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청와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나란히 걸어나오고 있다. 청와대 제공
“오늘 예정되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회동은 실무적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습니다. 실무 차원에서 협의는 계속 진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지난 3월 16일 오전 8시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과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의 발표입니다. 한 글자도 다르지 않습니다. 내용은 짧지만 파장은 컸습니다. 신구 권력의 정면충돌이라는 자극적 제목의 뉴스가 순식간에 언론을 뒤덮었습니다. 기자들이 열심히 취재에 들어갔지만 왜 결렬됐는지 지금까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말이 드러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은 어느 정도 예견된 사고였습니다. 대선이 끝난 뒤 약간의 임기와 자존심이 남아 있는 현직 대통령, 그리고 선거에서 이겨 이제 막 천하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대통령 당선자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자의 특수한 관계가 긴장을 더했습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사람입니다. 그랬던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 및 조국·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대판 싸운 뒤 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해 차기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세상에 이 정도 기막힌 일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역대 대통령들도 그랬습니다. 임기 말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 전직 대통령과 후임 대통령의 관계는 대체로 세 가지 변수에 의해 결정됐습니다.
첫째, 정권 재창출이냐, 정권교체냐입니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대통령과 당선자는 대체로 사이가 좋았습니다. 정권 교체된 대통령과 당선자는 대체로 사이가 나빴습니다. 일반론입니다.
둘째, 관계의 특수성입니다. 특수성이 일반론을 앞서는 법입니다. 대통령과 당선자가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떤 관계인가에 따라 얼마든지 호불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시간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의 관계는 좋았다가 나빠지기도 하고 나빴다가 좋아지기도 합니다. 대통령들의 경우에는 좋았다가 나빠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자신의 후임자를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역대 대통령들의 회고록과 자서전에서 관련 대목을 찾아보았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면 나이가 좀 있는 독자들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떠오실 것입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쓴 시기입니다. 대부분의 대통령은 퇴임 직후가 아니라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썼습니다. 정권을 넘겨준 시점이 아니라 시간이 한참 흘러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쓴 시점에서의 평가인 것입니다.
# 전두환 회고록(2017년 4월 출판)
“내가 후계자로 낙점한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당선으로 민정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고 나의 단임 실천과 평화적 정부 이양이 확실히 담보됨으로써 임기 말 나의 정치적 소임은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된 것이다. 중임이 허용되는 나라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대통령은 자신의 1차 임기 동안의 업적과 국정 성과에 대해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다.”
“여당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국민이 정부 여당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서 재신임한 것이다. 국민이 나와 5공화국을 근본적으로 실패라고 판정했다면 5공화국의 여당인 민정당의 후보이자 대통령인 내가 후계자로 지명한 노태우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었을 것인지 모를 일이다.”
노태우 대통령을 후계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후계자를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5공화국은 성공한 정권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참 편리한 논법입니다.
# 노태우 회고록(2011년 8월 출판)
“나는 그(김영삼 당선자)가 대통령에 당선되고부터 취임할 때까지 석 달간 청와대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끝까지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세부적으로 인계해야 할 일, 또 다짐해야 할 일들이 많았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었다. 물론 나 자신도 대통령에 당선된 후 취임 때까지 청와대를 방문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때는 경우가 달랐다. 내 전임자가 번거로움을 피하려고 나의 방문을 사절하는 대신 그가 우리 사저를 방문했다.”
“그의 취임사는 개혁이라는 명분을 구호처럼 나열하며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부정하고 있었다. 이승만 건국 정부에서부터 김영삼 정권을 출범시킨 6공화국까지를 송두리째 말살시켰다. 말하자면 존재해서는 안 될 정권이었다는 식이었다. 그는 역대 정권의 모든 것을 개혁의 대상, 실질적으로는 혁명의 대상으로 단정해 버렸다.”
노태우 대통령은 퇴임 뒤 김영삼 정부에서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을 회고록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2001년 2월 출판)
“나는 솔직히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 사람은 아니었지만 김대중씨가 당선된 것이 결과적으로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김대중 정부의 등장이 해묵은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12월 20일 나는 청와대로 김대중 당선자를 초청, 오찬 회동을 가졌다. 나는 김대중 정부가 순조롭게 출범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씨는 당선 직후 보즈워스 미국 대사와 만난 이야기를 꺼냈다. 보즈워스 대사가 김대중씨에게 ‘앞으로 당선자께 가장 중요한 일은 김영삼 대통령과 두 분이 나라를 위해서 협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자, 김대중씨 자신도 보즈워스 대사에게 ‘그렇게 하겠습니다’고 동감을 표시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김대중씨 자신도 앞으로 나와 협력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2월 29일 나는 김대중씨 부부를 관저로 초대해 부부동반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김대중씨는 이 자리에서도 나의 아내에게 똑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내가 퇴임한 이후 김대중씨가 나에게 한 행동은 그의 말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나와 내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뒷조사했으며, 권영해 안기부장을 비롯해 숱은 사람들을 구속했다. 김대중씨는 아이엠에프의 원인을 조사한다며 한승헌 감사원장과 김태정 검찰총장을 시켜 나에게 서면 질문서를 보내기도 했다.”
“김대중씨는 또 강경식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 두 사람을 구속하더니, 아이엠에프의 책임을 묻는다며 1999년 2월 13일 국회 청문회 마지막 날까지도 나에게 출석을 요구하기도 했다. 나는 그가 지역감정을 완화시키기를 바랐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역사상 가장 극심한 지역감정의 고통에 빠져들고 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김대중씨는 지금도 나에 대한 정치 보복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김영삼 대통령의 질투와 증오는 좀 유별난 데가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김대중씨’라고 회고록에 써놓은 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 김대중 자서전(2010년 8월 출판)
“노무현 후보가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중략) 그의 당선이 무척 기뻤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최고의 꿈은 정권 재창출이었다. 비록 당을 떠났지만 민주당의 승리는 여당의 승리였다. 그래서 선거기간 내내 야당은 당적조차 없는 나를 집요하게 공격했던 것 아니겠는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12월 23일 청와대로 찾아왔다. 나는 본관 현관에서 기다렸다. 5년 전 김영삼 대통령이 나를 기다렸던 바로 그 자리였다. 우리는 오찬장에서 축배를 들었다. 그는 떠오르는 태양이었고 나는 지는 해였다.”
“2003년 새해 들어 ‘동교동계’ 해체를 천명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동교동계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러한 입장을 박지원 비서실장을 통해 민주당에 전달했다. 국내 정치에는 일체 간여하지 않고 퇴임하면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었다. 새로 출범하는 노무현 정부에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도 들어 있었다.(중략) 후임 대통령의 성공을 돕는 것이 나의 소임이라 여겼다. 동지들은 나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후임자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현직 대통령 최고의 꿈은 정권 재창출이라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 노무현 자서전(2010년 4월 출판)
“2007년 12월 28일 이명박 당선인이 청와대를 방문했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습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부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존심이 상하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감사 표시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은근히 정말로 그래 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믿을 만한 약속이 아니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국민의 뜻으로 알고 받아들였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엄정중립을 지켰다. 소위 ‘비비케이 의혹’과 도곡동 땅 문제 등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검찰 수사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어떤 원한을 품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만 해도 두 사람의 사이가 과히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 나중에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짐작이나 했을까요?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국정 회고록을 박근혜 대통령 재임 중인 2015년 2월에 출판했습니다. 서슬이 퍼런 현직 대통령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서문에 이렇게 써놓았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집무실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마음도 홀가분했다.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휑하니 비어 있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동안 넓은 방 구석구석을 국정에 대한 구상과 의제로 채웠었다. 빈 책상에 다시 앉았다. 다음 사람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임 축하 인사와 더불어 격려의 말을 적어 책상 위에 올려주었다.
‘더 큰 대한민국과 행복한 국민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자는 2012년 12월 28일 청와대에서 만났습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아마도 박근혜 후보 당선은 천당이고 문재인 후보 당선은 지옥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재임 기간에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후임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끔찍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청와대 회동에서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의 활짝 웃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문재인 비서실장은 5년 뒤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감옥에 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쓰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쓰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자신의 후임자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할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자의 사이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윤석열 당선자는 대선 기간 선거 운동에서 현 정부를 공격할 때 ‘민주당 정부’, ‘민주당 정권’이라고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우리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해준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예우일 수도 있고, 임기 말 국정 평가 40%를 유지하는 현직 대통령과 각을 세우지 않겠다는 정치적 계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그런 태도를 유지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앞에서 소개했지만, 과거 이명박 대통령도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정치적 궁지에 몰리자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검찰의 수사가 무리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제지하지 않은 것을 보면 검찰 수사를 사주했거나 최소한 미필적 고의로 방치한 것 같습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어떨까요? 이명박 대통령과 다를까요?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해도 전임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삼지는 않는 양식을 갖춘 사람일까요?
윤석열 당선자에게 꼭 하고 싶은 조언이 있습니다. 개헌 등 특별한 사정으로 대통령 임기가 줄지 않는다면 5년 뒤에는 윤석열 당선자가 문재인 대통령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후임자가 이재명 후보일 수도 있습니다.
역지사지해야 합니다. 성경에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예우하겠다는 지금의 마음이 앞으로도 절대로 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우리 국민은 대통령과 당선자, 전-현직 대통령이 갈등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문재인-윤석열 두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원만한 정권 인계인수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주면 참 좋겠습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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