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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노무현 대통령 봄맞이 산행 “상생, 우리 마음 속 준비 안돼”

등록 2005-03-27 20:38수정 2005-03-27 20:38

대일 원칙외교 강조…수도분할론 비판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출입기자들과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으로 봄맞이 등산을 했다. 탄핵 기간 중이던 지난해 4월11일의 춘계산행 이후 1년 만이다.

이날 등반에서 노 대통령이 꺼낸 화두는 ‘원칙있는 외교’ 였다. 그는 한-일 관계를 언급하면서, “한반도 미래를 보면 동북아 평화구도가 가장 중요하다”며 “(양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평화를 위한 조건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장의) 외교적 성과보다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과 해결책이 뭔지 고민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그 과정을 잘 관리하며 자각이 생기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 “진실하고 책임있게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그 결과를 상대방이 예측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정치, 외교에서 모두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밝힌 대일 초강경 기조와는 달리, 원칙있는 대응을 강조한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날 한-일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열겠다고 말한 것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발언에 대한 ‘화답’의 성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할 말은 하되, 교류는 계속한다’는 원칙에 입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일 초강경 기조의 글을 발표한 지 불과 나흘만에 이렇게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는 그간에 무언가 ‘사정변경’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행정복합도시 건설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략 없이 서울과 수도권을 그대로 가만두면 어떻게 되겠느냐. 시뮬레이션이라도 해보고 싶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는 ‘수도분할론’을 펴며 반발하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 등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으로 해석된다. 그는 ‘재임중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모두가 상생 얘기를 하는데 그 상생의 기반이 우리들 마음속에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산행은 청와대 관저 뒤 쉼터인 백악정을 출발해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가끔 찾았다는 ‘만세동방 약수터’를 지나, 서울의 북대문인 ‘숙정문’에 이르기까지 2시간30여분 동안 진행됐다. 지난해 산행 때 탄핵으로 인한 답답함을 ‘춘래불사춘(봄은 왔지만 봄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이라는 말로 표현했던 노 대통령은 이날 산행에서는 “올해는 꽃이 좀 늦게 피는 것 같다. 은유적으로 표현할 사건은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노 대통령은 산행 도중 “옛날엔 여기가 다 사람이 다니던 길이고, 오솔길이 많이 있었다지만 1·21 사태 때 봉쇄된 이래 지금까지 개방이 안 되고 있다”며 “서울시민들이 봐야 하는데, 못보고 사는 게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청와대 관저 터에 ‘천하제일복지’란 글이 새겨져 있다고 소개하면서,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지금 지내는 곳이 천하제일이겠지만,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궁궐의 암투, 모해, 음모가 들끓는 곳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백기철 기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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