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대통령실사진기자단·공동취재사진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정국 반전의 기회를 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추석 연휴 윤석열 대통령에게 일대일 방식의 ‘민생 회담’을 거듭 제안하고 나섰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반응 없이 ‘만남 불가’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이 대표 관련 재판 결과가 내년 4월 총선 전까지 나오기 어려운 만큼 두 사람의 만남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3일 이 대표의 일대일 회동 제안에 대해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조건 없이 만나 민생과 국정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은 신속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소한 12월 정기국회 때까지 정쟁을 멈추고 민생 해결에 몰두하자”며 일대일 회동을 제안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일대일로 만나는 것은 과거 여당 총재가 대통령이었을 때나 있던 일’이라며 지난해부터 이어진 이 대표의 일대일 회동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대통령실 내부는 ‘잠재적 범죄자인 이 대표를 만날 수 없다’는 기류가 강하다. 윤 대통령은 24일 동안 이어진 이 대표의 단식 기간에도 직접 그를 만나거나 단식 관련 언급을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실과 보조를 맞췄다. 김기현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이 대표가 민생을) 국회에서 얘기를 안 하고, 어디 엉뚱한 번지에 가서 얘기하시냐. 연목구어다”라며 여야 당대표 회동을 역제안했다.
윤 대통령을 향한 회동 제안은 지난달 27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이 대표가 처음 내놓은 ‘공식 메시지’다. 이 대표의 한 측근은 “윤 대통령이 응할 걸 기대하고 내놓은 제안이라기보단 민심을 고려해 지금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대표의 제안은 21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대여 투쟁 동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최후통첩 성격도 짙다. 이 대표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한 윤 대통령 사과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파면을 요구한 민주당은 연말까지 반격 수위를 높여갈 공산이 크다.
이 대표와 가까운 민주당 의원은 “지역 주민들을 만나보면, 핵심 지지층 외에 중도 성향 유권자들에게서도 ‘먹고살기 어려운데 대통령이 정적 죽이기만 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여권에 국정 기조를 전환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 건데 민생에 대한 고민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회동은 지난해 8월 이 대표가 당대표에 당선된 이후 단 한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이 대표 관련 재판 결과가 이른 시일 안에 나올 가능성도 작아, 사실상 내년 총선 전까지 두 사람의 회동은 어려워 보인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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