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서울 마포구 정치학교 ‘반전’에서 1기 수강생들이 강의 중 토론을 하고 있다. 정치학교 반전 제공
‘청년 정치’를 외치는 목소리는 선거철만 되면 되풀이된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 비율이 20~30대에서 가장 높고, 취업·주거·결혼·육아 등 청년 문제가 한국 사회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청년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권의 구애가 뜨거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이런 목소리는 금세 잦아든다. 청년 정치인에게 집중되던 스포트라이트도 이내 자취를 감춘다.
‘언제까지 청년 정치가 기성 정치의 선거철 동원 대상으로 반짝 소비돼야 하는가.’ 한겨레가 지난달 25~26일 만난, 청년 정치인 4명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이렇게 압축된다. 이들은 초당적 정치학교 ‘반전’의 1기 수료생으로 신정현(41) 전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정은(36) 정의당 광주광역시당 위원장, 이가현(30)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 그리고 이름을 밝히길 꺼린 국민의힘 정치인 ㄱ(32)씨다. ‘반전’은 김성식 전 국민의당 의원이 꾸리고, 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이 멘토로 참여한 정치학교로 1기 수료생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5월까지 6개월 동안 매주 주말에 모여 정치 현안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해왔다. 기성 정당 또는 그 외곽에서 저마다의 정치를 이어가는 이들 청년 정치인 4명은 한국 정치의 ‘청년 활용법’이 체계도, 목적도 없이 외양만 갖춘 꼴이라고 지적했다.
문정은 정의당 광주광역시당 위원장은 “한국 사회에서 청년 정치는 중년 정치의 주름살을 가리는 비비크림 식으로 생색내기 수준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각 정당이 선거철에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청년 정치를 호명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이내 관심에서 지운다는 취지다.
육성 시스템 부재…“정당 아카데미서 남는 건 사진뿐”
특히, 이들은 정당 내 청년 정치인 육성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을 한국 정치의 한계로 지목했다. 신정현 전 경기도의회 민주당 의원은 “정치 아카데미 같은 것이 있지만, 유명 강사를 불러서 특강을 듣는 수준”이라며 “청년 정치인 육성 시스템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강이 일회성인데다 강의 내용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등 거대 양당은 간혹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청년 당원이나 신참 정치인들을 상대로 강연을 여는데, 보통 전·현직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 ‘성공한 선배’ 정치인들이 강연자로 등장한다. 이들은 소속 정당·정부의 정책을 홍보하거나, 자신의 정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수강자들에게 남는 건 유명 강연자들과 찍은 ‘사진 한장’뿐, 소속 당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토론하거나 입법 정책적으로 필요한 ‘실무 스킬’을 쌓기는 어렵다는 게 청년 정치인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신 전 의원은 “전직 국회의원이나 전직 장관을 만나봐야, 그들이 성장했던 정치적 배경과 토양이 지금과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이런 아카데미는 공부하는 자리라기보다는 ‘정당 부흥회’에 가깝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벤트식 공천·발탁 정치…“의미 있지만 한계 분명”
육성 시스템 부재는 결국 정치권이 이벤트성 공천·발탁 정치 등에 의존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당 안에서 체계적으로 훈련된 청년 정치인을 찾기 힘들다 보니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정치 신인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깜짝쇼’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2012년 ‘슈퍼스타 케이(K)’ 방식을 도입한 민주당 청년비례대표 선출부터 이어진 오디션형 공천이나, 이준석·박지현 등 청년 정치인을 비상대책위원이나 비상대책위원장 등 당 지도부에 꽂아넣는 ‘발탁 정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이런 방식의 공천이나 발탁의 순기능도 있다는 것이 청년 정치인들의 견해다. 국민의힘 정치인 ㄱ씨는 “비주류 청년 정치인들이 기존 정치권 인맥이나 사회적 배경 없이도 정치권에 진출할 수 있는 유력한 통로라는 점에서, 오디션이나 공개경쟁 시험 같은 발탁 정치의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성 정치가 이런 비일상적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럴수록 당내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온 청년 정치인들이 설 자리는 좁아진다. 문정은 위원장은 “기존에 당에서 헌신해온 청년 정치인들이 그만큼의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 상황에서, 선거를 앞두고 깜짝 발탁된 정치인들만 주목받게 되는 점에서 부작용도 크다”고 했다.
발탁된 청년 정치인이 선거용으로 한번 소비되고 방기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가현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는 “지지 기반이나 조직 없이 갑자기 발탁된 정치인이 의미 있는 권력을 잡기 힘들다”며 “현재 거대 양당의 발탁 정치는 청년들의 상징성을 헐값에 사들이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이 함께 실력을 기르고 의제를 만들어나갈 터전이 부족하다 보니, 기성 정치의 ‘줄 세우기’에 취약해지고, 선거철에 일회성으로 소모된다는 진단도 있다.
청년 정치를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걸림돌로는 ‘돈’이 꼽힌다. 특히 선거에 출마하려면 반드시 돈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1500만원,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선거에는 각각 300만원·200만원의 기탁금을 내야 한다. 여기에 사무실 임대료, 유세차·선거운동원·선거공보물 비용 등을 포함하면 적어도 수천만원의 돈이 든다는 게 출마자들의 설명이다. 15% 이상 득표하면 전액을, 10% 이상 득표하면 반액을 보전받을 수 있지만, 기성 정치인에 견줘 당내 기반이나 조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청년 후보들에게는 이 기준은 진입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년 정치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작동한다. ㄱ씨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부모 찬스’를 동원해 유세차를 빌린 재력가의 아들은 구의원으로 당선되고, 자전거를 타고 선거 유세를 했던 청년 후보가 낙선하는 사례를 목격했다고 했다. ㄱ씨는 “‘엄카 정치’(부모가 돈을 대는 정치)라는 말이 우스개 같지만, 진짜로 여의도에서는 존재하는 청년 정치 형태”라며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청년 후보들의 공천 기탁금을 절반으로 줄이는 시도를 했는데, 평이 좋았다. ‘공정한 기회 보장’ 차원에서 청년 출마자들의 제반 비용을 줄이는 지원들이 확대됐으면 한다”고 했다.
정당 설립 요건을 완화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청년 정치인들이 기성 정치의 틀을 넘어 다양한 의제를 가진 정당을 직접 꾸릴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는 취지다. 이가현 공동대표는 서울을 포함한 5개 이상의 광역자치단체에 시도당을 두고, 시도당마다 각각 1천명 이상의 당원을 모아야 정당 창당이 가능하도록 한 정당법이 청년 정치를 옥죄고 있다고 했다. 그는 “청년 정치인들이 이런 기준에 맞춰 정당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며 “청년들이 중앙 권력에 줄 서는 정치가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부터 바꾸는 실용 정치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핵심은 청년들이 ‘일상의 정치’를 이어갈 수 있도록 기성 정치가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점이다. 선거 비수기에도 경쟁력 있는 청년 정치인들의 ‘인력 풀’이 마련되어 있어야, 선거철을 코앞에 두고 외부에서 정치 경험 없는 청년들을 ‘수혈’하는 방식을 탈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정은 위원장은 “청년 정치인이 아무런 준비 없이 선거철에 갑자기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구조를 깨야 한다”며 “예비 정치인이 선거 전부터 당과 함께 정책을 개발하고 그 정책으로 지지자 기반을 넓혀나가면서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특히 ‘당내 청년 조직’이 ‘당 지도부의 들러리’ 구실에 그치지 않도록 독립적인 청년 정치인 조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2021년 기존의 청년위원회를 개편해 ‘당내 당’ 성격의 전국청년당을 출범시켰고 같은 해 정의당도 ‘청년정의당’을 만들었지만, 애초 목표로 했던 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 당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국민의힘 역시 2020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당내 청년당을 표방하며 ‘청년의힘’을 출범시켰지만, 이후 흐지부지됐다. 신정현 전 의원은 “현재 당내 청년 조직들의 유능함은 공천에서 비례 몫이나 전략 지역을 ‘어느 정도 할당받아 오는지’에 달려 있다”며 “기본적으로 당내 청년 조직은 당내 기득권의 ‘줄 세우기’에 취약한 구조다. 이런 구조를 깨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청년 정치가 제 기능을 하려면 정치권에 청년들이 적어도 인구 비례에 맞는 ‘집단’을 형성해야 한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국회에 입성한 극소수 청년들이 유의미한 집단을 이루지 못한 채 정치권 주변부를 겉돌고, 이들의 실패가 청년 정치 전체의 실패로 ‘과다 대표’ 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ㄱ씨는 “인구에서 청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30%에 이르는데, 우리 국회에서 청년은 3.6%에 불과하다”며 “중장년층이 과잉 대표 된 정치 구조를 깨야 정치 변화는 물론 삶의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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