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당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앞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규탄 장외집회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조국 사태’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당장의 관심사는 2일과 3일 국회 인사청문회 여부,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를 장관에 임명할 것인지 여부입니다. 그 뒤로도 검찰의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잇단 호재에 잔치 분위기입니다. 8월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 집회에 이어, 30일 부산 송상현 광장 집회, 31일 서울 사직공원 집회의 ‘주인공’도 조국이었습니다.
부산 집회의 손팻말은 ‘조로남불 위선정권’, ‘공정당당 대한민국’, ‘문재인 STOP’이었습니다. 31일 사직공원 집회의 손팻말은 ‘아빠가 조국이 아니라서 미안해’, ‘조로남불 위선정권’, ‘조국은 사퇴하라 문재인 사죄하라’였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위기에 처했던 자유한국당을 조국 후보자가 살려주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좀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조국 후보자만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 후보자를 이른바 ‘386’의 대표자로 설정해 놓고, ‘386’을 통째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의 31일 논평 중에 이런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조국으로 상징되는 무리들은 누구인지 똑바로 보자. 자유대한민국의 온갖 수혜는 다 찾아 누리면서, 심지어 뺏어서까지 누리면서 입으로는 정의를 독점했던 사람들이다.
남의 자식에게는 ‘개천의 용이 되지 말아라’, ‘붕어로 가재로 살라’하며 ‘너희가 세상을 바꾸라’고 외치고, 자기 자식에게는 자자손손 부와 권력의 대물림을 위해 모든 편법과 인맥을 동원해 스펙 만들어 명문대학 입학시키고 의사, 변호사 만들고 축배 들던 사람들이다.
이 껍데기가 조국으로 인해 벗겨지자 586 수구 위선 좌파들이 마지막 결집을 시작했다. 대학, 법조, 예술, 언론계 최고의 기득권이 된 이들이 아직도 그들의 허무한 말에 속아 가재, 개구리, 붕어가 될 위기에 처한 이들을 또다시 이용하고 있다.”
지난 24일 자유한국당 광화문 집회에서 연설자로 나선 청년단체 대표는 “도덕과 정의를 부르짖던 386 운동권들은 조국을 비호하고 있다. 너무나 역겹다. 평소 그렇게 도덕과 정의를 부르짖어 놓고 조국을 비호하고 있다. 그들에게 도덕과 정의는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비겁한 무기에 불과하다”고 외쳤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지금 들고나온 무기는 이른바 보수 정당과 이른바 보수 언론이 매우 오랫동안 집요하게 제기했던 ‘386프레임’이라는 무기입니다. ‘386프레임’이 뭘까요?
이른바 보수는 ‘386’ 앞에 대개 ‘종북’이나 ‘좌파’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반공 프레임’ ‘빨갱이 프레임’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노무현 정부 이후에는 “권력과 부를 장악한 기득권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습니다. ‘386 프레임’을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게 됩니다.
전두환 정권에 맞서 싸우며 자유와 민주, 정의를 외쳤던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정체는 ‘종북’이다. 그들이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한 뒤 국정을 운동권식으로 운용하며 대한민국을 ‘좌파 공화국’으로 만들고 있다. 따라서 그들을 하루빨리 권력에서 쫓아내야 한다.
‘386’은 한때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그들은 겉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말했지만, 뒤로는 권력과 부를 챙겨 이제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됐다. 위선자들이다. ‘386’ 이후 세대인 ‘엑스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는 ‘386’을 따를 이유가 없다.
어떻습니까?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두 가지를 따져 보겠습니다.
첫째, 이른바 보수가 이처럼 ‘386프레임’을 짜서 확산시키는 이유가 뭘까요?
정당성을 둘러싼 일종의 역사 논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보수의 뿌리는 과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에 정치권력 및 독점자본과 결탁해서 권력과 부를 장악한 분단 기득권 세력입니다.
이에 비해 ‘386’은 전두환 독재 및 분단 기득권 세력과 맞서 싸웠던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분단 기득권 세력으로서는 ‘386’의 정당성을 어떻게든 훼손하고 축소해야 자신들의 정당성이 커지게 됩니다.
둘째, 그렇다면 ‘386프레임’의 내용은 사실일까요?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이 지금 한국 사회를 장악해서 좌파 공화국을 만들고 있을까요? ‘386 세대’는 위선자들일까요?
이 부분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386’을 둘러싼 최근 한국 사회의 세대 논쟁을 조금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386’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대입니다. 30대 나이,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을 의미합니다. 1990년대에 출시된 386급 컴퓨터에서 따온 말입니다. 세월이 흘러 386은 486이 됐고 다시 586이 됐습니다. 이제는 그냥 ‘86’이라고 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조국 교수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기 전부터 한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386 책임론’이 이미 제기되어 있었습니다.
서강대 사회학과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문학과 지성사)가 발매된 것은 8월 9일이었습니다. 앞서 7월에는 <386 세대유감-386 세대에게 헬조선의 미필적 고의를 묻다>(웅진지식하우스)라는 책도 나왔습니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대해 ‘386 세대’에게 책임을 묻고, 양보를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386 세대’가 이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50대 장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분석과 주장입니다. 이철승 교수와 <386 세대유감> 저자 중 한 사람인 우석훈 박사가 ‘386 세대’이기 때문에 일종의 386 자성론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세대 논쟁에는 조금 조심해야 할 몇 가지 지점이 있습니다.
첫째, 사실은 ‘386 세대’라는 단어 자체가 크게 잘못된 용어입니다.
386의 8이 80년대 학번을 의미하는데, 1980년대의 대학 진학률은 30%에 불과했습니다. 1960년대에 출생한 사람 가운데 70%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1960년대 출생자들을 통틀어 ‘386 세대’라고 지칭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386 세대’를 다룬 언론의 기사나 저술 가운데 대부분은 대학에 진학한 30%나 대기업 임원 등 고소득자, 또는 정치에 진출한 극히 일부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둘째, 1980년대 대학생 가운데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던 ‘운동권’이 얼마나 됐을까요? 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리 많이 잡아도 10%를 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른바 보수가 ‘386’ 앞에 자꾸 ‘종북’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이유는 당시 전대협 등 민족민주(엔엘) 계열이 학생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 가운데 대부분은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해 지금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나 태극기 원조를 자처하는 김진태 의원도 1980년대에 서울대학교를 다닌 ‘386 세대’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386’이라고는 잘 부르지는 않습니다. 386이라는 말 속에 ‘종북’이나 ‘친북’이라는 정치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셋째, ‘386 세대’가 기득권층이 된 것은 ‘연령 효과’에 따른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사회든 50대는 가진 것이 가장 많은 기득권층입니다. 1960년생이 내년이면 60세입니다. 1969년생은 51세입니다. 386 세대가 곧 50대인 것입니다. 10년 뒤에는 지금 40대가 기득권층이 될 것입니다. 20년 뒤에는 지금 30대가 기득권층이 될 것입니다.
출생연도별 인구도 고려해야 합니다. 인구가 많은 세대의 목소리가 큰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386 세대는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 출생)와 절반쯤 겹치는 세대입니다. 우리나라 연령별 인구 그래프를 보면 1971년에는 피라미드 모양이었지만, 지금은 다이아몬드 모양입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가운데 와 있기 때문입니다. 2050년이 되면 위쪽이 뚱뚱하고 아래쪽이 가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386은 종북”이라는 이른바 보수 세력의 ‘386프레임’이나, “386이 부당하게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386 비판 논객들의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른바 ‘386’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유난히 미움을 많이 받는 이유가 뭘까요?
첫째, 여러 분야에서 386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60대 이상 고연령층의 상실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둘째, 1980년대에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1960년대생 70%의 억울함도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세대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한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자신의 세대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셋째, 386 세대의 다음 세대인 ‘엑스 세대’(1970년대생)와 ‘밀레니얼 세대’(1980대~1990년대생)는 386 세대를 ‘꼰대 세대’로 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년층에 대해 청년층이 적개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386 세대가 20년 전에 그랬고, 60대 이상 고연령층이 30년 전에 그랬듯이 말입니다.
여기에 이른바 보수 세력의 청장년층 세대갈등 부추기기 선동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연령대별로 지지하는 대선 후보가 확연히 갈리는 ‘세대 투표’ 현상이 처음 나타난 것은 2002년 대선이었습니다. 20대와 30대는 노무현 후보를 많이 찍었고, 40대는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를 비슷하게 찍었습니다. 50대와 60대 이상은 이회창 후보를 더 많이 찍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당시의 30대는 50대가 됐습니다. 이른바 보수 세력으로서는 60대 이상 고연령층의 지지만으로 정권을 잡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50대인 ‘386 세대’와 40대인 ‘엑스 세대’, 20~30대인 ‘밀레니얼 세대’를 어떻게든 분리하지 못하면 승산이 없습니다. 자유한국당과 이른바 조중동이 386 세대에 맹폭을 퍼부으며 세대갈등을 자꾸 부추기는 배경입니다.
한겨레신문 8월 29일 치 여론 면에 양의모 씨의 ‘다시 고개 드는 세대갈등론에 관하여’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를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몇 가지 고민해 볼 지점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세대갈등론이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이철승 서강대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로 인해 촉발된 세대갈등론은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한겨레>도 최근 저자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미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돼 한국 실정에 밝다고 할 수 없는 한 교수의 주장에 이토록 귀를 기울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구심이 든다.
이런 세대갈등론은 그 기만성이 입증된 주장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세대갈등으로 바꿔치기하여 희석시키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자식의 일자리를 아버지가 빼앗는다는 단순한 논리는 언뜻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사회경제적 문제를 ‘노노 갈등’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자본의 책임에 면죄부를 주는 논리다. 보수언론은 그렇다고 쳐도 진보언론마저 이런 철 지난 주장을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386 세대가 기득권이라는 생각 자체가 팩트가 아니다. 물론 386 세대 중에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연령적으로 볼 때 한국 사회의 기득권적 지위를 누릴 시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런 논리로 치면 10년 전에는 475세대가 그러한 비난의 대상일 것이고 10년이 지나면 297세대로 바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는 기득권층을 단지 세대라는 잣대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더구나 386 세대의 대다수는 기득권층이 아니다. 38선, 45정, 56도라는 말로 알 수 있듯이 386 세대 가운데 대기업 정규직인 사람들의 비율은 10%도 안 될 것이다. 대다수는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비기득권층이고 대기업에서 일한 사람들도 대부분은 명예퇴직 등으로 일터를 나왔다. 386의 8은 대학의 학번을 의미하는데 당시 대학 진학률이 30% 안팎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386 세대의 기득권이란 애초부터 한정된 사람들의 것이었다. 오히려 386 세대 내에 존재하는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의 차이가 더 크게 부각돼야 하고 이는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하는데, 하나의 세대를 모두 기득권으로 치부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그렇다고 젊은층이 모두 희생자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엄청나서 같은 세대 내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지는 상황이다. 모든 젊은 세대가 희생자라는 식의 판단도 오류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자랑하지만 그들이 쌓은 스펙이 누구의 지원으로 가능했는지 생각하면 젊은 세대가 희생자라는 논리는 더욱더 어불성설이다.
민주화와 산업화의 전선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룬 386 세대를 그저 기득권에 안주하는 ‘괴물’로 만든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사회적 갈등이 해소될 거라는 이철승 교수의 순진함에 언론이 동조하고 나서는 이유를, 386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묻고 싶다. 이런 낡고 기만적인 세대갈등론에 휘둘리지 않기를 386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8월 29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메디치 미디어> 창간 11주년, <피렌체의 식탁> 창간 1주년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엑스 세대에서 낀낀 세대로-40대,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주제였습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는 86세대의 권력 독점으로 사회적 양극화를 설명하려는 시각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86세대의 기득권은 절대다수 인구 규모에서 기인한 것이다. 86 세대 중심의 중후장대형 산업이 몰락하고 4차 산업혁명으로 노동의 본질이 변화함에 따라 86세대는 이제 급속히 퇴장할 것이다. 현재 세대 논쟁은 지나치게 엘리트 그룹과 정치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40대의 미래는 세대갈등이 아니라 계급 갈등에 달렸다.”
세대갈등 논쟁은 참 어려운 논쟁입니다. 세대갈등은 엄연히 실존하는 것이지만, 세대갈등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달려들어서도 안 됩니다.
조국 후보자 논란을 자꾸 386 세대의 문제로 환치시키려는 이른바 보수 세력의 시도는 그 의도가 너무나 뻔히 보이는 정치 공작입니다.
조국 후보자에 대해 제기되는 여러 가지 의혹은 아직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청문회와 검찰 수사를 통해 하나씩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조국 후보자의 의혹 가운데 몇 가지가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그건 조국 후보자의 문제일 뿐입니다. 386 세대의 문제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조국 후보자를 386의 대표자로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는 386 학생운동권 출신 중에는 잘사는 사람보다 못사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보안법이나 집시법 전과 때문에 제때 취업을 못 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들이 들어갈 수 있었던 직장은 언론사나 국회의원 보좌진, 그리고 전과를 문제 삼지 않았던 극히 일부 기업체 정도였습니다. 자식 공부를 제대로 시키지 못한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념과 가치, 계급의 문제를 세대갈등으로 물타기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분단 기득권 세력의 갈라치기 음모에 걸려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