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반려견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팬클럽을 통해 지난달 29일 공개됐다. 페이스북 건희사랑 갈무리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영부인이라는 말을 쓰지 맙시다. 무슨 영부인.” “(청와대 제2부속실은) 폐지하는 게 맞다고 본다. 대통령 부인은 그냥 가족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22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자가 <동아일보>와 인터뷰 때 밝힌 내용이다.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며칠 뒤인 26일, 자신의 허위 이력 논란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며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다.
뚜껑을 여니 달랐다. 윤 대통령 취임 뒤 김 여사는 연일 ‘광폭 행보’를 이어갔다. 전직 대통령 부인들을 잇달아 만난 데 이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동물권 관련 활동과 소외계층에 관심을 쏟겠다고 밝혔다. 동물복지 관련 정책도 주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겨레>에 “(김 여사가) 대통령 손길이 닿지 않는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는 큰 틀을 갖고 있으며 미술 전시 기획자로서 커리어우먼의 전문성을 결합하는 활동을 하면 어떨까 고민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퍼스트레이디 프로젝트’가 막이 오른 셈이다.
김건희 여사가 1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비 앞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 여사는 그간 공식적인 일정 외에도 유기견 거리입양 행사에 참석하거나 윤 대통령과 영화관람, 제과점 방문 등으로 눈길을 모았다. 취임 한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공사영역을 넘나드는 대통령 부인의 활발한 움직임에 관심이 쏠렸고, 팬클럽을 통해 보안시설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강아지를 안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었다. 언론과 패션 인플루언서들은 그가 입은 의상·액세서리 브랜드와 가격 정보를 실시간 중계했다. 김 여사는 한국 사회 최초의 ‘셀럽 영부인’이 되었다.
1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았던 김 여사의 일행 중에 그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의 전무 출신 김아무개씨가 포함돼 ‘비선 논란’이 점화했다. 급기야 박지원 전 국정원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야권 주요 인사들은 공약 파기가 될지라도 제2부속실을 부활시켜 ‘영부인 리스크’를 공적으로 관리하라고 촉구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김 여사의 미공개 사진이 팬카페에 공개된 것을 두고 “공적인 조직을 통해 하면 좋지 않을까”라고 우려했다. 윤 대통령은 지인 동행 논란에 “공식 일정과 비공식 일정을 나누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대통령 배우자는 얼마나 공적인 자리인가? 단순히 ‘대통령의 가족’일 뿐인가, 막후의 권력 실세인가? 역대 한국의 대통령 부인은 어떤 역할을 해왔으며 어떤 딜레마를 겪었는지를 살펴본다.
청와대 본관 내부와 관저 내부가 부분 공개된 지난달 26일 오전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이 본관 1층 무궁화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역대 대통령 부인의 초상화가 걸린 이곳은 대통령 부인이 사용하던 공간으로 외빈을 만나는 접견실과 집무실로 쓰였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통령 배우자는 대통령 통치술의 행위자이며 정치적, 정책적 영향력을 가진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말대로 대통령 부인은 법적으로 대통령의 가족일 뿐, 지위나 역할에 관한 뚜렷한 법적 근거는 없다. 국내법상 대통령 부인에 관련된 내용은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제4조에만 있다. 미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 연방 법전(United States Code, USC)을 보면, 대통령에게 허락된 인력 등의 지원이 배우자에게도 필요하다면 가능하다고 규정한 것 정도다.
하지만 대통령 배우자가 마음만 먹으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17년 <신동아>와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2.3%가 ‘(대통령 부인은) 권력형 비리에 연루될 수 있다’고 답했다. (5대 광역시 1000명 대상) 최근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지난 11일 여론조사기관 넥스트리서치가 <에스비에스>(SBS)의 의뢰로 조사한 결과 김 여사가 ‘윤 대통령 내조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응답은 60.6%로 나왔다. ‘대통령 부인으로서 공적 활동을 하는 편이 낫다’는 응답은 31.3%에 그쳤다. (전국 18살 이상 1010명 대상)
국민 대다수는 대통령 부인의 독자적인 활동에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낸다. 더군다나 대통령 부인과 관련된 권력형 부패 사건들이 적지 않았던 한국 사회는 경계심이 높다. 전직 대통령실 제2부속실장은 “영부인이 ‘대통령 내조자’에서 벗어나려면 국민적 통제(우려)가 강했다. 그러나 매우 사적인 부분부터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수렴, 한국의 상징적 문화사절 역할까지 정치적 동반자로서 영부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통령 배우자는 공식 지위는 없지만 막강한 힘을 가진 자리인 것이다.
1963년 5월30일 국민운동부녀회 각 시·도·군·읍 대표단과 담소중인 육영수 여사(가운데 가방 든 이). 세련된 원피스 차림이다. 연합뉴스
자유당 시절 대통령 부인은 ‘국모’에 준했다. 박정희 집권기 또한 대통령부인컵 정구대회 등이 있을 정도로 그 지위가 왕조시대 못지 않게 높았다. 1968년엔 육영수 여사가 이끌던 고위직 부인들의 모임인 양지회 회원들이 대통령 부인에 대한 존칭으로 ‘경모’라는 신어를 만들어 보급했다. 하지만 ‘국모’못지 않게 권위적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오자 육 여사는 기자들을 불러 냉면을 먹이며 본인이 원한 호칭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1974년 서거 이후 육 여사를 일컬어 ‘국모’라며 애도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언론은 상세히 보도했다. “친어머니처럼 우리들을 보살펴주던 분”(1974년 8월19일 <경향신문> 6면) “부인께 영부인이라는 존칭을 인색하지 않게 드리고…국모라는 칭호도 드리고”(1974년 8월16일 <동아일보> 5면) 등이다. ‘영부인’이란 호칭이 대통령 부인만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진 것은 이 애도 기간을 전후해서였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보면, 영부인은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1997년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자 황낙주 의원이 이 후보의 부인을 ‘영부인’으로 일컬어 빈축을 샀다. 사전상 영부인은 대통령 부인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므로 황 의원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단어가 ‘대통령 전용말’이기에 논란이 되었던 것이다. 전두환 집권기인 제5공화국 시절엔 청와대 출입기자가 기자회견에서 이순자씨를 ‘사모님’이라 칭했다는 이유로 경호실에 불려가 곤욕을 치렀다. ‘보통 사람의 시대’를 내세운 노태우 집권기엔 ‘영부인’이란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했고 이때부터 언론도 ‘대통령 부인’으로 호칭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통령 부인 호칭에 거품을 빼는 것도 반발을 불렀다. <한겨레>, <오마이뉴스>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부인을 ‘김정숙씨’로 표기하자 지지자들의 격렬한 항의가 쏟아졌다. ‘씨’라는 호칭이 존칭이라기보다 전직 대통령 부인들에 견줘 김 여사를 낮춰 부른 듯한 인상을 주면서 대통령의 힘과 권위까지 무시하는 것으로 해석된 것이다. <한겨레>는 창간 이후 원칙이었던 대통령 부인 존칭을 ‘씨’에서 ‘여사’로 변경했다.(‘대통령 전용말 ‘영부인’과 ‘여사’의 쓰임 분석’, 이정복, 2019)
미국 연방법전(USC)은 대통령 부인을 ‘배우자’(spouse)로 표기한다. 일반적으로 쓰는 ‘퍼스트레이디’(first lady)는 1877년 러더퍼드 헤이스 대통령 취임 때 한 기자가 그 부인을 ‘퍼스트레이디’라고 처음 부른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퍼스트레이디건, 퍼스트스파우스건 모두 대통령 부인만 가리키는 전용말은 아니고, 남성 최고위직의 부인이나 가족을 일컫는 이성애 부부 중심 사회의 가부장적 용어로 가장 흔히 쓰인다.
정치·행정학자들은 영부인의 역할을 통상 관례적 역할, 정치·정책적 역할로 분류한다.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통령 부인 힐러리 로댐 클린턴이 의료보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을 때 대통령 배우자의 정체성을 두고 법적 소송이 벌어졌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정의하려는 사법적 시도가 이뤄진 것이다. 미국 의사협회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대통령 부인을 사실상 연방정부의 공무원으로 볼 수 있다고 판결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변호사이자 정치인으로 경력을 착실히 쌓아온 전문가였음에도 이 판결은 억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통령 배우자’는 가족일 뿐, 그 지위의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분류한 연구를 보면, 지적 전문성과 정치적 전문성을 갖고 정치·정책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한 이는 사실상 이희호 여사가 유일하다. 대부분은 전문성이 없는 ‘내조형’에 머물렀다.(<영부인론>, 함성득, 2001) 한국 대통령 부인에 대한 공적 논의나 활동 자료는 부족하다. 그나마 공적 사료로 남은 것이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활동자료집>(대통령 비서실 제2부속실간)인데, 후임자와 학계 연구자료용으로 단 50권만 찍었다. 이 책에서 권 여사는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국가가 수립하는 일들이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림자 내조’ 정도를 기준으로 삼았던 셈이다. 권 여사는 작은도서관 활성화 사업, 스쿨존 설치 등에 힘을 실었으며 해외순방, 외교접견, 국제정상회의 등 2003년부터 2007년까지 1190개의 공식일정을 소화했다. 비공식 일정도 많았다. 이를테면 2004년 사학법 개정 논란 당시 그는 가장 극심하게 저항한 종교단체 임원과 사학재단 이사장들을 만났다. 개정 반대론자들이 작심하고 면전에서 심한 말들을 여과없이 쏟아부었지만, 대통령이 직접 풀기 어려운 문제를 보조하는 일도 배우자의 몫이었다.(<사랑은 힘이 세다>, 2010, 이은희)
이같은 대통령 부인의 정치·정책적 일정, 행사, 활동을 보좌하는 곳이 제2부속실이다. 이 조직은 50년 전, 박정희 집권기인 1972년 7월에 탄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이 기구는 비선 실세 의혹의 핵심 조직이었다. ‘문고리 3인방’ 중 한명인 안봉근씨가 실장을 맡았고, 최서원(최순실)씨의 개인 비서처럼 활동한 것으로 밝혀진 이영선, 윤전추 전 행정관이 소속돼 일했다. 참여정부 시절 제2부속실장을 지낸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 아내로서 내조만 하겠다고 했는데 왜 마음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공적 활동을 하기 위해선 제2부속실을 되살려 법적 근거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9년 10월15일 ‘한국패션 100년전’이 열린 대전 롯데백화점에 역대 대통령 부인들의 옷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조선 마지막 왕비 이방자, 프란체스카, 공덕귀, 육영수, 이순자, 이희호, 권양숙 여사의 의상. 연합뉴스
김 여사의 활동 논란에서 보듯 대통령 부인은 공사영역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눈에 띄는 존재로서 가장 큰 딜레마를 갖는다. 남성의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에 따를 때 대통령 부인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대통령의 한발 뒤에서 움직이는 인도적이고 자애로운 퍼스트레이디 이미지는 대통령의 남성 이미지를 완성한다.(‘젠더와 정치공간’, 안숙영, 2014) 김정숙 여사가 손수 만든 홍삼정과, 김건희 여사가 손수 만든 샌드위치가 ‘음식 내조’라며 화제가 되는 건 접객이라는 가사노동 영역이 여성 배우자의 일로 할당되었기 때문이다.(‘대통령 부인도 피하지 못한 테이블 성차별’, 이라영, 2022년 6월4일치 <한겨레>)
대통령 부인의 의상·패션·성형 같은 외모 이슈는 가장 뜨거운 정치적 문제가 된다. 무엇보다 대통령 부인의 옷은 구설수 만들기, 모욕 주기 같은 정치적 담론 공격에 주로 사용돼왔다. 김정숙 여사를 향해 언론과 보수단체가 마치 세금으로 사치와 낭비를 일삼은 것처럼 비난 담론을 퍼부은 것이 단적인 예다.
1980년대 이순자씨는 ‘연희동 빨간바지 복부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여성지와 인터뷰에서 카르티에 시계를 차고 나오면서 ‘명품족’으로 찍히기도 했다. 대통령 활동 소식을 방송 뉴스 맨 앞에 배치한 ‘땡전뉴스’에 자주 나온 그는 검소한 청와대 안주인상에서 벗어났고 의복이 사치스럽다고 큰 비난을 받았다. 컬러텔레비전의 보급으로 대통령 부인의 금박 물린 화려한 ‘당의’ 등이 도드라져보인 까닭도 있었다.
이희호 여사 또한 ‘옷’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00년 한나라당 이신범 의원은 이 여사가 1998년 베트남 국빈 방문 때 입은 옷이 2000만원짜리 샤넬 외투라고 주장했다. 1999년 이른바 ‘옷로비 사건’에 휘말려 활동에 제약을 받기도 했다. 당시 ‘특검을 통해 밝혀진 건 앙드레 김의 본명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어떤 실체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정치적 타격은 적지 않았다.
‘유쾌한 정숙씨’라는 별명을 가진 김정숙 여사는 임기 초 같은 옷을 돌려입는 센스가 좋고 홈쇼핑 옷조차 고급스럽게 소화하는 ‘패션 외교 사절’로 칭찬을 받았지만 지난 대선 국면에서는 ‘옷값 논란’에 시달렸다. 청와대는 대통령 부인의 의상은 사비로 구입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는 젊은 영부인 이미지에 걸맞게 재클린 케네디가 즐겨 착용하던 목이 긴 장갑과 다양한 스타일로 취임 초기부터 상찬을 받았고, 그가 입은 옷과 신발은 매진행렬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후 그가 착용한 해외 명품 브랜드 의상과 액세서리가 수백에서 천여만원대에 이르는 것이라고 알려지면서 역풍이 불기도 했다.
1999년 8월24일 고위층 옷로비 사건으로 국회 청문회장에서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앙드레김(흰옷 입은 이) 디자이너. ‘마녀사냥이다’, ‘상류층 도덕적 해이 검증이다’라며 시각이 엇갈렸다. 연합뉴스
재클린 케네디는 에이브러험 링컨의 방 복원 등 미국 역사를 백악관에 남기는 리모델링 사업을 벌였다. 낸시 레이건은 마약 방지 캠페인, 힐러리 클린턴은 의료개혁을 지휘했다. 미셸 오바마는 비만 방지 ‘렛츠 무브’ 활동을 벌였다. 개인적 관심에서 출발한 퍼스트레이디의 사업을 미국에서는 ‘펫 프로젝트’(pet project)라 일컫는다.
육영수 여사는 한센인을 만나거나 빈곤층을 지원하는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가 1964년 공식 창설한 양지회는 고위공직자 부인들의 봉사 모임이었지만 고위층의 로비 통로로 입방아에 올랐다. 회원들의 위계는 남편 지위와 직접 결부되었고 남편이 공직에서 물러나면 탈퇴해야 했다.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조은희, 2007)
이순자씨는 육 여사의 사업을 본떠 ‘새세대 육영회’와 ‘새세대 심장재단’을 주도했으나 모금의 불법성과 강제성 등으로 문제가 되었다. 새세대 육영회는 1981년 설립 이후 1988년까지 236억원의 찬조금을 거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재단이 정경유착 구조 속에 놓여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김윤옥 여사는 2009년 발족한 한식세계화 추진단의 명예회장으로 활동했지만 800억원에 가까운 예산낭비를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농림수산식품부(농림축산식품부로 개편) 중심으로 ‘떡볶이의 세계화’ 기획을 하거나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을 공모했지만 실패하는 등 졸속 사업 문제가 지적됐다.
대통령 부인이 관심을 두기에 따라 해당 사업을 펼칠 때 관련 부처의 예산을 쓰거나 정책에 힘을 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편의 지위에 따라 부여된 힘이기에 높은 도덕성 또한 함께 요구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앞줄 가운데)가 2010년 11월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식당 ‘무궁화’ 리뉴얼 오픈행사에 참석해 밝게 웃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대통령 부인은 자신과 주변의 공적 관리가 필요한 대상이다. 그 지위와 활동이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려니와 그는 대통령의 제1참모이자 정보원이 된다. 이순자씨의 경우, 가족의 비자금 사건이 터질 때마다 동생 이창석씨의 이름이 불려나왔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박철언 전 장관은 김옥숙 여사의 사촌동생으로 권세가 대단해 ‘6공의 황태자’로 불렸다.
김건희 여사는 대선 당시 후보쪽 조직 등에 친오빠가 비선으로 개입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당선 후엔 김 여사의 일상 사진들이 친오빠를 통해 기자들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봉하마을에 동행했던 여성 4명 중 3명이 김 여사가 운영했던 코바나컨텐츠 근무 전력이 있어 논란을 빚었다. 이 중 2명은 대통령실 직원으로 채용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참에 대통령 부인의 일을 공식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대통령의 배우자는 그냥 ‘배우자’로 볼 수 없다. 김 여사의 외적인 모습에 관심이 쏠려 정치적 이슈가 매몰되고 있지만, 이 기회에 대통령 부인의 위상이나 역할을 다각도로 점검하고 공식화해 문제를 차단하는 제도를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 영부인’이 더 이상 여자 아이들의 꿈이 되는 시대가 아니고, 대통령 부인은 선출되거나 임명된 권력이 아니기에 지위나 역할을 공식화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지금 상황은 법률가이자 정치인 출신인 힐러리 클린턴, 여성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이희호처럼 남편의 지위와 관계없이 자신의 힘으로 정치적 위상을 확보하여 영부인이라는 위치 때문에 오히려 역량 발휘를 하기 어려웠던 인물들과는 다른 경우”라고 말했다. “대통령 부인이 스스로 공적 조직에서 뭔가를 하려면 대통령 부인으로서가 아니라 본인의 커리어로서 도전해야 한다. 봉건제도 아닌 대통령제 민주 사회에서 남성 배우자의 지위에 따라 자동으로 여성의 권한과 역할이 부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는 가부장제 사회에서만 용인되는 일”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미국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사망 뒤 재클린 케네디의 고뇌와 혼란을 다룬 영화 <재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영부인은 짐 쌀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그게 숙명이니까요.” 수많은 ‘영부인 딜레마’ 또한 남성 정치인 중심 가부장적 정치제도의 숙명이다.
이유진 김미나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