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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국회의원 수’ 늘리면 어떨까요?…대신 세비는 절반으로 깎고요

등록 2023-02-19 07:00수정 2023-02-19 11:44

[한겨레S]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국회의원 정수 어찌할까
2월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403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 투표에 앞서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월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403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 투표에 앞서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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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948년 헌법을 제정할 때부터 총강 맨 앞에 있던 조항입니다. 한번도 뒤로 밀린 적이 없습니다. 1972년 유신헌법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고 개정했다가, 1980년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의 대표가 바로 국회의원입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 바로 국회입니다. 1945년 해방 뒤 3년 동안 미군정이 우리나라를 통치했습니다. 미군정은 1948년 5월10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했습니다. 제주 2명을 제외하고 198명을 뽑았습니다. 제헌국회입니다.

제헌국회는 헌법을 제정했고, 그 헌법에 의해 국회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선출했습니다. 헌법보다도, 대통령보다도 먼저 국회의원과 국회가 존재했습니다.

박정희가 미워했던 ‘국회의원 놈들’

헌법 초안을 작성한 유진오 박사는 애초에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로, 국회를 양원제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욕심이 강했던 이승만 박사의 뜻에 따라 대통령제와 단원제를 채택했습니다. 발췌개헌으로 불리는 1952년 1차 개헌으로 국회는 민의원과 참의원, 양원제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참의원 선거를 하지 않았습니다. 헌법은 미국처럼 부통령이 참의원 의장을 겸하도록 했는데, 자유당 부통령 당선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양원제 국회가 처음 구성된 것은 의원내각제인 제2공화국에서였습니다. 1960년 7월29일 선거에서 민의원 233명, 참의원 58명을 선출했습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부는 국회를 해산시켰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국회의 기능을 대신했습니다.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유신 쿠데타로 또다시 국회를 해산했습니다. 1972년 10월부터 1973년 3월까지 비상국무회의가 국회의 기능을 대신했습니다.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군부도 국회를 해산했습니다. 1980년 10월부터 1981년 4월까지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국회의 기능을 대신했습니다.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이처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은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를 견제하고 탄압했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독재에 저항했습니다.

1978년 12월12일 치러진 10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유신 체제 몰락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의석은 여당이 이겼지만, 득표율은 야당이 이겼습니다. 신민당 득표율이 32.8%로 민주공화당 31.7%를 앞선 것입니다. 여야의 대립이 격화하며 와이에이치 사건,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부마 민주항쟁, 10·26으로 이어졌습니다.

1985년 12대 2·12 총선에서는 전두환 독재에 대한 분노가 김영삼 김대중 양김이 창당한 신민당(신한민주당) 돌풍으로 표출됐습니다. 성난 민심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국회의원과 국회는 국민의 대표와 대표기관으로서 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1948년 200명으로 시작했습니다. 당시 남한 인구가 2천만명 정도였으니 국민 10만명당 한명씩 대표를 뽑은 셈입니다. 헌법은 2공화국 때까지 국회의원 정수를 법률에 위임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 이후 개정된 3공화국 헌법은 “150인 이상 200인 이하의 범위 안에서 법률로 정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 3선을 위한 개헌 때는 “150인 이상 250인 이하”로 조금 늘렸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아마 국회의원이라는 존재 자체가 싫었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의원들을 “의원 놈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마뜩하지 않았던지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유신헌법에서 “조국 통일의 신성한 사명을 가진 국민의 주권적 수임기관”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기구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2천인 이상 5천인 이하의 대의원으로 구성하며, 의장은 대통령 자신이었습니다.

국회는 임기 6년의 국회의원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는 임기 3년의 국회의원으로 구성하도록 했습니다. 국회의원 일부를 사실상 대통령이 지명한 것입니다. 이들은 국회에서 유신정우회(유정회)라는 별도의 원내교섭단체로 활동했습니다. 대한민국 헌정사의 암흑기였습니다.

1980년 5공화국 헌법은 국회의원 정수를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정했고, 1987년 6공화국 헌법에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현재 국회의원 정수는 300명입니다. 제헌국회 때의 인구 10만명당 의원 1명이면 지금 국회의원은 500명이 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늘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국민 여론 때문에 늘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

최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남인순)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회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국회의원 정수 증원에 동의한다는 답변이 29.1%,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57.7%였습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압도적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그토록 오랫동안 국민과 함께 독재에 맞서 싸웠던 국회의원과 국회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이유가 뭘까요? 물론 국회의원과 국회가 정치를 못하고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첫째, 반정치주의입니다. 반정치주의는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재벌, 관료, 검찰 등 비선출 기득권 세력이 만든 이데올로기입니다.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할 수 없으니 정치를 경멸하고 조롱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것입니다. 재벌과 관료에 포획된 보수 언론도 반정치주의 유포에 적극 가세하고 있습니다.

둘째, 정치 양극화입니다. 21세기에 시작된 디지털 혁명, 모바일 혁명으로 유권자들의 확증편향이 심해졌습니다. 유력 정치인과 거대 정당들은 국민통합을 포기하고 “저들을 쓸어내야 우리가 잘살 수 있다”고 증오와 분열의 선거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국회에서 대화와 타협이 사라졌습니다. 죽기 살기로 싸움만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국회를 국민이 좋아할 리 없습니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대화문화아카데미가 ‘2023년, 정치제도 개혁의 우선 과제’라는 제목으로 대화모임을 했습니다. 이홍구, 정세균, 이주영, 김부겸, 윤여준 등 정계 원로들이 정치 개혁과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을 당부하는 자리였습니다. 몇몇 언론이 주로 원로들의 정치 개혁 당위론을 중심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원 정수 확대를 둘러싸고 꽤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대화문화아카데미가 주최한 ‘2023년, 정치제도 개혁의 우선 과제’ 대화모임이 2월14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열렸다. 대화문화아카데미 제공
대화문화아카데미가 주최한 ‘2023년, 정치제도 개혁의 우선 과제’ 대화모임이 2월14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열렸다. 대화문화아카데미 제공

사회를 본 김태일 장안대 총장이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선거법 개정에 여야가 합의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정수 증원이 불가피하다고 본다”며 참석자들에게 의견 개진을 주문했습니다.

정치학자인 강원택 서울대 교수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습니다. 강원택 교수는 지방 소멸의 문제를 정치적 대표성의 보완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례대표 의원을 50명 정도 증원하여 지방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데 활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50명의 추가된 비례의원은 수도권을 제외한 각 지방을 대표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50명만큼의 지역구 의석을 줄인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의원 정수의 확대를 전향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강원택 교수는 비례대표 지역구 중복 입후보 허용, 부분개방형 명부제 도입도 제안했습니다.

박명림 교수는 입법부와 집행부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위해 국회의원 정수 증원과 권한 확대를 오랫동안 주장해온 학자입니다.

“의원 1인당 인구 규모에 비추어 최소한 1948년 건국헌법 수준(인구 10만명당 1인, 515명 수준)이나 오이시디 평균 수준(양원제 국가 평균 438명 수준, 단원제 평균 788명 수준, 오이시디 전체 평균 493명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

“의원 정수의 확대 및 상원의 설치를 위한 국민 동의를 위해 의원 개인 세비와 의원 개인 보좌관을 대폭 감축하고, 의원의 활동과 역할의 의무조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박명림 교수는 의회의 규모가 크고, 비례성이 높으며, 여성 의원 비율이 높을수록 선진 민주복지국가에 근접한다는 수많은 객관적 연구 결과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두 정치학자의 주장에 대해 이기우 전 인하대 교수, 박인제 변호사, 박찬욱 서울대 명예교수 등은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국민 설득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반대 의견을 밝혔습니다.

저도 토론에 참여했습니다. “국회의원 세비를 절반으로 깎고 보좌관을 절반으로 줄이는 조건으로 국회의원 숫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반대 여론은 여야 의원들이 함께 욕먹고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현직 국회의원들이 합의해야 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고 선거법을 개정해야 정치를 개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지 않는 뜨거운 감자’ 국회의원 정수

국회의원 정수 증원은 뜨거운 감자입니다. 정치인들은 조심스럽습니다. 국민은 반대가 많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찬성합니다.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국회 정치개혁특위 선거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국회의원 정수 증원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될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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