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 의장(가운데)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제6차 중앙위원회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 오른쪽은 박홍근 원내대표.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이 8·28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헌을 개정해 ‘전당원 투표’를 당의 최고 의결방법으로 격상하려 했으나, 당내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 등이 모인 중앙위원회에서 과반 찬성표를 얻지 못해 부결됐다. 표면적 이유는 “토론이 부족했다”는 것이지만, ‘이재명 대표체제’ 출범이 유력한 상황에서 ‘개딸’ 등 강성지지층이 당의 노선을 흔드는 ‘당원 포퓰리즘’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풀이된다. 친이재명계(친명계)가 뜻밖의 일격을 맞은 모양새다. 당 지도부 또한 예상치 못한 결과를 접하고, 26일 당무위를 다시 소집해 ‘전당원 투표’ 안건을 뺀 당헌 개정안을 다시 상정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24일 국회에서 중앙위 회의를 열어 당헌 개정안 온라인 표결 결과, 재적 566명 중 430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268명(47.35%)만 찬성해 안건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이날 상정된 당헌 개정안엔 ‘권리당원 전원투표는 전국대의원대회 의결보다 우선하는 당의 최고 의사결정 방법’이라는 신설 조항(14조2항)과 ‘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되,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면 당무위가 구제할 수 있다’는 개정 조항(80조)이 담겼다. 당헌을 개정하려면 ‘재적 중앙위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과반이 넘는 중앙위원 298명이 당헌 개정에 반대하거나 투표를 하지 않은 것이다. 중앙위는 당 소속 국회의원 뿐 아니라 당직자와 고문단, 원외 지역위원장, 자치단체장, 기초·광역의회 의장단, 각종 전국위원회 추천인으로 구성된 대의기관이다.
당내에선 당헌 개정안이 중앙위에서 무난히 통과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일부 강성 목소리만 과대대표될 수 있다”는 반론이 나왔지만, 당의 합당과 해산 등에 대해 권리당원 전원투표가 전국대의원대회 의결보다 우선한다는 내용은 기존 당규 조항을 당헌으로 끌어올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게 지도부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당헌 개정안이 중앙위에서 부결되자 당황한 지도부는 긴급 비대위 회의를 소집하며 수습에 나섰다. 비대위는 전당원 투표 조항을 제외하고 기소 시 구제 조항인 80조 개정안을 25일 당무위, 26일 중앙위에 올려 의결을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 전당원 투표 건은 설명이 부족했지만 80조 개정안은 당내 공감대를 이뤘다는 판단이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전당원 투표 건에 대해) 일부 중앙위원들이 취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민주정당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그에 따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당헌 개정안 부결은 전당원 투표의 지위를 당 최고 의결기구로 격상해 ‘대의제’보다 ‘직접 민주주의’를 앞세우는 중차대한 사안인데도 지도부가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않고 추진한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비이재명계인 한 의원은 “포퓰리즘이 갖는 부작용을 고려할 때 숙의 민주주의의 중요성이 간단히 무시됐다는 것을 정치 고관여층인 중앙위원들이 인지한 것”이라고 짚었다. 친명계의 한 의원도 “당원 권한이 커져야 한다고 보기에 나는 찬성표를 던졌지만 당내에서 토론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30% 수준인 전당원 투표 성립 기준을 높이는 등의 방식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하며 토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당헌 개정을 앞장서서 반대했던 박용진 후보는 “중앙위의 부결 결과는 민주당 바로세우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당내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줬다”고 환영했다. 그는 “차분하게 당원들의 직접 민주주의, 당원 참여를 어떻게 확장시킬지 고민하고 제도적 정비해나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전당대회 내내 ‘여심(여의도 국회의원 민심)과 당심(당원 민심)의 괴리’를 말하며 당원권 신장을 주장해온 이재명 후보가 당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뒤 전당원 투표를 둘러싼 논란은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친명계의 또다른 의원은 “(당헌 개정안 부결은) 현장 당원들의 요구가 당의 엘리트들에 의해서 수용되지 못하고 있는 부조화·지체가 나타난 것이고 당 운영의 비민주성이 드러난 사례”라며 “이렇게 괴리가 드러났는데 당원들이 가만히 있겠냐”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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