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제주지사 시절 비서실장인 현아무개씨가 민간인을 통해 ‘비선 인사’를 했으며, 이같은 사실을 원 후보자도 알았을 것이라는 관련자의 검찰 진술이 드러났다. 수사가 시작되자 ‘원희룡 지사님 연루설 조기 차단’ 등의 내용이 담긴 대응 문건이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현 전 실장은 2006년 12월 원 후보자가 국회의원이던 시절 비서관을 맡았으며 2008년 18대 총선과 2014년 지방선거에서 원 후보자 캠프 사무장을 맡은 인물이다. 이어 2015년 1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제주지사 비서실장으로 일한 원 후보자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현 전 실장은 2017년 12월 자신과 친분이 있는 ㄷ건설 대표를 통해 원 후보자의 2014년 제주지사 선거를 도운 조아무개씨에게 2015년 2~10월 총 2750만원을 주도록 했다. 검찰은 이 돈이 조씨가 원 후보자의 선거를 돕고 이른바 ‘공무원 화이트리스트’를 만드는 등 도정에 도움을 준 대가라고 봤다. 이에 검찰은 현 전 실장과 조씨, ㄷ건설 대표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2018년 6월 기소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2018년 5월24~25일 제주지방검찰청의 현 전 실장 피의자진술조서를 보면, 검찰은 조씨가 “2014년 10월 말 현 전 실장으로부터 2015년 1월 인사에 대비하여 우수 실국장 리스트를 작성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2015년 6~7월 하반기 인사 무렵에도 지시를 받았다”라고 진술했다고 밝히면서, 현 전 실장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이에 현 전 실장은 “조씨에게 이런 지시를 한 적 없다. 제주도청 실국장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시정잡배 같은 조씨에게 듣겠나”라고 답했다.
하지만 조씨의 검찰 진술은 상세했다. 그는 “우수 실국장 리스트 문서에 13명의 이름과 이 사람들에게 적합한 보직 등이 기재”됐으며 “문서 내용이 2015년 1월경 발표된 인사안에 대부분 반영”됐다고 밝혔다. 현 전 실장은 “조씨가 건네준 문서를 갖고 인사에 참고하거나 반영한 적이 전혀 없다. 그리고 내가 인사에 관여하지도 않고. 원희룡 도지사가 인사 업무에 관해서는 나를 배제 시킨다”라고 답했다.
현씨의 말과 달리 조씨는 “(2015년 1월) 인사가 끝난 후 현 전 실장이 저에게 ‘형님뿐만 아니라 다른 쪽으로도 우수 실국장 리스트를 받아 크로스 체크하면서 이번 인사를 했다. 그리고 형님이 건네준 우수 실국장 리스트가 아주 훌륭해 인사에 많이 반영되었다. 이게 진정 원희룡표 인사 1호고, 인사 평도 아주 좋아 원희룡 도지사도 만족한다’고 이야기했다”고 진술했다. 조씨가 현 전 실장을 통해 원 후보자의 전언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례는 이것뿐 아니다. 그는 검찰에서 “(현 전 실장이 원 후보자에게) 조씨가 공무원은 아니지만 사심을 갖고 있지 않아 공무원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믿을 만하다고 이야기했고 이 내용을 그대로 현 전 실장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래서 원희룡(지사)도 2015년 1월 간부 인사에 내가 현 전 실장의 지시로 어느 정도 관여한 점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현 전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조씨의 주장에 강하게 반박하며 ‘비선 인사’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ㄷ건설을 통해 돈을 준 이유에 대해서도 생활고를 겪는 조씨가 안타까웠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은 유죄로 판단했다.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인 광주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재권)은 2019년 5월8일 선고에서 “현 전 실장은 선거 이후에도 조씨에게 공무원 인사발령 작업을 위한 우수 공무원 명단 작성 등 자료 수집 업무, ○○와 관련된 비리를 조사하는 업무, 원희룡 도지사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도록 인터넷 댓글을 게시하는 업무 등을 지시”했다며 조씨가 현 전 실장의 지시로 원 지사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어 “조씨가 자신의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없는 사실을 지어 내어 위 피고인(현 전 실장)을 무고할 특별한 동기를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보면 조씨의 진술은 상당히 신빙할 만하다”라고 봤다. 두 사람에겐 모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항소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됐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 사건 수사가 시작되자 ‘원 후보자 지키기’ 등의 내용이 담긴 수사 대응 문건이 만들어진 사실도 드러났다. 이 문서에는 ‘원희룡 지사님 연루설 조기 차단’, ‘피의자는 고○○(ㄷ건설 대표)의 사업을 도와준 적이 없다’, ‘조씨는 모함과 배신을 일삼는 전형적인 악질 브로커이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수사 직전 휴대전화를 교체했던 현 전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 문서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면서도 “지인이 정리해준 문서인데 지인 이름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한겨레>는 원 후보자가 제주지사 시절 비선 인사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 전 실장에게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전화가 되지 않았다. 원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주도 공무원 인사를 했을 때 블랙·화이트 리스트를 작성하게 하고 인사에 반영한 것을 후보자가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현 전 실장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라고 말하자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이미 다 끝난 사건이다”라고 답변했다. 원 후보자가 도청에서 조씨를 만나 현 전 실장에게 빨리 취업을 도와주라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냐는 질문엔 “조씨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수사기관에서 수사했는데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고 답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