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티브이(TV) 수신료(월 2500원)를 전기요금과 분리해서 고지·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재가했다. 이에 따라, 1994년부터 약 30년 동안 유지돼온 전기요금·수신료 통합 징수 방식은 지난달 대통령실이 방송통신위원회에 ‘분리 징수’를 권고한 지 한 달여 만에 속전속결로 폐기됐다. 야당과 언론단체는 “수신료를 무기로 한 공영방송 옥죄기의 현실화”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리투아니아를 방문 중인 윤 대통령은 현지에서 전자결재 방식으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재가했다. 이날 오전 정부가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고 이를 윤 대통령이 즉시 재가함으로써 법적 절차가 마무리됐다. 개정된 시행령은 <한국방송>(KBS)으로부터 수신료 징수 업무를 위탁받은 한국전력이 앞으로 수신료를 납부받을 때 전기요금과 합산 고지·징수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국민이 수신료 납부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게 되고 수신료에 대한 관심과 권리 의식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수신료·전기요금 분리 징수는 대통령실이 지시하고 방통위가 즉시 실행에 나서면서 일사천리로 완성됐다.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누리집에서 한달 동안 벌인 찬반 투표를 근거 삼아 지난달 5일 방통위에 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법령 개정을 권고했다. 이에 방통위는 지난 5일 이를 반영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여당 추천 상임위원 2명(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이상인 상임위원)만 참석한 가운데 의결했다. 윤 대통령이 한상혁 방통위원장 면직에 이어 <한국방송>의 주요 재원까지 손대면서 ‘공영방송 길들이기’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이날 시행령 개정에 ‘윤석열 정권 언론장악 저지 야 4당 공동대책위원회’는 성명을 내어 “민주화 이래 이렇게 노골적으로 언론장악을 시도한 정권은 없었다”며 “용산 대통령실이 주도하고, 독립성을 내팽개친 방통위가 들러리를 섰다. 내용적 합리성도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한 ‘위법한 개정’”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고 “티브이 수신료를 내야 하는 국민의 불편이 커지고, 법에 따른 납부 의무를 위반하는 국민을 늘리는 나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기자협회 등 6개 현업 언론인 단체와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7개 시민단체도 기자회견을 열어, 시행령 개정을 통한 수신료 분리 징수를 “방송법이 규정한 국회의 권한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폭거”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시민·노동자·학계·공영방송이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공영방송 공적재원의 독립성과 안정성을 보장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신료 분리 징수에 따라 예상되는 징수율 저하로 직격탄을 맞게 된 <한국방송>은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시행령 개정 사유로 ‘국민 불편 해소와 선택권 보장’을 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한국방송> 주장이다. 전날 김의철 사장도 임직원을 대상으로 입장을 내어 수신료 분리 징수 현실화와 관련해 비상경영 선포와 법률 대응 등 방침을 전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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