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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대선 캐스팅보트급’이지만…한표 던지러 수백㎞ 공관 찾는 사람들

등록 2021-09-11 12:25수정 2021-09-12 10:54

[한겨레S] 커버스토리 _ 대선 D-180, 재외국민 우편투표 요구 왜?
“비행기로 차로, 투표 원정단 꾸려 … 재외선거 아니라 ‘제외’ 선거”

재외국민들이 재외국민선거 우편투표제도 도입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 릴레이 인증샷’을 진행하고 있다. 재외국민유권자연대 제공
재외국민들이 재외국민선거 우편투표제도 도입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 릴레이 인증샷’을 진행하고 있다. 재외국민유권자연대 제공

전세계 재외국 선거권자 ‘대선 캐스팅보트급’ 규모지만
투표하러 수백㎞ 공관 찾는 힘겨움에 ‘투표율 한자릿수’

“지난번엔 국정농단 때문에 투표했지, 비행기까지 타면서 더는 투표 못 할 거 같아요. 총선은 더 엄두를 못 냈고요.”

19대 한국 대통령 선거일(5월9일)을 열흘 남짓 앞둔 2017년 4월27일.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 지역에 사는 최아무개씨는 재외국민 선거권 행사를 위해 새벽 첫 비행기를 탔다. 크게 두 섬으로 나뉜 뉴질랜드에 한국대사관이 있는 북섬 웰링턴에만 재외국민 투표소가 설치됐기 때문이다.

최씨의 당일치기 투표 여정은 험난함 그 자체였다. 저가 항공사를 이용하면서도, 그중에 티켓값이 더 싼 새벽 6시35분 웰링턴행 비행기를 끊었다. 새벽 4시께 잠에서 깬 뒤 우선 아이들 도시락을 쌌다. 일부러 일찍 일어난 고교 2학년 큰아들이 직접 차를 몰아 공항까지 데려다줬다. 당시 최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큰아들이 나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꼬불꼬불 복잡한 길을 잘 돌아올 수 있을지…”라며 걱정 가득한 글이 남았다. 직선거리로만 300㎞를 넘는 북섬까지 비행기로 날아간 뒤 다시 버스로 도착한 주뉴질랜드대사관 재외투표소는 단출했다. 빨간 잉크가 찍힌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시간은 짧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출발 시각은 오후 6시. 하루를 고스란히 썼고, 비용도 적지 않게 들었다. 좁은 교민사회에서 ‘유난스럽다’는 말이 돌까 봐 장거리 투표 하고 왔다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다. 최씨는 지난 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재외국민 투표권을 보장하는 법이 만들어졌지만, 현실은 상당한 시간과 돈을 써가며 큰 결단을 하지 않으면 선거권 행사 자체가 어렵다”고 꼬집었다.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에 사는 이영수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에 ‘투표 카풀 모집’ 글을 올렸다. 차량 2대가 마련됐고, 10명이 ‘카풀 투표 원정단’에 합류했다. 앨버타주가 포함된 캐나다 서부지역 면적(270만여㎢)이 남한 전체(약 10만㎢)의 27배에 이르는데, 이 지역에 재외국민을 위한 투표소는 2곳뿐이었다. 밴쿠버 총영사관 투표소까지는 왕복 1200㎞, 이씨 일행은 대체 투표소가 설치된 캘거리 한인회관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래도 하루 사이 왕복 800㎞를 오가야 했다. 이씨는 “한국으로 치면 서울∼부산을 왕복해 투표용지 한장 넣고 돌아오는 것인데, 간절함이 있어도 현실적인 문제로 투표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특별한 의지와 여건이 되는 사람들만 투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외국민들은 고국을 떠나서 산다는 미안함과 그리움뿐만 아니라 고국의 위상만큼 현지인들한테 대우받는 경우가 많아 한국 정치에 대한 참여 의지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재외국민유권자연대는 재외국민선거 우편투표제도 도입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 릴레이 인증샷’을 진행하고 있다. 인증샷을 모아 내년 3월9일 대선 때 투표하는 모습을 바탕으로 모자이크 형태로 구성했다. 인증샷 재외국민유권자연대, 배경 연합뉴스, 사진구성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재외국민유권자연대는 재외국민선거 우편투표제도 도입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 릴레이 인증샷’을 진행하고 있다. 인증샷을 모아 내년 3월9일 대선 때 투표하는 모습을 바탕으로 모자이크 형태로 구성했다. 인증샷 재외국민유권자연대, 배경 연합뉴스, 사진구성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유권자 210만명, 전세계 투표소 91곳

국내 대선과 총선에 투표가 가능한 재외유권자는 주민등록이 되지 않은 한국 국적자와 유학생·상사원·주재원 같은 국외 부재자 등이 포함된다. 지난해 총선 기준 전체 재외유권자 규모가 214만여명에 이른다. 대선 때마다 ‘캐스팅보트 지역’으로 불려온 충남(171만명)과 충북(130만명)의 유권자 수를 훌쩍 넘는 수치다. 국내에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1987년 이후 일곱차례 대선에서 1~2위 차이가 200만표 이하였던 때가 다섯차례였던 점을 생각하면, 재외국민 선거 투표율을 역대 대선 평균(76.9%)만큼만 끌어올려도 선거 판도에 미칠 파괴력이 어떠할지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재외국민 선거는 현저히 낮은 투표율 탓에 국내 선거 결과에는 이렇다 할 영향을 주지 못했다. 2012년 총선에서 재외국민 선거권자 224만명 가운데 투표를 하겠다고 신청한 등록 선거인 수는 12만4천명, 실제 투표에 참여한 건 5만6천명이었다. 선거권자 대비 투표율이 2.5%에 불과하다. 이후 네차례 투표(18~19대 대선, 20~21대 총선)에서도 선거권자는 평균 200만명을 넘었지만, 실제 투표자는 평균 12만명이었으며, 투표율도 5%대로 낮았다. 지난해 총선에선 일부 국가의 공관이 코로나19 차단을 이유로 투표소를 폐쇄하는 등 여건이 더 나빠져 투표자가 4만858명(1.9%)까지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대통령 선거는 참여율이 나은 편이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선 선거권자 224만명 가운데 22만명이 선거인 등록을 했고, 15만8천명이 투표에 참여(실질투표율 7.1%)했다. 2017년 대선에선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심판 여론이 비등하면서 투표자가 22만명까지 늘어 사상 처음 두자릿수(11.2%) 투표율을 기록했다. 그래도 열에 하나꼴 수준이다.

재외국민 유권자들은 평균 한자릿수 투표율이 고국 정치에 대한 낮은 관심 탓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현행법이 투표소 방문 방식만 허용하는 상황에, 국가당 평균 투표소가 채 2곳이 되지 않아 사실상 선거권을 제대로 행사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올해 국회에 제출한 ‘재외선거 주요 통계자료’를 보면, 2012년 총선에서 재외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된 107개국 전체에 투표소는 158곳뿐이었다. 이후 네차례 재외국민 선거에서 투표소가 가장 많이 설치됐던 게 204곳이었다. 지난해 총선에선 코로나19 영향으로 투표소 91곳만 운영됐다. 열악한 투표소 환경 탓에 재외국민들 가운데 인도네시아 파푸아섬에서 비행기를 세번 갈아타고 자카르타 투표소에서 기어코 투표를 했던 교민, 흑해 연안 국가인 조지아에서 교포 9명이 1350㎞ 거리의 주터키 한국대사관 투표소까지 ‘2박3일 투표 대장정’을 했던 사례들이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재외국민 선거 아니라 ‘제외 국민 선거’

재외유권자들은 우편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투표소 방문 외에 다른 투표방식을 허용하지 않는데, 제아무리 넓은 지역이라도 한 재외공관 관할구역 안에 투표소를 3곳 이상 설치할 수 없도록 했다. ‘재외국민 선거’가 아니라 ‘제외 국민 선거’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나오는 까닭이다.

미국·오스트레일리아·일본·중국·브라질 등지에 사는 동포들로 꾸려진 ‘재외국민유권자연대 우편투표 도입 촉구 청원추진위원회’(우편투표추진위)는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미국 대선에서 6500만명이 우편투표를 했는데, 우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기 위해 비행기, 기차, 자동차를 몇시간씩 타야 한다”며 “나라 밖 유권자들이 직접방문 투표와 우편투표를 병행하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실제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 자료를 보면, 외국의 경우 재외선거에 우편투표를 도입한 국가가 모두 50곳(우편 단일방식 25곳, 우편·공관 등 혼합 25곳)에 이른다. 지난달 27일엔 ‘재외국민 참정권 실질적 보장 촉구에 관한 청원’도 국회에 접수됐다. 청원서에서 재외국민들은 “내년 대선 전에 투표방법이 개선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선관위는 재외국민 유권자들이 거주하는 국가마다 우편시스템의 안정성이 서로 다르고, 선거부정이나 각종 사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우편투표를 도입하더라도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5월 선관위는 국회에 보낸 ‘선거법 개정 의견서’에서 “주재국의 감염병 유행, 천재지변 등 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우편투표 실시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선관위는 정의당 이은주 의원에게 보낸 ‘우편투표 도입 제한 이유’에서도 “재외선거 우편투표가 유권자 편의를 제고하는 장점이 있으나, 허위신고·대리투표 발생에 따른 선거 공정성 문제, 국가별 우편시스템 불안정성에 따른 분실·배달 지연 등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과잉 대표’ 논란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연구보고서 ‘재외국민 선거제도의 현황과 개선방향’에서 “(외국에 이주한 지 오래된 경우) 국내 정치상황에 관심이 낮고, 고국과의 이해관계나 밀착도, 유대감도 약화될 수 있다”며 “영구거주 목적으로 이주한 경우에도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에 국내의 부정적 여론을 고려할 때 선거권에 제한을 둘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고 분석했다.

우편투표 등으로 재외국민 투표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데 따라 정치적 손익계산을 따지는 목소리도 있다.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는 국내 거주인들의 삶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데, 길게는 수십년씩 외국에 거주했던 이들이 대거 선거권을 행사할 경우 실질 수요자들의 정치적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겠냐는 논리다. 2017년 대선 재외선거에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득표율(59.0%)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7.8%)보다 8배 가까이 높은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4월, 한국의 21대 총선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총영사관에 마련된 재외투표소에서 재외국민 유권자들이 첫 투표를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4월, 한국의 21대 총선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총영사관에 마련된 재외투표소에서 재외국민 유권자들이 첫 투표를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편투표를 허하라

정치권에서는 재외국민 선거에 우편투표 등 비대면 투표방식을 병행하기 위한 법안을 경쟁하듯 내놓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 서영교 의원을 비롯해 야당 쪽에서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 이은주 정의당 의원 등 5명이 재외국민 우편투표 도입을 뼈대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지난 7월에는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우편투표 도입을 포함한 재외국민 투표방법 개선에 뜻을 같이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가 재외국민 우편투표 도입에 거부감을 보이며 국회 논의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서영교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여야 주요 3당 의원들이 비슷한 안건을 낸 만큼 국회 행안위에서 사안을 처리하면 되는데,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가 ‘재외국민 우편투표 관련 법안은 심사를 하지 말라’고 당내 지시를 내려 법안 처리를 사실상 막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행안위에서 논의를 거쳐 이 문제를 9월 정기국회 안에 반드시 처리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 의원도 “주요 여야 의원들이 우편투표 허용 법안에 뜻을 같이했는데, 법 개정이 되지 못하는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겠다. 이 문제를 국민의힘 쪽에 따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석기 의원실 쪽에서는 “우편투표 도입에 대한 의지가 강하지만, 우리가 최종 의사 결정을 할 위치는 아니다”라는 애매한 답을 내놓고 있다.

재외국민 유권자 단체는 국회 180여석을 가진 범여권의 태도에 기대를 걸고 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7일 “재외국민 투표자가 일률적으로 공관 등 투표소에 직접 방문 투표해야 하는 현행법이 실질적으로 참정권을 제한하고 있다”며 “행안위에 여야 의원이 우편투표 도입을 위해 발의한 5건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있는 만큼 9월 정기국회 안에 처리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내년 대선 우편투표제 도입을 위해 남은 시간은 채 한달이 되지 않는다. 다음달 10일 재외선거인 등록이 시작되는 만큼 9월 정기국회에서 재외국민 우편투표를 뒷받침할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 대선에서 재외국민 우편투표는 물건너갈 가능성이 높다. 곽상열 재외국민유권자연대 공동대표는 “200만명이 넘는 재외국민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가 낮은 가장 큰 이유가 투표소 접근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현행 법제도 때문”이라며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우편투표제도를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재외국민 참정권이 제대로 행사되도록 법제도를 신속히 고치는 게 국회의 의무”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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