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일본 정부의 사과나 전범 가해 기업의 배상 참여가 모두 빠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을 밀어붙인 윤석열 대통령이 3월 도쿄 한-일 정상회담→4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5월 히로시마 한·미·일 정상회의 일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굴욕 외교’ 논란을 뒤로한 채 한-일 관계 개선, 한-미 동맹 강화,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로 달려가는 모양새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 속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에 한국이 급속도로 편입되는 데 대한 우려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7일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정부가 지난 6일 발표한 방안은) 그동안 정부가 피해자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한·일 양국의 공동 이익과 미래 발전에 부합하는 방안을 모색해본 결과”라며 “한-일 간의 미래지향적 협력은 한·일 양국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전체의 자유, 평화, 번영을 지켜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교역 규모가 우리나라 전체 교역 규모의 6~7%를 차지한다는 점, 외국인 직접 투자 가운데 일본 쪽의 투자 규모가 전체의 22%가 넘는다는 점을 언급하며 관계 개선의 경제적 효과를 부각했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이날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오는 16~17일 일본에서 정상회담을 여는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정상은 새로운 한-일 관계 발전 방안을 담은 공동선언을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한-일 관계에서) 과거에 집착하기보다 미래세대를 위해 당당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 두 나라가 세계 번영을 위해 같이 일할 수 있고, 국가와 국민 행복을 위해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점을 밝히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4월26일에는 윤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방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과 국빈만찬을 한다고 대통령실과 백악관이 7일 발표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두 정상은 지난 70년간 축적된 한미동맹의 성과를 축하하고 동맹의 미래 발전 방향에 관해 심도있는 논의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5월에는 다시 기시다 총리의 초청으로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옵서버(참관) 자격으로 참석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를 계기로 한·미·일은 정상회의를 열고 3국 협력 강화를 전세계에 선포하는 장면을 연출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일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해법 발표 뒤 이례적으로 한밤 성명을 내어 “(한-일 새 합의가) 완전히 실현되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라는 공통의 비전을 수호하고 전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적극 반겼다.
한·미·일 정상은 지난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스페인 마드리드와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회담한 바 있다. 특히 3국 정상은 ‘프놈펜 성명’을 내어 “자유롭고 개방되고 포용적이고 안전한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조율해나갈 것”이라며 중국 봉쇄에 목적을 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보조를 맞췄다.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 ‘제3자 변제’안은 이런 한·미·일 협력 강화 흐름 속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정부가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냉전적 구도 속으로 일방적으로 달려드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적으로 인도·태평양에서 줄세우기를 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2층(다른 측면)에선 중국과 대화하려 하고, 러시아와도 길을 모색해보려 하는 등 다른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며 “우리는 일본과 미국의 울타리 안에서 2층으로 가는 사다리를 걷어차버린 채 갑갑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짚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난 10개월간 줄곧 미국·일본만 만나지만 우리 이익을 적극적으로 따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만 돌격대장이 되는 격”이라고 말했다.
한·미·일 협력이 군사동맹 수준까지 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때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문화방송>(MBC) 라디오에서 “결국은 한·미·일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군사적인 영역으로 확실히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