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후보가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비전발표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준석 돌풍이 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도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고 흥분하는 목소리가 넘쳐납니다.
그런데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수 없습니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1985년생으로 36세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67조 4항에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헌법에 별 조항이 다 있지요?
대통령 피선거권 40세 이상 조항은 1963년 헌법에 처음 들어간 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63년 개정 헌법은 박정희 쿠데타 세력의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의결하고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된 헌법입니다.
1963년 헌법
제64조
①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다만, 대통령이 궐위된 경우에 잔임 기간이 2년 미만인 때에는 국회에서 선거한다.
②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계속하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40세에 달하여야 한다. 이 경우에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은 국내 거주 기간으로 본다.
③ 대통령 후보가 되려 하는 자는 소속 정당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④ 대통령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박정희 쿠데타 세력은 왜 대통령 피선거권을 하필 40세 이상으로 제한했을까요? 국가재건최고회의 회의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위한 ‘위인설법’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합니다. 박정희 의장은 1917년생이었습니다. 1961년 쿠데타를 일으킬 때 44세였고, 1963년 대통령 선거 때 46세였습니다. 혹시 자신보다 젊은 정치인의 도전을 두려워했던 것 아닐까요?
어쨌든 이 규정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30대 대통령의 출현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헌법 조항이기 때문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청구할 수도 없습니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대통령이 되려면 먼저 헌법부터 개정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미국 대통령의 피선거권은 “미국에서 출생한 시민으로서 14년 이상 미국에 거주하고 35세 이상인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젊은 대통령 출현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훨씬 더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엄격한 나라인가 봅니다.
40세 이상 피선거권 헌법 조항의 부당성은 헌법학자들도 인정합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개정안을 발의해서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쳤지만, 투표가 성립하지 않는 바람에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 일이 있습니다. ‘문재인 개헌안’입니다.
문재인 개헌안은 대통령 피선거 연령을 아예 삭제했습니다. 40세 미만이라도 국회의원 피선거권이 있으면 누구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이 이뤄졌다면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통령만 피선거권 연령 제한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회의원,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은 25세가 넘어야 합니다. 공직선거법 16조 피선거권 조항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제16조(피선거권)
①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의 피선거권이 있다. 이 경우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과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 기간 외국에 체류한 기간은 국내거주 기간으로 본다.
② 25세 이상의 국민은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다.
③ 선거일 현재 계속하여 60일 이상(公務로 外國에 派遣되어 選擧日전 60日후에 귀국한 者는 選擧人名簿作成基準日부터 계속하여 選擧日까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구역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주민으로서 25세 이상의 국민은 그 지방의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피선거권이 있다. 이 경우 60일의 기간은 그 지방자치단체의 설치ㆍ폐지ㆍ분할ㆍ합병 또는 구역변경(제28조 각 호의 어느 하나에 따른 구역변경을 포함한다)에 의하여 중단되지 아니한다.
④ 제3항 전단의 경우에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소 소재지가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구역에 있어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주민등록이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구역에 있게 된 때에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구역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선거권 연령은 오랫동안 20세였는데 2005년 선거법 개정으로 19세로 낮췄다가 2019년 18세로 다시 낮췄습니다. 따라서 지금 18세부터 24세까지의 유권자는 투표는 하면서도, 국회의원,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출마할 수 없습니다.
피선거권 연령 제한이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기한 일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이런 결정문을 남겼습니다.
2004헌마219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제16조 제2항 위헌 확인
따라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권리로서 피선거권을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부여할 것인지는 입법자가 그의 입법형성권의 범위 내에서 스스로 정할 사항이지만, 이때에도 헌법이 피선거권을 비롯한 공무담임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취지와 대의민주주의 통치질서에서 선거가 가지는 의미와 기능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헌법적인 한계가 있다.(중략)
국회의원의 피선거권 행사연령을 25세 이상으로 정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제16조 제2항은 입법자의 입법형성권의 범위와 한계 내의 것으로, 청구인들의 공무담임권 등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정도로 과도한 것이라 볼 수 없다.
합헌이라는 의미입니다.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16년이 흘렀습니다. 여러분은 피선거권 25세 이상 연령 제한이 지금도 정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대통령 피선거권을 40세 이상으로 제한하는 것이나 국회의원,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 피선거권을 25세 이상으로 제한하는 것이 모두 다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9세는 대통령을 할 수 없고 40세는 대통령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의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요? 24세는 국회의원을 할 수 없고 25세는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과연 타당할까요?
이제 모든 공직선거에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일치시킬 때가 됐습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사람이 공직을 담당할 자격이나 능력이 부족한지 아닌지는 유권자들의 판단에 맡길 일이지 헌법이나 법률로 규정할 일이 아닙니다.
젊은 사람들의 선출직 출마를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것은 심하게 표현하면 세대 기득권자들의 폭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8세 미만의 당원 가입을 금지하고 있는 정당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진한 청소년들을 정치로 오염시키면 안 된다”는 주장의 뒷면에는 젊은이들이나 청소년들이 가급적 정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기성세대의 반정치주의 음모가 숨어 있습니다.
최근 중앙선관위가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발표했습니다. 정당 가입과 투·개표 참관 가능 연령을 16세로 하향 조정하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육 목적의 모의투표를 허용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중앙선관위의 법 개정 의견은 바람직합니다. 미래 유권자인 청소년들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민주시민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론의 반응이 미묘합니다. <동아일보> 정용관 논설위원은 ‘16세 정당인’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찬성 의견을 밝혔습니다. <조선일보>는 “모의투표도 반대하더니 ‘고교생 정당 가입 허용’”이라는 제목의 비판적 기사를 실었습니다.
앞으로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대로 정치관계법이 개정되려면 국회 위원회 심의와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합니다. 정치관계법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여당과 야당이 합의해서 개정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게임의 규칙 성격을 갖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중앙선관위의 이번 법 개정 의견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처럼 불기 시작한 정치 개혁의 바람을 잘 살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이런저런 핑계로 정치관계법 개정에 반대한다면 정치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낙인이 찍힐 것입니다.
특히 보수 야당인 국민의힘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와 30대 유권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압승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젊은 유권자들이 이준석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한발 더 나아가서 저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서 국회의원,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 피선거권 연령 제한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8세 이상 선거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국회의원,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에 출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청년정의당 강민진 대표(가운데)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청년에게 출마할 권리를, 2030 대통령선거 피선거권 보장 추진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정의당 류호정 의원, 오른쪽은 장혜영 의원. 연합뉴스
그리고 또 한 발짝 더 나아가서 향후 개헌을 하게 되면 반드시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 제한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마침 정의당은 30일 개헌과 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선거 출마 연령 제한 조항을 철폐하자는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장혜영·류호정 의원과 ‘정의당 내부 정당’인 청년정의당의 강민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0세로 대통령 피선거권을 제한한 헌법 67조에 대해 “차별이자 불공정한 헌법조항”이라며 “대선은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 누구나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여야, 원내외, 청년 정치인을 막론하고 피선거권 연령 하향을 위한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자고 제안할 것”이라며 특히 여야 대선 주자들을 향해 “대선에서 청년을 원천 배제하는 현행 피선거권 연령제한 장벽을 없애는데 동의하는지, 공직선거법상 출마 연령 하향을 추진할 의향이 있는지 밝혀달라”고 했습니다. 정의당의 주장처럼 개헌·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대한민국은 20대 대통령, 30대 대통령이 가능해집니다. 생각만 해도 너무나 멋지지 않습니까?
지난해 9월 표창원 전 의원이 <한겨레>에 우리나라에 ‘청년 정치 육성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탁월한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나라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캐나다의 트뤼도, 프랑스의 마크롱 등 청년 정치지도자의 혁신과 성취 역시 유사한 배경과 과정을 공유한다. 어린 시절부터 정치 꿈나무들이 기존의 관습과 위계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토론하고 협의하고 의사를 표현하고 일선 현장 경험을 하면서 정치 역량을 키우고 능력을 검증받는 ‘청년 정치 육성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을 거쳐 선출직과 임명직에 입후보하거나 진출하면서 프로 정치인으로 데뷔하는 순간, 이들에겐 기존 정치인과 동등한 기회와 자격이 부여된다. 오직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공정하고 투명한 프로 정치 시스템이 가동되는 것이다.
청소년 정당 가입을 금지하고, 20대 초반에는 지방의원조차 출마할 수 없도록 묶어 놓은 상태에서 우리는 선거 때만 되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정치를 욕합니다. 정치의 혁신을 가로막아 놓고 정치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그런 위선에서 벗어날 때가 됐습니다.
어느 나라든 정치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반영합니다. 우리도 이제 정치 선진국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