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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삼성·SK에 ‘숟가락 얹기’…정경유착의 고차방정식은 [논썰]

등록 2023-12-16 09:00수정 2023-12-17 15:22

[논썰] 윤대통령 재벌들과 ‘파리’ 술자리 네덜란드 한국대사 초치 왜? 한겨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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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논썰의 이재성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13번째로 국외 순방을 다녀왔습니다. 하도 자주 나가니까 올해 13번째로 한국에 방문했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이번 네덜란드 방문 일정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마르크 뤼터 총리와의 정상회담, 반도체장비 회사 ASML, 그리고 이준 열사 박물관 방문입니다. 그런데 마르크 뤼터 총리는 지난 7월 정계은퇴를 선언했습니다. 11월 조기총선을 해서 지금 차기 내각을 구성 중입니다. 과도내각이라는 말입니다. 과도내각과의 정상회담이라니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차기 정부가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회담입니다. 이런 회담을 왜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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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외유 과도하게 포장

뒤집어서 생각해보죠. 과도내각과 해도 되는 정상회담이라면, 양국 정상이 만나서 해결해야 할 특별한 외교 현안이 없는 겁니다. 네덜란드에 꼭 가야 할 이유는 없지만, 가야겠다는 결정이 먼저 내려졌고, 그 결정에 따라 일정이 짜였다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그래서 눈에 띄는 일정이 ASML입니다. ASML(Advanced Semiconductor Materials Lithography)은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회사인데요. 윤 대통령은 ASML 본사를 방문해서 종이 방명록 대신 반도체 웨이퍼에 서명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이 회사 클린룸에 정상이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뭔가 사진이 잘 나오는, 기사에 양념이 되는 소재를 만들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클린룸에 정상이 방문한 것만 처음이 아니라 반도체 웨이퍼에 서명한 정상도 처음일 겁니다. 이런 식으로 억지 명분을 만들어서 외국을 방문하는 정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무리하게 의전을 요구했는지 네덜란드 정부가 주네덜란드 한국대사를 초치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국빈방문을 앞두고 해당국 대사를 불러 항의하는 광경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난생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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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대통령실은 이번 순방의 목적이 “반도체 동맹”이라고 거듭 강조했는데요. 뤼터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도 “반도체 동맹”이 포함됐습니다. 반도체 동맹이 명문화된 것도 세계 최초라고 대통령실은 자랑했습니다.

동맹은 다른 나라를 배제하는 배타적인 성격이 강한 정치적인 개념인데요. 네덜란드 ASML은 한국 기업 말고도 대만의 TSMC나 미국의 인텔 등에도 장비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입니다. 또한 미국의 첨단 반도체 대중 수출 금지 방침에 네덜란드 정부와 에이에스엠엘도 동참하고 있으므로 한국 정부가 나서서 새삼 강화할 필요도, 그럴 수도 없는 ‘반도체 동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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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교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과 교수: 그러니까 이렇게 자꾸 말로 이렇게 뭔가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라는 걸 보이는데 이렇게 말만 하면 결국은 실질적인 손실은 계속 쌓이는 겁니다.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 원장: 가장 중요한 거는 이게 지금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이 아예 중국을 지금 배제시키기 때문에. 실제로는 우리가 유리하거든요. 네덜란드보다. 물론 이 네덜란드 이 회사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지만 지금은 소위 말하는 셀러 마켓이 아니라 바이러 마켓이거든요.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삼성·SK 성과에 숟가락 얹기

윤 대통령이 처음 들어갔다는 ASML 클린룸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2022년)와 2020년, 두 차례나 다녀왔습니다. 삼성전자는 대만의 TSMC에 이어 ASML이 만든 장비를 가장 많이 사들이는 큰손입니다. 두 회사의 관계가 긴밀하고 각별한 것은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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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ASML이 맺었다는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 연구·개발(R&D)센터 설립’ 양해각서(MOU)도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가 아니라 두 기업이 필요해서 검토하는 수준이라고 봐야 합니다. 특히 ASML은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이 중단된 상황에서 세계 메모리반도체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는 한국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성도 ASML이 필요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7나노 공정에 세계 최초로 EUV 장비를 활용하는데 성공한 바 있습니다. 2020년에는 업계 최초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도 EUV 공정을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회사가 공동 R&D 센터를 만든다는 건 그동안 쌓아온 삼성의 노하우를 ASML과 일정 부분 공유한다는 겁니다. 삼성의 기술이 다른 경쟁사로 흘러들어갈 위험을 감수하면서 공동 R&D 센터를 만들 만큼 차세대 기술 개발이 급하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식의 투자는 기업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지, 정상들이 하라마라 할 사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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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삼성전자가 여태까지 노력을 들였던 거에 현 정권이 올라타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ASML이라는 기업 굉장히 유명한 기업이고요. 코로나 전에 삼성전자가 네덜란드 가서 공을 들인다는 기사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왔어요. (신장식의 뉴스하이킥)

ASML은 대만에 R&D 센터와 함께 생산공장을 설립하기로 하고 1조2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지난해 밝힌 바 있습니다. 삼성과 이번에 맺은 계약은 구속력이 없는 엠오유 단계인데다, R&D 센터만 검토한다는 것인데, 대만에는 생산공장 건설까지 투자 계획을 직접 밝힌 것입니다. 삼성보다도 큰손인 TSMC가 있는 대만이 아시아의 거점이라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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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경유착의 싹이 자라고 있다

대통령이 기업에 도움을 주려고 순방을 기획했다기보다는 순방을 하려고 반도체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건 그래서입니다.

부산 엑스포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의문이 생깁니다. 지난해 7월 이전까지 개최지 부산시조차 담당 조직이 1개 팀에 불과할 정도로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는데, 윤석열 정부가 왜 갑자기 국가적 역량을 쏟아 넣도록 앞장섰느냐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순방을 위한 기획이었다고 의심하기엔 규모가 너무 커서 감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대체 왜, 사우디 리야드가 유력하다는 숱한 외신들의 보도를 무시하면서, 심지어 자신들까지 속여가면서 ‘난리 블루스’를 추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괴이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윤석열 정부지만, 재벌 회장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부산 어묵을 시식하는 사진은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엑스포 유치 실패로 부산 총선 민심이 흉흉해지자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사과를 하고 재벌 회장들까지 동원한 겁니다. 사실상 국내 정치에 재벌을 이용한 것입니다. 새로운 정경유착의 싹이 자라고 있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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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과 재벌 회장들이 술자리를 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엑스포 유치전이 한창이던 지난달 프랑스 파리의 고급 한식당에서 대통령실의 요청으로 비공개 만찬이 이뤄졌다는 겁니다. 일분일초가 아깝다던 대통령실이 금도를 넘은 것입니다.

특히 이재용 회장은 올 한해 윤석열 대통령의 국외 순방에 동행한 횟수가 7차례나 됩니다.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엘지(LG) 회장은 각각 6차례, 신동빈 롯데 회장은 4차례 동행했습니다. 재벌 총수들이 대통령의 국외 일정에 이렇게 자주 동행하는 현상은 처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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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회장이 “이재용”을 연호하는 시민들에게 검지를 입에 대고 ‘쉿’하는 몸짓을 취하는 모습은 윤 대통령과 재벌 회장들의 관계를 짐작하게 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이 회장으로선 윤 대통령이 본인의 죄를 사면해줬고, 막대한 세금도 깎아주는 은인이므로 부르면 꼼짝없이 달려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른 재벌 회장들도 민주화 이후 가장 강력하게 검찰권을 틀어쥐고 있는 대통령이니 무서울 수밖에 없죠. 윤 정부 들어 카카오 같은 신흥재벌은 털어도 10대 재벌 수사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재벌 회장들로선 협조하는 대신 안전이 보장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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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시절 유흥주점에서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대기업 회장에게 구두에 폭탄주를 따라 주었다는 윤 대통령이니 그 아들뻘인 지금 회장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요. 재벌을 습관적으로 동원하는 행태 자체가 윤 대통령이 강조해 마지않는 자유시장경제를 침해하는 것임을 직언할 사람이 지금 윤 대통령 주변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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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 뜬금없는 “개 식용 종식” 발언

대신 윤 대통령 곁에는 김건희 여사가 있습니다. 김 여사는 올해 윤 대통령의 13차례 국외 순방 중 지난 8월 미국 워싱턴 한·미·일 정상회의만 빼고 12차례 15개국에 동행했습니다. 순방 예산을 늘려가면서까지 G7 정상회의나 나토 정상회의, 영국 여왕 장례식 등에 대통령 부인이 굳이 참석해야 하는 이유를 알기 어렵습니다. 용산 대통령실이 공개하는 순방 사진도 대통령보다 부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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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은 14일 김건희 여사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동물보호재단을 방문한 사실을 공개했는데요. 김 여사는 이 자리에서 “여야가 함께 개 식용 종식을 위해 발의한 특별법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뜬금없기 짝이 없습니다. 대통령 부인이 네덜란드까지 가서 해야 할 발언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현안을 논의하는 실무 방문보다 폼 나는 국빈 방문을 선호하고, 나갈 때마다 부인을 동행하는 건 후진국 모델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8년 재임하면서 52차례 국외 순방을 다녔는데, 부인 미셸 오바마는 절반 수준인 22차례만 동행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도 비슷합니다. 바이든 재임 첫 2년간 퍼스트레이디의 해외 방문국은 10개국입니다.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부인은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전직 고위급 외교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통령이 되면 외국 방문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에서 환대를 받으니까 대통령이나 부인이나 자꾸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외교 참모들도 여기 맞춰 순방 일정을 짜서 대통령과 부인의 눈에 들려고 한다. 뜬금없는 네덜란드 한 나라 국빈 방문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박찬수 ‘한겨레’ 대기자 칼럼 ‘악몽이 돼버린 김건희 여사의 국빈 방문’)

정치군인과 정치검사의 차이

영화 ‘서울의 봄’의 정치군인들을 보면서 윤석열 사단의 정치검사들을 떠올렸다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새삼 생각나는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임시 대통령 최규하가 포기를 선언했던 올림픽 유치 카드를 되살려, 공식 신청한 지 불과 4개월 만인 1981년 9월 목적을 이뤘습니다. 같은 처지인 제3세계의 동정표를 얻었고, 이미 올림픽 개최 경험이 있는 경쟁자 일본의 경제력이 더 강해질 것을 우려한 미국과 영국조차도 솔깃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반해 윤석열 정부는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서 재벌과 한류에 기대어 졸부 행세를 했고, 이념적 편향 외교로 말미암아 중국의 영향력이 큰 남미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지지를 잃었습니다. 전두환 군사정부보다도 무능하고, 안이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툭하면 재벌과 케이팝에 손을 벌리는 ‘각설이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과거의 성취를 곶감 빼듯 따먹기 바쁜 사이, 잠재성장률과 출생률을 비롯한 모든 지표는 우리가 정점을 통과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관심이 없습니다. ‘한 달에 한번 외유’와 ‘대통령 놀이’로 흥청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논썰이었습니다.

기획·출연 이재성 논설위원 san@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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