 여야 의원들은 티브로드 사장을 증인으로 세우는 데 뒤늦게 합의하기도 했다. 에스케이(SK)텔레콤 등 통신사들의 고액요금제 리베이트 요구 등 유통구조의 ‘갑질’때문이라는 점을 밝혀내고 SKT로부터 근절 약속을 받아낸 것은 이번 국감의 최대 성과다. 추 의원은 “가계통신비를 지키는 통신요정으로 불러달라”고 웃으며 말했다.
회계사 출신으로 경제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에서 활동한 채이배(정무위·비례) 국민의당 의원은 이번 국감에서도 전문성을 발휘해 재벌 총수의 전횡과 감독당국의 책임을 살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오는 19일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의 회사 기회 유용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칠 예정이다. 올해 최 회장이 에스케이실트론 지분을 취득한 것은 ㈜에스케이 또는 에스케이 하이닉스의 사업기회를 유용한 행태라는 지적이다. 채 의원은 경제개혁연대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한솥밥’을 먹었으나 이번에는 피감기관과 상임위 의원으로 만났다. 채 의원은 “국민의당이 제대로 된 야당의 역할을 하겠다. 전 정부, 이번 정부 가리지 않고 균형감있게 문제 지적할 건 지적하면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채 의원은 금융과 관련해서도 보험 소비자 보호,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집중 검증하며 경제 전문 시민단체 출신의 면모를 발휘하고 있다. 채 의원은 “2년차를 맞이한 만큼 더 나은 국정감사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일부 상임위에서 야당의 국감 보이콧 등 파행이 속출하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를 정조준하는 매서운 질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라는 구절이 있다. 공직자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난 12일 국회 국회교통위원회의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재선의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국토교통위·대전 대덕)은 “다주택자는 살지 않는 집을 좀 파시라”는 김현미 장관의 말을 문제 삼았다. 정 의원이 이를 위해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청와대·국무총리실·중앙부처 등의 1급 이상 공직자 655명의 재산등록 자료를 꼼꼼하게 전수조사했다. 그 결과 고위공직자의 42%인 275명이 2채 이상 집을 보유했으며, 5채 이상 보유자도 16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655명이 보유한 주택은 모두 1006채였는데, 이 가운데 666채(66%)가 투기과열지구에, 277채(28%)는 서울 강남 4구에 위치한 사실도 짚어냈다. 8·2 부동산 대책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장담한 정부로서는 ‘솔선수범’부터 보여야 하는 난감한 조사 결과를 맞닥뜨린 셈이다. 정 의원은 “정부 1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42%가 다주택자다. 고위공직자는 집을 많이 갖고 있으면서 국민 다수를 죄악시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당장 정부로서는 정책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내년 공직자 재산신고 때까지 다주택 보유 고위공직자 비율을 크게 낮춰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당이 분당될 위기에 처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이지만 바른정당에선 지상욱 의원(정무위·서울 중성동을)이 국감에서 대기업의 회계 부정 ‘봐주기 의혹’, 정부의 취업 비리 부실 감찰, 서민들의 억울한 금전 피해 사례들을 짚어내는 등 다방면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 의원은 금융당국이 효성의 회계 부정을 발견하고도 제재 수위를 낮춘 문제를 지적하는가 하면, 상조업체의 폐업 또는 등록 취소로 보상금을 받지 못한 서민들의 금적 피해 규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 의원은 또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이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실을 발견하고도 은폐·축소했다며 부실 감찰 문제를 질타했다. 지 의원은 국감 기간에 당의 일부 의원들이 자유한국당과 통합하자며 당을 흔들자 “국감 중에 당을 깨려는 건 국민에 대한 기만”이라며 동료 의원의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엄지원 송경화 김남일 송호진 기자 umkija@hani.co.kr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겨레 자료사진.
추혜선 정의당 의원. 한겨레 자료사진.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 한겨레 자료사진.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 한겨레 자료사진.
지상욱 바른정당 의원.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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