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전경.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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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대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에 어떤 대통령으로 남게 될까요? 저는 ‘청와대를 떠난 대통령’으로 기억되리라고 예상합니다. 역대 대통령은 청와대에 집무실과 관저가 있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최초로 그곳을 벗어난 대통령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는 본래 통치자의 땅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집무실과 관저를 청와대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바야흐로 통치의 시대가 끝났다는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윤석열 당선자의 말은 옳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청와대라는 공간의 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청와대가 있는 북악산 기슭은 본래 고려시대 남경 궁궐터였습니다. 조선이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남경 궁궐터 아래에 임금의 집인 경복궁을 지었습니다. 조선 말기 고종 시대에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복궁 후원을 경무대(景武臺)라고 불렀습니다. 경복궁(景福宮)의 경(景), 경복궁 북문 신무문(神武門)의 무(武)에서 한 글자씩 딴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총독 관저를 이곳에 지었습니다. 건물 위에 푸른 기와를 얹었습니다. 해방 이후 미군정 사령관 존 하지 장군이 여기에 살았습니다. 이어서 이승만 대통령이 살면서 경무대는 대통령이 사는 곳의 별칭이 됐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4·19 혁명으로 쫓겨난 뒤 윤보선 대통령이 경무대를 청와대로 바꿔 부르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터가 좋다는 설과 나쁘다는 설이 엇갈립니다. 좋다는 설은 임금이 이곳에서 산책하고 농사짓고, 과거를 열었던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나쁘다는 설은 너무 신성한 장소라서 사람이 살면 안 되는데 일제가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일부러 총독 관저를 이곳에 지었고 그 바람에 역대 총독들과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말로가 불행해졌다는 해석이 근거입니다.
역대 대통령은 대부분 청와대에서 나오려고 했습니다. 김영삼·김대중·이명박·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려고 했습니다. 풍수지리 때문은 아니고 국민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실패했습니다. 왜 실패했을까요? 대통령은 한 사람이지만 엄청난 규모의 기관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이라는 기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과 시설이 필요합니다. 대통령 관저, 대통령과 비서들의 집무실, 대통령 경호원들과 관련 시설, 비상시 사용하는 지하벙커, 헬리콥터 이착륙장, 영빈관, 기자실 등이 모두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 집무실만 달랑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면 대통령 출퇴근이나 이동 시에 통의동이나 삼청동 길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경복궁 밑으로 지하 차도를 뚫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수시로 교통을 통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광화문 일대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교통이 번잡한 장소일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10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했습니다. 2019년 1월4일 유홍준 광화문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은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을 포기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청와대 영빈관, 본관, 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 기능 대체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 대통령도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경호와 의전이라는 것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헬기 이용을 많이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공수부대 출신이라서 헬기 타는 것을 좋아했을까요? 그럴 리가요. 대통령이 헬기를 타면 교통 통제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기 싫었던 것입니다.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도 그래서 포기한 것입니다.
‘제왕적 공간’ 청와대 탈출은 정당
용산 이전은 국민 공감 없어 부당
집무실 이전이란 작은 목표 넘어
이 기회에 세종시 이전 검토할만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저는 2017년에 이 내용을 들으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 약속만은 절대로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마음속에는 ‘이웃 아저씨 같은 대통령’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의 그림자일 것입니다. 신동엽 시인의 1968년 작 ‘산문시 1’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스웨덴 의회를 방문했을 때 이 시를 낭독한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는 시일 뿐입니다.
대통령 경호는 한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냉정한 현실입니다. 역대 청와대 경호실장이 그렇게 극성을 떨었지만 1968년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 사건,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1983년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 등이 있었습니다. 국가원수 경호가 엄격하기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원수 경호는 국가 안보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윤석열 당선자가 통치의 공간인 청와대에서 나오겠다고 생각한 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김영삼·김대중·이명박·문재인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을 윤석열 당선자가 해낸다면 환영할 일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당선자가 청와대의 대안으로 용산 국방부 청사를 선택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른 문제는 다 떠나서 윤석열 당선자는 임기 5년짜리 대통령일 뿐입니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그리고 부대 시설을 어딘가로 옮기려면 광범위한 국민여론 수렴과 합의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용산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고 그 옆에 관저를 짓도록 하면 그건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 윤석열 대통령의 관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대통령은 또 어디로 가야 할까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3월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저는 이번 기회에 아예 청와대와 부대 시설을 몽땅 세종특별시로 옮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청와대뿐만 아니라 행정부, 대법원, 국회, 헌법재판소 등 중앙 정부 기관을 몽땅 세종시로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했던 행정수도 이전을 완결시키자는 것입니다.
행정수도 이전을 먼저 추진했던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1977년 2월 서울시청 연두 순시에서 행정수도 건설 방침을 처음 밝히고 청와대에 실무기획단을 구성해 밀어붙였습니다. 서울의 인구 집중을 억제하고 수도를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서울이 휴전선에서 가깝다는 안보상의 이유도 있었습니다. 1977년 7월 국회가 ‘임시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의결했습니다. 충남 공주 장기지구를 최종 후보지로 선정했습니다. 그러나 1979년 10·26 사태로 물거품이 됐습니다.
23년 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하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이 돈과 자원과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상황이 계속되면 헌법이 명한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은 서울대로 인구 과밀화, 환경 악화, 혼잡비용 증가, 부동산 가격 폭등 때문에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게 되고, 지방은 지방대로 발전의 동력을 상실하고 말라죽을 것이라는 우려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경국대전 이래의 관습을 이유로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 서울이 아닌 곳에 행정수도를 만드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저는 헌법재판소의 당시 결정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기반을 둔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대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을 때가 됐습니다.
민병두 전 의원이 최근 <피렌체의 식탁> 칼럼에서 흥미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수도 이전 혹은 하나의 행정수도는 반드시 해야 한다. 이미 국회는 이전을 시작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집무실, 국회, 대법원이 관습헌법상 수도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판결을 하면서 우리나라 정치행정수도가 갈라파고스의 섬이 되었다.”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갈라파고스 행정수도에 대못을 박는 것 같다. 행정수도의 일치라는 생각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다. 그 많은 시간과 효율의 낭비를 영원히 방치할 것인가. 어차피 국회가 이전하면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도 현안이 될 것이고, 당분간 세종집무실과 청와대로 이원 운영하다가, 개헌이 되면 청와대는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세종시가 완전한 행정수도로 합체되는 시간표를 갖고 운영해야 한다.”
저는 민병두 전 의원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이라는 작은 목표에 집착하지 말고 박정희·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이번 기회에 아예 행정수도를 이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