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8일 저녁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한-미 관계와 한·미·일 3각 협력을 강화하는 등 미국 일변도의 ‘가치 외교’를 이어오고 있는 윤석열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주한 중국 대사가 야당 대표를 만나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은 이례적이다. 싱 대사의 발언 수위를 두고 외교적 논란도 예상된다.
싱 대사는 이날 오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로 이재명 대표를 초청해 한-중 관계와 한반도 문제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싱 대사는 “중-한 관계는 외부 요소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우리는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처리할 때 외부 요소의 방해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베팅을 하고 있다.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에 치우친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을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싱 대사는 그러면서 “양국은 ‘역수행주 부진즉퇴’(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는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의 긴박감을 가지고 풍파와 장애를 이겨내며 용감하게 전진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싱 대사는 “한-중 수교 이후에 양국의 국민들 간에 신뢰와 존중이 최근에 많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들이 나오고 있다”는 이 대표의 말에 “솔직히 그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 한국도 중국의 핵심 관심 사항을 존중해줬으면 대단히 고맙겠다”고 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과 관련한 대화도 오갔다. 이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한 대응도 (두 나라가) 가능하면 목소리도 함께 내고, 또 공동의 대응책도 강구해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싱 대사는 “중국과 한국은 일본의 이웃 국가로서,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세계 해양 생태환경 보호를 위해 함께 최선을 다해 오염수 해양 방류를 저지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이 과정에서 싱 대사는 “일본이 경제 등의 이익을 위해 태평양을 자기 집 하수도로 삼고 있다”며 “이것은 지극히 무책임한 행위”라고 일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대표는 대중 무역적자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정착과 관련한 중국 쪽 역할을 당부하기도 했다. 싱 대사는 이 대표의 말에 “중국도 한국의 대중 무역적자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글로벌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반도체 경기가 하강 국면에 들어서는 등의 원인도 있지만, 일각에서 탈중국화 추진을 시도한 것이 더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대중국 협력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고, 중국의 시장과 산업구조 변화에 순응하며 대중 투자 전략을 시기적절하게 조성한다면 중국 경제성장의 보너스를 지속해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만찬 회동은 지난달 주한 중국대사관 쪽에서 민주당 대표실에 제안해 이뤄졌다. 이날 오후 6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만찬에는 북경오리 요리가 올랐고, 반주도 곁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주한 중국대사관은 싱 대사의 발언을 언론에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주한 외국 대사가 국내 정치권 인사와 회동에서 나눈 발언을 언론에 자료로 제공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강재구 기자
j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