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5일 경기도 이천시산림조합 앞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함께 공동유세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겨레 프리즘] 김태규 | 정치팀장
올해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3·1절 메시지 뒤 엉뚱한 부분에서 논란이 일었다. “첫 민주정부였던 김대중 정부는 자신감을 가지고 일본 문화를 개방했습니다”라는 대목이었다. 황규환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대변인은 논평에서 “평생 민주화에 몸을 바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업적을 모를 리 만무한데, 각종 개혁을 통해 자유와 민주주의의 기치를 바로 세운 문민정부를 의도적으로 패싱한 저의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김영삼 정부가 최초의 민주정부인데 왜 이를 무시했느냐는 지적이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노태우 정부도 정당하게 창출됐지만 그럼에도 김영삼 정부가 더 특별하다는 주장은 군정을 처음으로 종식한 ‘문민정부’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회를 척결했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했으며 역사를 바로 세운 것도 빛나는 개혁 작업이었다. 그러나 김영삼의 집권은 영남 민주화 세력이었던 통일민주당이 신군부 세력인 민주정의당, 유신의 후예 신민주공화당과 손을 잡았기에 가능했다. 순식간에 민주자유당이라는 217석의 슈퍼여당이 등장했고 김대중의 평화민주당(70석)만이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운동장이 심각하게 기울어진 채 양당 체제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보수·수구 패권정당은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의회를 장악하고 대통령을 배출했다. 호남 기반의 민주당 계열 정당은 대항마로 성장하며 때때로 승리를 거뒀다. 결국 차악의 선택을 강요하는 지금의 양당 체제는 1990년 ‘3당 합당’의 결과물이다. 야합의 대가로 권력을 잡고 한국 정치에 문제적 유산을 남긴 김영삼 정부를 민주정부로 볼 수 없는 이유다.
1990년부터 시작된 한나라당-민주당 계열 경쟁에 ‘제3당’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와 ‘찔끔 비례대표’라는, 거대 양당이 그어놓은 울타리를 넘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는 비례성을 강화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지만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위성정당을 창당하면서 선거제도 개혁 취지를 짓이겨버렸다.
지독한 ‘기득권 양당 체제’에서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이 2016년 총선에서 38석을 얻은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국민의당은 ‘제3당’으로서 존재감을 확인시켰고, 안 대표가 내세웠던 ‘새 정치’는 ‘다당제의 효용’을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2020년 총선에선 위성정당에 밀려 국민의당의 비례대표 의석은 3석으로 쪼그라들었지만 ‘다당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러나 “동지의 뜻을 받들겠다. 반드시 완주하겠다”던 안 대표는 2022년 대선을 6일 앞두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했다. 국민의힘과도 합당하겠다고 했다. 다당제 정치개혁을 위해 양당 체제의 한 축인 국민의힘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당을 흡수할 국민의힘은 한국 정치사에서 지역구 중심 소선거구제 덕을 가장 많이 본 정당이다. 비례성 강화를 위해 처음으로 시도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에도 격렬하게 반대해 소속 의원과 대표가 국회법 위반으로 기소된 정당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안 대표는 단일화 선언 이튿날 “우리나라 정치제도가 거대양당 시스템”이라며 “중재 역할”을 자임하며 ‘다당제 등의 정치개혁’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다당제 정치개혁 주장에 역행하는 행보로 보인다.
정치는 명분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의 실리는 명분을 압도한다. 정권교체·정치교체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안 대표의 노림수는 차차기 대권이다. 윤 후보가 당선되면 안 대표는 정권교체를 향해 ‘철수’가 아니라 ‘진격’한 공을 인정받아 일약 집권여당의 차기 주자로 발돋움하게 된다. 30여년 전 ‘3당 합당’에 버금가는 승부수다. 김영삼이 잉태한 양당 체제에 균열을 냈던 안철수는 결국 김영삼을 닮아가고 있다. 안철수의 베팅은 성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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