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6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 정신’을 자주 입에 올리는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대통령과 통일부의 임무가 뭐라 규정돼 있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윤 대통령이 통일부 장차관과 통일비서관 등 대북·통일정책 관련 주요 3보직을 모두 ‘비통일부 출신’으로 교체하며 “그동안 통일부는 마치 대북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다는 지난 2일 김은혜 홍보수석의 발표를 듣고 든 의문이다.
우선 ‘통일부=북한지원부’라는 윤 대통령의 규정은 사실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식량·비료 등 정부 차원의 대규모 대북 직접 지원은 없었다. 유엔·미국 등의 고강도 대북제재와 북의 거부 탓이다. ‘통일부=북한지원부’라는 주장은 실체 없는 정치적 낙인이다.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북한에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3월28일 국무회의)며 통일부는 대북 지원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윤 대통령의 주문이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문승현 통일부 차관이 3일 취임식 뒤 기자실을 찾아 “통일부가 남북교류 등 타성에 빠져 있었다”며 통일부의 새 역할을 찾겠다고 강조한 것 또한 ‘대통령 따라하기’일 뿐이다.
윤 대통령과 새 통일부 차관의 인식과 달리 “평화적 통일”(헌법 4·66조)을 위한 “남북 대화·교류·협력”(정부조직법 31조)은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대통령과 통일부의 의무·업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평화”라는 말이 싫은 듯하다. 대통령이 “앞으로 통일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헌법 정신에 따라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는 2일 김은혜 수석의 발표는 곱씹어볼 만하다. 실수인지 고의인지 헌법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라는 문구에서 “평화적”이라는 말만 뺐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시기 남북관계를 “가짜 평화”라 비난할 때를 빼고는 ‘평화’를 입에 올리는 일이 거의 없다. 대통령이 엉뚱하게도 국방부나 국가정보원이 아닌 통일부에 “(대북) 대응 심리전”(4월5일 제2차 국정과제점검회의)을 주문한 기괴한 사태도 ‘가짜 평화’ 인식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1969년 3월1일 ‘국토통일원’으로 시작한 통일부의 이름에서 ‘국토’가 왜 떨어져나갔는지 그 역사적, 헌법적 의미를 대통령이 되새겨보기를 권한다. 노태우 정부 시기인 1990년 12월27일 ‘국토통일원’이 ‘통일원’(부총리급 격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휴전선 이북 지역을 ‘미수복지구’로 간주한 ‘국토통일’ 개념에서, ‘평화통일원칙’ 조항(헌법 4조)을 신설한 1987년 헌법 개정과 남북교류협력법 제정(1990년 8월1일) 등의 변화를 반영한 개명이다. 남북관계는 윤 대통령이 말하는 ‘적대 관계’이기만 한 게 아니라 대화하고 협력해야 할 ‘동반자 관계’이기도 하다는 인식의 질적 전환에 따른 것이다. 윤 대통령은 2023년 통일부를 1969년의 국토통일원으로 되돌리려는 시대착오적 지시를 거둬들여야 한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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