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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이낙연 “윤 정부, 음주·애견·쇼핑만 넘쳐…국민 인내 오래 안 가”

등록 2022-06-07 11:50수정 2022-06-08 02:52

박찬수의 직선 I 이낙연 전 국무총리

당이 요구했다면 서울시장 나올 고민
선거프레임 없이 ‘특정인 구하기’로
’졌잘싸’가 대선 반성도 못하게 했다

DJ는 대선 패배 뒤 2선 후퇴했는데
지금은 당내민주주의·책임정치 실종
도덕성·역량도 추락한 게 위기 심화

윤 정부, 당면과제 대처는 안보이고
식사·음주·애견·쇼핑 관심만 넘쳐나
국민 관용과 인내, 오래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국민통합 아쉬워
적폐청산과 국민통합 조화롭게 못했다
사저 앞 증오시위, 민주주의 파괴할 것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3일 서울 광화문의 컨프런스하우스에서 박찬수 <한겨레> 대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3일 서울 광화문의 컨프런스하우스에서 박찬수 <한겨레> 대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6월7일 미국 연수를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출국 전에 인터뷰를 한번 하자고 연락을 했다. 그때는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막 시작되는 시점이라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와 문재인 정부 5년의 공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주로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6·1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고 이 전 총리 본인이 페이스북에 지도부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하면서 인터뷰 질문도 많이 바뀌었다. 이 전 총리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듯했다.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매우 직선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상황에 대한 속마음을 표출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과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인터뷰는 이 전 총리가 출국하기 전인 3일 오전에 이뤄졌다.

― 1일 끝난 지방선거에 관한 질문부터 드리겠습니다. 마지막에 경기도를 건지긴 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민주당의 참패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3월 대선 패배에 이어 지방선거마저 크게 진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지난 대통령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였습니다. 그런 비호감 경쟁에서 민주당이 졌습니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그 연장전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런데 연장전을 했거든요. 송영길 전 대표와 이재명 후보의 기이한 출마가 그런 틀을 제공했다고 봅니다. 국민들이 볼 때는 참 이상한 거였겠죠. 광주 시민들은 정치적 대의를 매우 중시하시는데, 투표장에 가고 싶지 않다며 많이 기권하신 배경엔 그런 게 깔려있을 겁니다. 또한 40대 투표율이 굉장히 낮았는데, 40대가 민주당 지지기반 아닙니까? 민주당 지지층에 투표에 기꺼이 참여하실 동기를 못 드린 것이죠. 그런 동기를 드릴만한 그 어떤 것이 없었어요. 선거 프레임마저 없었습니다. 겨우 프레임처럼 되어버린 게 특정인 구하기 아닌가요? 윤석열 정부에 대한 견제냐 국정의 균형이냐를 따지다가 뒤늦게 균형으로 조정하기는 했지만, 현장에서는 뭐가 뭔지 뒤범벅이 된 채 선거를 끝냈지요. 설득력 있는 프레임을 일찍 만들어 그걸 반복적으로 국민들께 말씀드려야 했는데 그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안타까워요.”

― 0.73%포인트 차로 대선에서 패배하자, 민주당에선 곧바로 ‘졌잘싸’(졌지만 잘싸웠다)라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졌잘싸’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충격이었죠. 왜냐하면 그런 말은 남이 패배자를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선거에서 지자마자, 그것도 지지율 40%를 넘는 대통령을 가진 여당이 대선에 패배했는데도 지도부 스스로가 ‘졌지만 잘싸웠다’고 내놓고 평가한 것은 국민 일반의 정서에 배치되는 것이죠. 그런 태도가 국민의 외면을 불러오고 당내에서는 다른 소리를 억누르는 부작용을 일으켰어요. 그래서 반성도 못하게 하고, 반성하면 마치 당의 내분을 일으키는 것처럼 몰아세우는 행태가 생겼고, 그것이 국민들께 이상하게 보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송영길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20%포인트로, 지난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지지율 격차를 뛰어넘습니다. 만약 이낙연 전 총리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면 조금은 더 접전으로 가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는 견해가 당내에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어보셨습니까?

“들어봤습니다. 저는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지요. 서울시장 선거에 나설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당이 만약 요구한다면 내가 끝내 거절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당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다면 나의 메시지는 무엇이어야 할까도 생각했고, 어느 정도 해답을 찾기도 했어요. 그런데 굉장히 초기에 송영길 전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고, 송 대표는 심지어 누구누구가 경쟁력이 있었다면 자기가 불려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말했지요. 그래서 저로선 더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된 겁니다. 지방선거의 얼굴은 서울시장 후보입니다. 서울시장 후보가 전체 선거를 끌어가야 돼요. 그런데 이번엔 그렇게 되지 못하고, 오히려 짐이 됐죠. 서울시장 후보의 득표가 구청장 후보들의 득표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교차투표를 하셨다는 것인데, 그건 무서운 얘기 아닙니까? “

― 당내에선 이재명 국회의원 당선자의 8월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 여부를 놓고 벌써부터 논란이 뜨겁습니다. 이 사안을 어떻게 보십니까?

“그건 제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저도 많이 걱정하고 있다, 그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의 어떤 점이 문제였을까요? 어떤 점을 반성하고 쇄신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가지죠. 하나는 민주당의 오랜 자산인 당내민주주의가 위축된 겁니다. 과거 제왕적 총재라고 비판받던 시절에도 의원들이 할 말은 했는데, 이젠 그렇지가 않아요. 그것이 국민 눈에는 죽은 정당처럼 보이는 거죠. 둘째는 책임정치가 실종된 겁니다. 사실상 민주당에 대한 오너십을 갖고 있다고 평가됐던 김대중 대통령도 대선에서 실패하면 2선 후퇴하거나 아예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외국으로 유학을 가셨죠.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세 번째는 도덕성 우위가 사라진 겁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진보세력이 도덕적으로는 우위라고 국민들이 생각했는데 그것이 무너진 거 아닙니까, 대선 기간중에 국회의원이 성적인 비리나 실언에 연루됐다든가…. 네번째는 역량입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이미 절차적 단계를 뛰어넘어 실질적 결과에서까지 성과를 내야 하는 단계로 올라갔습니다. 민주주의의 성숙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 평가를 비교적 좋게 받았던 건, 여러 일을 성실하게 처리하고 괜찮은 결과를 냈다는 데 있거든요. 감염병이나 가축전염병 같은 사회재난, 산불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 참 잘 대처하더라, 그런 데서 믿음이 생긴 것이죠. 그러나 이번에 민주당은 지도부가 티격태격 내홍을 계속하고, 공천 난맥과 사후관리 부실 등을 노출했습니다. 그것이 역량 추락으로 국민들께 비친 거지요. 그 네 가지 위기가 계속되며 악화하고 있습니다.”

―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민주당의 가장 아픈 부분 중 하나가, 노무현 대통령 이후에 충청권에서 상당히 선전을 해왔는데 이번엔 충청권 광역단체장 4곳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프죠. 국가균형발전이라고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가 구현된 곳이 세종이고, 균형발전의 과실을 가장 많이 얻은 곳이 충청권입니다. 그러나 그런 성과와 그에 대한 호의적 평가가 이것으로 끝나버리는가 싶어서 무척 안타깝습니다. 선거는 매듭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지 않았던 매듭은 새로 생기고, 우리가 끝내야 할 매듭은 짓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습니다.”

― 7일 미국으로 출국하십니다. 미국엔 어떤 계획을 갖고 가시는 거고 언제까지 머물 생각입니까?

“워싱턴의 조지워싱턴 대학에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1년간 다닐 예정입니다. 그쪽에 제출한 연구주제는 한반도 평화와 국제정치입니다. 우리 정치가 가장 취약한 게 그것이어서 공부를 해보고 싶습니다. 또한 미국이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던 시대가 저무는데 그런 추락을 미국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도 보고 싶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모든 것의 모델을 미국에서 찾았잖습니까? 그러나 그런 미국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치와 언론에서는 진영 대립과 갈등이 심화하고, 사회는 중산층 붕괴와 양극화로 질주합니다. 더구나 미국의 세계적 위상은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미국의 현실과 그에 대한 대처 또는 관리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 다음에 기회가 되면 중국에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정부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현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을 폐기하려 한다며 우려하신 적이 있는데, 집권 초기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 운용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어떤 점이 걱정스럽습니까?

“쿼드(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 안보협의체) 사례를 한번 보세요. 윤석열 정부는 바이든 미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우리에게 제안한 것보다 더 많이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바이든 대통령은 쿼드가 4개국이란 뜻이라고 말했고, 블링컨 국무장관은 한국의 특수한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어요. 쿼드에 가입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인데,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쿼드에 가입할 거라고 얘기를 했단 말이에요. 그건 지혜롭지 않고, 현실적이지도 못한 거죠. 외교는 극도로 정교하고 균형잡힌 선택을 요구합니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의 확대와 격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은 우리의 선택을 더욱 어렵게 합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너무 단순하고 거칠게 대응하고 있는 거 같아요. IPEF 참여도 마찬가지입니다. IPEF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전략의 일환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도 참여하고 중국의 참여도 유도하겠다는 외교장관의 발언은 순진하거나 무지합니다. 왜 그렇게 되는가. 이명박 정부 때 사람들을 외교 분야에 대거 중용하고 있잖아요. 이명박 정부의 외교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대외관계는 한번 실수하면 회복에 훨씬 긴 시간이 걸립니다. 더 신중하고 정교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인적 구성으로 그걸 기대하기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 대선 패배 이후에 보수 진영에선 문재인 정부의 통일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이 전방위적으로 나옵니다. 대북정책 비판이야 그렇다 쳐도 요즘은 친중 일변도였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문재인 정부 국무총리로서 이런 비판에 뭐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문재인 정부는) 정교하게 가기 위해 많이 애를 썼습니다. 어떤 때는 답답하게 비칠 만큼, 양쪽 모두로부터 별로 환영받지 못할 만큼, 균형을 잡으려고 세심히 노력했죠. 문재인 대통령의 성품도 굉장히 세밀하세요. 리스크가 없게 하려고 굉장히 세밀하게 챙기셨지요. 우리나라 보수 세력과 보수 언론은 건망증이 있어요. 노태우 정부의 북방 정책, 특히 남북한 사이의 몇 개 굵은 합의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한·중 및 한·러 수교는 분명히 업적입니다. 그런 토대 위에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등 대외정책이 발전해 갔거든요. 그런데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은 노태우 정부의 업적을 망각하고, 그 이후 민주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만 합니다. 그것을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보수 붕괴의 위기감, 그게 보수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잘하면 나을텐데, 그렇지 못하고 뒤뚱거리니까 그 트라우마가 살아나는 거 아닌가, 그런 트라우마에 대처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 때리기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러나 전임 정부를 낮춰서 후임 정부가 올라가려 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습니다. 진보 세력도 안타깝지만, 보수세력도 참 안타까워요. 자존감도 없이 모든 걸 부정만 하면 무엇이 좋아지겠습니까? 안타깝습니다.”

― 통일외교정책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 들어 모든 분야에서 ‘애니씽 벗 문’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전 정권을 부정하는 기류가  큽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현 정부가 국정운영에 자신감이 있다면 전임 정부의 잘한 일은 칭찬하고 잘못한 건 고쳐나가야 하는 거죠. 그러면 자기도 올라가는 것이거든요. 모든 걸 부정한다고 자기가 올라가는 게 아니에요. 정말로 올라가고 싶으면 열심히 하든지요. 예컨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처라든지, 영남 산불에 누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등이 보이지가 않아요. 이번에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기면서 재난을 총괄하는 위기관리센터가 애매하게 된 것 아닙니까? 제가 날짜까지 기억하는데, 2018년 4월4일 밤 강원도에 산불이 났어요. 그때 문 대통령께서 전국의 소방차를 동원하라고 지시해 해남 땅끝의 소방차가 속초 시내를 질주했어요. 그 장면이 국민들께 안도감을 드렸습니다. 그때 저는 초기 일주일에 세 번을 현장에 갔어요. 지금 정부는 왜 이렇게 태평한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라서 국민이 관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국민의 관용은 무한하지 않고 인내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 5월25일에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로 문재인 대통령을 찾아가 출국 인사를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문 대통령과 어떤 얘기를 나누셨나요?

“주로 일상에 관한 얘기였지요. 어떻게 지내시는지 당신께서 설명해 주시고 집 안팎도 안내해 주셨습니다. 텃밭과 앞·뒷마당 가꾸시는 일, 개와 고양이 돌보시는 일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어요. 그 마을에 들어온 시위대의 소음과 위협적인 행동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큰 고통을 겪으시는 것을 대통령 내외는 굉장히 미안해하고 속상해 하셨어요. 집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좁습니다. 양산 매곡마을에 있던 원래 집보다 한 평도 늘리지 말라는 문 대통령 뜻에 따라 지었다는 것인데, 특히 가족들의 생활공간이 매우 좁아요.”

― 지금 언급하신 것처럼 문 대통령 사저 앞 극우단체의 소음 시위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민주당에선 ‘헤이트스피치(Hate Speech, 증오·혐오를 공공연하게 표현하는 일) 규제 입법’까지 추진중입니다. 이런 방식의 시위가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보십니까?

“집회와 시위의 확대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큰 결실이죠. 그렇게 노력했던 세력이 주로 민주당 또는 민주당을 지지했던 분들입니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들의 일상을 파괴할 정도가 되면, 집회·시위 자유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죠. 게다가 ‘헤이트스피치’라는 새로운 병리현상이 우리 사회에 들어와 전직 대통령 사저 주변까지 침범해 버렸거든요. ‘잊힌 삶을 살겠다’는 퇴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저주와 욕설의 녹음을 온종일 틀고 섬뜩한 현수막을 걸어놓는 것은 우리가 꿈꾸던 민주주의도 아니고, 오히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동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직면할 나쁜 현상을 예고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민주주의의 바람직한 성숙을 위해 더 늦기 전에 방어기제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헤이트스피치 규제 입법의 필요성을 얘기했던 겁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말 지지율이 40%를 넘긴 했지만, 어쨌든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는 건 매우 뼈아픈 대목입니다. 문재인 정부를 돌아보면 어떤 점이 가장 아쉽고 아프게 느껴집니까?

“전체를 놓고 보면, 열심히 일한 정부였다, 대단히 진지한 정부였다, 이건 제가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통령 자신의 성품이 매사 진지하고 허투루 하지 않으세요. 농담도 별로 안하시고요. 그럼에도 정부는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니까,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부동산과 국민통합은 아쉽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고 그것이 지금도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게 생각합니다.”

― 부동산정책 실패는 많은 분들이 지적한 것이고, 국민통합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였다고 보십니까?

“지금 윤석열 정부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을 겁니다. 뭐냐하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과정에서 형성된 정부거든요. 그래서 적폐 청산이라는 것이 시대적 숙제로 주어져 있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국민통합을 해야 하는 과제가 또 있었죠. 그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때론 충돌할 수 있거든요. 더구나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상처를 받았던 세력은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의 제약이 있었지만, 협치를 위해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구성하기도 했는데 한번밖에 모이지 못하고 작동을 못했지요. 또한 내각에 야당 인사를 모시려고 몇 분한테 제안을 했지만, 누구도 수락하지 않았어요. 그런 것이 참 아쉽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충분치 않았다고 볼 수 있지만, 두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를 내는 것이라면 야당에도 책임의 일단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가령 윤석열 정부가 민주당에 장관 1~2자리 줄테니까 추천해달라고 하면 민주당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저는 굉장히 어려울 거라고 보는데요.

“어려울 겁니다. 다만 지도자의 리더십으로 넘어설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보는 게 괜찮을 것도 같아요. 김대중 정부 초기에 청와대 비서실장(김중권) 국정원장(이종찬) 통일부장관(강인덕), 세 축이 모두 보수였지 않습니까?”

― 윤석열 정부가 공식 출범한지 한 달이 되어갑니다. 윤석열 정부의 초기 인사와 정책,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대통령직의 의미와 책임을 굉장히 쉽게 보는 것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국내외 당면 문제를 새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별로 보이지 않고 대통령의 출근과 시민교통의 불편, 식사와 음주·애견·쇼핑·부인의 옷차림 등에 대한 얘기가 넘쳐나고 있거든요. 그런 것에 대한 국민의 호의적 관심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머지 않아 피로와 회의감으로 바뀔 겁니다. 인사도 너무 거칠고 편협합니다. 사적인 인연에 의한 천거가 많고, 성별 연령 지역 등의 균형과 안배를 경시하는 거 같아요. 도덕성이나 과거 잘못에 대한 검증도 부실하고 무감각하죠. 바이든 대통령 앞에서 외국 기자의 지적을 받은 후에야 부랴부랴 여성 장관들을 천거한 건 부끄러운 일 아닙니까?”

― 박빙의 대선 결과가 말해주듯 우리 정치와 사회는 딱 둘로 갈라져서 갈등과 대립이 점점 더 심해지는 거 같습니다. 이걸 완화 또는 극복하는 게 정치의 역할일 텐데요, 윤석열 정부가 이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을까요?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윤석열 정부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지만, 잘할 것이라고 낙관하지는 못합니다. 초기 인사나 정책을 보면, 그런 식으로는 갈등이 극복되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될 겁니다. 이 정권 사람들이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편하게 가려 하면 갈등을 완화하기 어려울 거예요. 불편하더라도 반대 의견이나 익숙하지 않은 방식을 수용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박찬수 대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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