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바꾸기에 ‘내기’까지…국민정서 충격
상금액수도 ‘시한폭탄’…유임기류 멈칫
상금액수도 ‘시한폭탄’…유임기류 멈칫
이해찬 총리가 정치인생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3·1절이자 철도파업 첫날에 골프를 쳤다는 부적절한 처신으로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접대성 ‘내기골프’를 한 사실까지 10일 추가로 드러나면서 이 총리의 골프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 총리 개인 차원을 넘어 5·31 지방선거를 앞둔 여권 전체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총리에게 닥친 내기골프 파문은 예상외로 심각하게 전개될 소지가 크다. 골프 참석자들의 주장대로 40만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상금이라고 해도, 총리가 기업인들과 내기골프를 한 사실은 국민 정서상 용납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 한나라당은 “사실상의 간접 뇌물”이라며 이 총리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이 총리 자신도 이런 위기상황을 직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총리가 이날 오전 한국노총 60돌 기념식 참석을 행사 시작 1시간 전에 돌연 취소한 것은 그가 깊은 고민에 들어갔음을 잘 드러내준다. 총리실 쪽은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 가운데 대외행사에 총리가 직접 참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 총리가 골프 파문이 불거진 이후에도 의욕적으로 국정을 챙겼던 대목에 비춰 보면 일정 취소가 갖는 상징성은 작지 않다. 내기골프 파문이 불러온 사안의 중대성을 이 총리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총리는 심신이 지친 탓인지 이날 오후 강남구 일원동의 삼성서울병원을 찾기도 했다. 골프 파문 이후 더욱 악화되고 있는 건강 문제도 이 총리의 거취 결정에 중대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총리실은 이날 온종일 술렁거리고 혼란스러웠다. 총리 비서관들과 일부 측근들은 방문을 걸어잠그고 내내 대책회의를 열었다. 일부 핵심 측근들은 ‘내기골프에 대한 총리의 해명은 없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직접 취재해서 쓰라”며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보였다. 총리실은 결국 내기골프에 대한 어떤 입장도 밝히지 못했다. 이번주 초 ‘이 총리 감싸기’에 나섰던 청와대나 여권 핵심부의 기류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 총리 유임 쪽으로 선회하던 기류가 멈칫한 것이다. 청와대로서도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볼 때 이 총리 유임이 자칫 희망사항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골프 파문이 더욱 확산되면서 국가청렴위원회 등 공직기강 감찰 기관들도 사태를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국가청렴위는 이기우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의 3·1절 골프에 대한 신고가 접수됨에 따라 신고 내용을 검토한 뒤 조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검찰도 한나라당이 이 차관을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함에 따라 관련자료 검토에 들어갔다. 이번 내기골프 문제를 두고도 그동안 계속돼온 말바꾸기가 재연됐다. 이기우 차관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내기골프는 없었다”고 잡아뗐고, 다른 골프 참석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런 주장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거짓말 릴레이가 계속됨에 따라 참석자들이 밝힌 상금 액수인 ‘40만원’의 진실 여부도 믿기 어렵게 됐다. 이제 이 총리의 내기골프는 그 파장의 끝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점점 치닫고 있다. 최익림 기자 choi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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