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는 윤동주, 윤 대통령은 셰익스피어 시로 건배사

왕실 마차 타고 버킹엄궁 가서 만찬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21일(현지시각) 런던 버킹엄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앞서 찰스 3세 영국 국왕, 커밀라 왕비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나의 아름다운 친구여, 그대는 영원히 늙지 않으리라(To me, fair friend, the United Kingdom, you never can be old)”

영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저녁 찰스 3세 국왕이 주최한 런던 버킹엄궁 국빈 만찬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정형시) 104를 원용해 이렇게 건배사를 하자, 참석자들이 모두 잔을 들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만찬사에서 “한국과 영국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를 나눈 혈맹의 동지”라며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함께 하지 못할 일이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1950년 우리가 공산 침략을 받아 국운이 백척간두에 섰을 때 약 8만1천여명의 영국 병사들이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다. 오늘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헌화하고, 영국 참전용사들과 만나면서 양국의 우정이 피로 맺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새겼다”고 참전용사들을 추어올렸다.

윤 대통령은 아울러 “저는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비틀스와 퀸, 그리고 엘튼 존에 열광했다. 최근에는 한국의 비티에스(BTS), 블랙핑크가 영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에 앞서 찰스 3세는 영어로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While the wind keeps blowing, My feet stand upon a rock. While the river keeps flowing, My feet stand upon a hill)”는 윤동주 시인의 ‘바람이 불어’ 한 구절을 낭송하며 윤 대통령을 환영했다. 찰스 3세는 “한국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빠른 변화를 겪고 있는 그 와중에도 자아감을 보존하고 있음은 한국의 해방 직전에 불행히도 작고하신 시인 윤동주가 예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시를 인용한 배경을 이야기했다.

찰스 3세는 또 “전후의 참담한 상황을 딛고 일어난 대한민국 국민들은 기적을 이뤘다”,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추진력과 에너지로 끊임없이 달려왔으며 이와 함께 우리 영국인들의 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며 냉장고·스마트폰·반도체 등을 언급했다.

찰스 3세는 “영국에 대니 보일이 있다면 한국에는 봉준호가 있고, 제임스 본드에는 오징어 게임이 있으며, 비틀스의 ‘렛잇비’에는 비티에스의 ‘다이너마이트’가 있다”며 두 나라 문화 발전의 역사도 높이 평가했다.

만찬에는 추경호 부총리, 박진 외교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공식 수행원들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엘지(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기업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윤 대통령의 만찬사에서 호명된 블랙핑크 멤버 4명도 모두 자리했다. 영국에서는 리시 수낵 총리, 윌리엄 왕세자, 데이비드 캐머런 외교장관 등이 자리했다. 이에 앞서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런던 호스가즈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찰스 3세 국왕과 함께 왕실 마차에 올라 버킹엄궁으로 이동했다.

런던/배지현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