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법조항 자의적 확대해석…법에 없는 일”
청와대는 “유익한 활동”…국정원 “부패척결도 안보”
청와대는 “유익한 활동”…국정원 “부패척결도 안보”
국정원이 부패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는 적법한 것인가.
청와대와 국정원은 법률적 근거를 갖춘 정당한 직무 수행이라서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내어 “정부조직법 제16조와 국가정보원법 제3조, 국가안전보장회의법 제10조에 근거해 이같은 업무를 해왔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국정원이 부패 정보를 수집해 수사기관에 넘기는 행위는 정당하고 유익한 활동”(16일 대변인 논평)이라고 국정원 입장을 옹호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열거한 관련 법률에서는, 명시적인 조항을 찾기 어렵다. 국정원 설치 근거인 정부조직법 제16조는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보안 및 범죄수사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 하에 국가정보원을 둔다”면서 “조직·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고 세부 규정을 국가정보원법에 ‘위임’했다.
국정원 설치·운영의 직접적 근거인 국가정보원법은 제3조에서 ‘직무범위’를 “국외 정보와 국내 보안정보(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국가안전보장회의법은 국가정보원장이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된 국내외 정보를 수집·평가하여 이를 회의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을 뿐 부패관련 정보 수집을 허용하는 내용이 없다.
법적 근거가 취약한 점을 의식한 때문인지 국정원은 ‘안보’ 개념을 넓혀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지난 16일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국정원은 국가안보라는 개념을 합목적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국익 증진이 안보에 도움이 되고 부패는 국익 증진에 반하는 개념이므로 부패척결 태스크포스가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패척결=국익증진=국가안보’이기 때문에 법에 명시돼 있지 않더라도 부패척결은 국정원의 고유 업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설명을 ‘아전인수’라며 경계했다. 국회 정보위원을 지낸 임종인 의원은 “부패 관련 정보 수집은 국정원이 아니라 해당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검찰과 경찰의 몫”이라며 “부패 수사권도 없는 국정원이 부패척결 티에프를 설치·운영한 것은 법에 없는 일,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천 의원도 “부패척결 티에프는 국가안보 개념을 아전인수격으로 확대 해석한 것”이라며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안보 개념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익명 보도를 요청한 대검찰청의 한 간부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 청와대가 검찰 등 수사기관에 내려보낸 이른바 ‘하명사건’은 국정원에서 생산된 정보가 대부분이었다”면서, 이번 논란을 보며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안보 문제 전문가인 민병설 교수(세경대)는 “국가정보기관의 목표와 활동 범위를 우리나라처럼 권력의 자의적·관행적 해석에 맡겨놓고 있는 나라는 없다”면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엄격히 구분하고, 세밀하게 입법하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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