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진 진보정부에서 안보 성적도, 경제 성적도 월등히 좋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안보는 보수정부가 잘한다’, ‘경제는 보수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평화의 힘, 평화의 길”이라는 주제로 열린 ‘9·19평양공동선언 5돌 기념식’에 참석해서 한 ‘인사말’의 마무리 발언이다. “조작된 신화에서 벗어날 때”라는 이 호소는,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마을에 칩거하던 문 전 대통령이 왜 2022년 5월 퇴임 뒤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와 공개 연설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를 대변한다.
문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시기의 경제 성적이 그렇지 않았던 시기보다 항상 좋았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이어달리기가 중단됐던 정부 기간에는 국민소득이 정체되거나 심지어 줄어들었다”고 했다. 그는 또한 “문재인 정부는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지금보다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그 근거로 구체적인 수치를 들었다. 이런 식이다. “지디피(GDP·국내총생산)가 세계 10위권 안으로 진입한 시기는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때뿐이다. 지난해 우리 경제 규모는 세계 13위를 기록해 10위권에서 밀려났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1년에 1인당 국민소득은 3만5천불을 넘었는데, 지난해 3만2천불대로 국민소득이 떨어졌다. 환율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환율이 높아졌다는 것 자체가 우리 경제에 대한 평가가 그만큼 나빠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발언은 “(집권해보니) 나라가 정말 거덜이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며 일쑤로 ‘전임 정부 탓’을 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작심 비판인 셈이다.
문 전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이날 오후 5시께 행사장인 63빌딩 그랜드볼룸에 들어섰다. 공동준비위원장인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의 안내를 받으며 문 전 대통령 부부가 입장하자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희상 전 국회의장, 박광온 원내대표 등이 참석했고, 강기정(광주)·김동연(경기)·김영록(전남)·오영훈(제주) 등 민주당 소속 광역지자체장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도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힘이나 정부 고위 인사는 참석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열린 ‘9·19평양공동선언 5돌 기념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임동원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역사적인 긴 안목으로 볼 때, 지금 잠시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역행하고 있으나 오래지 않아 다시 5대 남북합의들(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 4·27판문점선언, 9·19평양공동선언)이 실천에 옮겨질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듯, “평화와 남북 화해 협력 노력을 통해 미-북 적대관계 해소와 비핵화를 견인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도 “수구냉전론자에게 한마디 고언을 하고자 한다”며 “북한 체제를 강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인도주의 정책이나 평화지향적 접근이 아니라, 증오에 찬 냉전적 강경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했다.
한편,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어 “지금 우리 현실은 북-러 회담으로 사실상 군사협력까지 이어지며 급변하는 정세 속에 한반도를 넘어 전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문 전 대통령이 말하는 ‘경제’는 ‘북한의 경제’를 말하는 것인가. ‘평화가 곧 경제’라는 발언에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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