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호 정의당 10년 평가위원장이 19일 존망의 기로에 선 당의 위기를 진단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진보 집권을 목표로 2012년 창당한 정의당이 10년 만에 존망의 기로에 섰다. 원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조국 사태 때 검찰개혁을 명분 삼아 더불어민주당과 보조를 맞추고, 단식농성까지 하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을 관철했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위성정당 창당 꼼수에 의석 확대엔 실패했다. ‘민주당 의존 전략’으로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상실하면서 총선, 대선에서 참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저희가 부족했다”며 머리를 조아렸지만 정의당은 진보당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6·1 지방선거에서 9석만 지켰다. 2018년 광역의회, 기초의회에서 37석을 확보한 것에 견주면 폭망 수준이다.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면서 지난 6월 이은주 의원을 위원장으로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켰다. 정의당 비대위는 10년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명은 물론 강령, 조직노선 등 총체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재창당을 결의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그러나 당원 일부가 비례대표 5명의 총사퇴를 권고하는 총투표 안을 발의했고, 오는 31일부터 새달 4일까지 당원 총투표를 진행한다. 그 결과에 따라 정의당은 격동할 것으로 보인다. 한석호 10년평가위원장, 이정미 전 대표와의 인터뷰, 진보 원로인 권영길·천영세 전 민주노동당 대표와의 대담을 통해 정의당의 추락 원인과 활로를 들어봤다. 정의당 실패의 가장 큰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밝힌 심상정 전 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미 저는 책임있게 제가 할 얘기를 다 했다. 지금은 새 지도부가 정의당의 앞길을 모색할 때”라며 “다음 기회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말했다.
정의당 비대위원으로 정의당 실패의 원인과 재창당의 핵심 키워드를 찾기 위해 전국을 돌며 당원들의 의견을 듣고 있는 한석호 10년평가위원장은 거침없이 쓴소리를 뱉어냈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전태일기념관에서 한 위원장을 만났다.
―10년평가위원장으로 전국을 돌며 당원의 의견을 듣고 있는데 실패 원인에 대한 당원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나요?
“예, 핵심은 정의당이 자기 노선, 자기 정체성, 그러니까 자기 색깔이 있어야 되는데 10년 동안 그게 너무 엷어졌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민주당하고 차이점이 구분 안 된다는 게 핵심적인 지적인 것 같아요. 진보정당으로서 존재하려면 ‘아 맞아, 저 정당이 저렇게 독자적으로 남아 있을 이유가 있지. 저건 필요해’라는 효능감이 있어야 하고, 그걸 국민들이 인정을 해야 하는데 그게 사라졌다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는 데 다들 일치하는 판단을 하는 것 같아요.”
―왜 정의당 10년이 정체성 상실로 이어졌다고 보시나요?
“강령의 한계였던 것 같아요. 정의당 강령이 ‘정의로운 복지국가’ 강령인데, 그러다 보니 복지정책, 각종 수당 이런 것만 집중하고, 거기서 문제가 발생을 한 거죠. 한국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불평등, 10 대 90의 불평등이 미국보다 더 심각한 상태인데, 정의당은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한국 사회 구조를 바꿔나가자고 설득하지 않았어요. 토마 피케티 등 세계 100여개 국가의 불평등을 연구하는 학자·교수들·전문가들이 공동 운영하는 플랫폼 자료에 의하면 한국이 이미 10 대 90 불평등에서 미국을 능가했거든요. 미국이 상위 10%가 45.5%의 소득을 가져가고 나머지 90%가 54.5%의 소득으로 먹고사는데, 한국은 상위 10%가 46.5% 소득을 가져가요. 미국보다도 1%가 더 많아요. 이 정도로 불평등 상태가 심각한데 이 구조를 정의당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 못한 거죠. 진보정당이라면 10년 프로젝트든 20년 프로젝트든 비전을 제시하면서 세금정책 등 대안을 더 촘촘하게 짜 국민들을 설득하고, 또 국민들한테 그런 사회로 나아가자, 이런 사회를 미래 세대한테 넘겨주자고 얘기했어야 하는데 이것은 거의 거론도 하지 않고 복지정책, 뭐 이걸 정책이라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복지의 시선으로 바라본 거예요. 원래 불평등 구조를 바꿔나가면서 그래도 현실적인 문제에서 풀리지 않는 것들을 복지로 채워주는 건데 정의당 10년은 앞의 문제가 빠졌던 거죠.”
―정의당이 차별철폐 등 다양한 활동을 한 것 아닌가요?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행동들도 중요한데, 진보정당은 태생부터가 불평등에 맞서면서 탄생한 것이잖아요. 불평등한 이 체제를 바꿔나가자는 게 진보정당의 첫번째 태생적 사명이고, 두번째는 누구랑 같이 이것을 할 거냐고 했을 때 노동과 함께 한다고 하는 게 진보정당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고, 태생이고, 사명인데 정의당은 이것을 놓쳤다는 거죠. 불평등을 놓치고 노동 전략이 없으니 노동과도 멀어졌어요. 이 지점을 비대위 10년평가위원회에서 정의당의 핵심적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누구 책임인가요?
“저 같은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모두의, 공통의 책임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중심이 돼서 당을 이끌어왔던 핵심 정치인은 심상정 의원이고, 심상정 의원이 당을 그렇게 끌고 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 큰 책임을 져야죠.”
―심 전 대표도 불평등 해소를 얘기해왔어요?
“심상정 의원도, 정의당도 불평등 해소를 얘기했죠. 했는데, 드러나는 정책이 복지 증세해야 된다고 하잖아요. 복지 증세와 불평등 구조를 바꾸기 위한 증세는 다른 것이거든요. 그런 것들은 다 뒤로 제쳐놓고 불평등 구조 자체를 용인하는 속에서 세금 조금 더 내서 이것을 전체의 복지로 돌리자고 하는 쪽으로 간 거잖아요. 심상정 의원의 살찐고양이법도 일정한 구간 이상 임금을 통제하자, 조절하자, 소득 상위 10% 들어가니 7천만원 이상 받는 이들을 향해서도 적절히 적용하자 이렇게 가야 되는데 그걸 싹 빼고 대기업 임원, 공공기관 임원, 이런 걸로 한정을 해버렸다는 거죠. 누구한테도 욕먹기 싫고 사회적으로 아무 의미도 없고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는 이런 거, 아무 효력을 발휘 못하는 걸 던진 거죠. 정의당이 이런 것들도 얘기해야 했어요.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 문제도 그렇고요.”
―정의당은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의 문제를 계속 말해왔잖아요?
“말은 했죠. 그 말은 재벌들도 하거든요. 가끔 재벌들도 한국의 불평등이 너무 심각하다고 얘기해요.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우리 정의당도 얘기하고 다 하잖아요. 조중동에서도 때에 따라서는 불평등을 크게 보도해요.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문제고, 보수는 보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자기 포인트가 있는 거죠. 정의당은 도대체 어떤 포인트로 갈 거냐고 하는데 전부 다 똑같이 복지와 수당 얘기만 했던 것 같아요. 구조 얘기는 안 하고. 정의당이 그러면 안 되는 거죠.”
―조국 사태와 선거법 개정 몰입 때문에 몰락했다는 평가도 있어요.
“조국 사태도 바로 그런 지점입니다. 조국 사태엔 불공정 측면이 있고 정의당의 관점으로 보면 불공정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게 불평등의 문제인데 그걸 원칙의 문제로 바라보지 못한 거죠. 조국 전 장관은 최상위 1%, 그 성채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 성채를 자식에게 대물림하기 위해서 그런 불공정한 행위들을 한 거잖아요. 그냥 단순하게 검찰개혁이냐 아니냐로, 또 선거법 개정안을 따낼 수 있느냐 없느냐로 접근하니…. 정의당이 자기 기준과 자기 원칙이 없으니까 오판을 하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독자적 진보정당으로서의 효능감이 완전히 사라진 거예요.”
―그 정도로 심각한 사안인가요?
“국민들로부터 정의당은 불평등이든 차별 문제 등에 대해 자기 정체성이 있고 선거에서 표를 덜 얻더라도 그 정체성, 자기 기준을 갖고 밀고 간다라는 게 있어야 해요. 그런데 조국 사태를 보니 기준도 없고, 자기 욕심 챙기는 것으로 보인 거죠. 우리 정의당 입장에서는 국회 의석이 더 많이 늘어야지 세상을 바꾸는 데 더 기여한다 이렇게 보지만, 국민들이 봤을 때는 자기 의석 늘리기 위해서 합리화하는 욕심쟁이, 정당한 기준도 원칙도 없고 그냥 민주당에 붙어서 그것을 채우려고 하는 정당, 이렇게 규정된 거 아닙니까.”
―당시엔 당원들 중에 상당수가 그런 선택을 요구한 것 아닌가요. 조국 사퇴를 요구하면 최대 8천명의 당원이 탈당할 거란 얘기도 있었죠.
“그랬죠. 당내 정파들, 주요 활동가, 당원들이 다 그런 흐름으로 휩쓸렸죠. 그런데 소수의 목소리지만 ‘이건 뭡니까? 조국 장관의 데스노트 써야 된다, 사퇴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흐름이 분명히 있었어요. 저는 심상정 의원의 그런 선택에 대해 이해를 하지만 동의할 수 없어요. 당원 다수의 뜻이라고 그냥 그쪽으로 간다면 정의당의 리더를 할 필요가 없는 거죠. 리더는 노선과 철학을 갖고 판단을 하면서 당원과 당내 다수의 흐름이 그렇게 가더라도 ‘그건 아니다’라고 하면서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야죠. 심 의원은 명확하게 반대 입장을 밝히고 조국 전 장관을 데스노트에 넣었다면 국민 인식 속에 정의당은 민주당 2중대가 아니다, 진보정당으로 자기 정체성이 있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었을 것 아닙니까.”
―지금 시점에서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탈당 사태 등이 촉발됐을 수 있어요.
“그러면 당원을 재구성해야지요.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정의당이 민주당 2중대를 해야 한다는 당원들, 국민의힘에 맞서 민주당과 함께 저들을 완전히 제압을 해야 한다는 당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 이후에 탈당을 하죠. 대선에서 심상정이 완주하니까 또 탈당하고. 조국 사태 때 올바른 선택을 못하니까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 정체성을 갖고 서야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조국 사태 때 탈당하고, 노동·시민운동 쪽에서 진보의 원칙과 철학을 지켜야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정의당과 결합하지 않고 멀어졌어요. 그 결과가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였다고 봐요.”
―대선, 지방선거 결과를 그렇게 해석해야 하나요?
“이런 게 쌓이면서 정의당이 10년을 지나니까 ‘이제 못 참겠어, 그냥 네 멋대로 알아서 해’가 된 것이죠. 민주당 2중대를 해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정의당 당원으로 있으면서도 계속 민주당 찍었어요. 노골적으로 민주당 후보 선거운동을 하고, 정의당 선거운동을 똘똘 뭉쳐서 할 수 있는 단위들은 그들대로 ‘이제는 네가 멋대로 해, 꼬라지도 보기 싫어’ 이러면서 기권을 하거나 막 이상한 투표 행위들을 한 거예요. ‘에라 민주당 심판해야지’ 하면서 정의당이 못하니까 윤석열보고 심판하라면서 윤석열을 찍는 혼돈까지 만들어버린 거죠.”
―정의당이 지난 10년 비례의석 확대 전술에 몰입하면서 현장과 괴리됐다는 문제도 지적되는데.
“그것에 대해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독자적인 자기 성장 전략에 대한 투여 없이, 정치연합이 안 되더라도 성장할 수 있는 전략을 소홀히 하고, 매번 정치연합을 통해, 주로 민주당과의 정치연합을 통해 비례 의석수를 늘리고, 그다음 비례 의원이 지역에 출마해 선거에서 당선된다고 하는 것에 매몰돼 있었던 문제도 당대회에 제출할 평가입니다.”
―의석수를 늘려야 정책을 관철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2004년 총선거를 생각해보세요. 당시 권영길, 조승수 이런 사람도 당선되잖아요. 이들이 선거연합을 통해 당선했습니까. 심상정도 때에 따라 민주당과 연합을 했지만 민주당 후보가 출마한 속에서도 독자 당선 되잖아요.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할 구상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늘 그것은 뒷전이고, 민주당하고 먼저 선거연합을 하려는 고민을 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자꾸 잃어간 것이죠. 국민들의 다수는 양당을 지지해요. 그러면 정의당을 해체해야 되는 겁니까? 아니잖아요. 국민 다수는 양당(지지)이지만 우리는 정의당이라는 독자정당을 만들어서 우리 길을 가는 진보정당이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조국 사태에서도 그렇게 설득했어야죠. 국민 다수가 원한다고 그걸 따라간다면 정의당을 해산해야지요. 당원 다수가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얘기할 것 같으면 우리 정의당은 해산하는 게 맞아요.”
―이른바 계파, 정파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제가 (비대위원으로) 당에 들어와서 보니까 정파가 정파로 기능하는 데가 없어요. 좀 심하게 말하면 정파라는 게 일상적인 당의 실천 활동과 의정 활동 속에서 나와야 하는데 늘 선거 때만 보이죠. 당내 선거 때만 보이는 ‘선거 정파’가 돼버린 것 같아요.”
―정의당이 새롭게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요?
“재창당으로 가는 겁니다. 비대위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 자기 색깔, 자기 노선을 명확히 하고, 불평등, 노동을 토대로 한 독자 성장 전략을 갖는 것으로 명확하게 흐름을 잡아놓고 재창당을 해야죠. 9월17일 당대회 때 부대표 수를 5명에서 3명으로 축소하고 전국위원회, 대의기구 등과 관련한 당헌·당규 개정안이 올라가고요, 그다음에 재창당 결의안이 올라갑니다. 강령 당명을 포함해서 총선 전에, 2023년 안에 재창당을 완료한다는 결의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차기 당대표가 당선되자마자 재창당 과정에 돌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당명도 바꾼다는 것인가요?
“전국을 순회하면서 들어보니 압도적입니다. 당명도 바꿔야 한다. 정의당이란 당명은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면 보수정당들이 많이 쓰는 거잖아요.”
―핵심은 정의당은 누구를 대변하는 정당이냐는 것일 텐데요.
“제가 얘기하는 게 바로 그 지점인데 비대위 10년평가위원회는 ‘정의당 도대체 너는 누구냐?’ 이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과정입니다. 지난 10년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이 없었어요. 정의당만이 아니라 민주당도 플랫폼, 프리랜서를 대변하자고 얘기하고 을지로위원회가 열심히 활동을 한단 말이에요. 국민의힘도, 윤석열 정부도, 오세훈 서울시장도 약자와의 동행을 얘기하잖아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 임금을 상승시켜야 된다, 보수도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정의당은 뭐냐? 플랫폼, 프리랜서와 함께한다, 약자들과 함께한다라는 말로 되는 게 아니라는 이 구조를 분석하면서 실질적으로 그걸 푸는 데 집중을 해야 한다는 거죠. 정의당이 그걸 해야 된다는 거죠.”
한석호
-금속연맹 조직실장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진보신당 사무총장
-전태일기념사업재단 사무총장
-정의당 10년 평가위원장(비대위원)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