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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통합신당 ‘경선 삼국지’ 달구는 3색 리더십

등록 2007-09-27 11:54

2200년전, 천하를 건 4년 전쟁이 중원을 뒤흔들고 있었다. 장기의 원형이 된 초한쟁패다. 초반 전세는 항우가 유방을 압도했다. 용기와 힘, 재능과 판단력에서 유방은 항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4년 뒤, 결말은 달랐다.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린 항우는 자결을 택했고, 유방은 한 왕조를 열었다. 이 ‘대역전 드라마’를 가능케 한 것은 무엇일까. 일본의 작가 시바 료타로는 인재를 품을 줄 아는 유방과, 인재를 거느리지 못한 항우의 리더십 차이에서 운명을 가른 기준선을 찾아냈다.

대권을 얻게도, 놓치게도 하는 정치인의 리더십.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에서 ‘경선 삼국지’를 써내려 가고 있는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후보는 어떤 리더십을 갖추고 있을까. 선거 캠프 사람들이 말하는 세 사람의 리더십은 생김새만큼이나 제각각이다.

손학규 ‘수처작주형’
스킨십 강하나 중요한 결정은 혼자서

손학규 후보를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본 참모들은 그 리더십 스타일을 “수처작주형”(이수원 텔레비전토론 대책실장)이라고 간추렸다. 수처작주(隨處作主)란 불교 임제종을 연 임제 스님(?~867)의 글에서 따온 구절로, “어디에서든 주인이 되라”는 뜻이다. 손 캠프에서는 이 말을 ‘일은 과감하게 맡기지만, 검증은 철저히 한다’는 뜻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손 후보는 정이 많다. ‘스킨십’에도 강하다. 그러나 일처리에서는 맵고 짜다. 연설문은 써준 그대로 읽지 않는다. 중요한 보고는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 캠프 안에서 “(후보가) 가까운 듯 하지만 실제로는 멀게 느껴진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스타일 탓이 크다. 지난 8월29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손 후보는 이날 오전 9시30분 텔레비전 생방송 대담이 잡혀 있는데도 새벽 2시30분까지 업무 보고를 받았다. “그날 손 후보에게 꾸지람을 들은 사람이 여럿”이라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중시한다. 그 부작용으로 주변에 ‘예스맨’이 많다는 얘기가 있다. 중요한 결단은 혼자서 내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 3월 한나라당 탈당, 지난 6월 범여권 합류는 물론 지난 21일 칩거 이후 경선복귀 결정도 스스로 내렸다. 캠프 대변인인 우상호 의원조차 “(경선본부 해체 발표에 대해) 망치로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특히 옛 열린우리당 출신 캠프 의원들은 한나라당에서 정치를 배운 손 후보의 스타일을 잘 몰라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정동영 ‘청취형 리더십’
장고뒤 결단…때론 중요한 시기 놓쳐

정동영 후보의 캠프는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크다. 정동영 후보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고 할 수 있는 박영선·김현미 두 여성 의원과, 굽힐 줄 모르는 정청래 의원 등 자기 주장이 강한 참모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캠프의 이런 성격은 정 후보 자신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정 후보는 많이 듣는다. 최근 토론회에서는 ‘굿 리스너(잘 듣는 사람)’ ‘그레이트 리스너(위대한 청취자)’를 자처하며 “스폰지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캠프에서는 ‘청취형 리더십’이라고 아예 이름까지 지었다. 한 참모는 “속으로 고민이 많아도 일단 들어주는 스타일”이라며 “눈가에 주름이 많은 것도 다 그런 까닭”이라고 나름의 주석을 달았다. 정 후보는 상반되는 의견을 펴는 양쪽의 주장을 모두 들어보고, 마지막에 가서 자신이 판단하는 형이다. 그러니 참모들과 사이는 둥글둥글하다.

정 후보는 여린 성격의 소유자다. 여간해서 화를 내지 않는다. 대신 속으로 삭히는 스타일이다. 최근 상대 후보 진영으로 간 옛 계파 의원의 책에 두말 없이 축사를 써준 게 좋은 사례다. 그렇다고 ‘황희 정승과’는 아니다. 결기도 있다. 옛 민주당 시절 서슬퍼런 ‘권부’(권노갑 부총재)에 맞서 당 정풍운동의 깃발을 든 것도 정 후보였다.

그러나 결단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무르다는 평가가 늘 따라다닌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캠프 인사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결단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해찬 ‘원칙중시형’
참모들에 신뢰감…의견충돌땐 무안도

정동영 후보와 오랜 친구이면서도 대조되는 사람이 이해찬 후보다. 전북 순창 시골 출신에 ‘어리버리한 정동영’을 운동권 서클로 이끌고, 잘 나가던 정 앵커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소개해 15대 총선 때 정계 입문을 시킨 사람이 바로 이 후보이지만, 리더십 스타일은 판이하다.

이 후보는 ‘원칙중시형’이다. 그를 잘 아는 한 정치인은 “그 좋아 하는 골프도 원칙대로만 칠 사람”이라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이 후보는 지난 달 통합신당의 예비경선을 앞두고 캠프 내에서 “우리도 선거인단 대리접수를 하지 않으면 곧 한계에 부닥칠 것”이라고 진언한 참모를 공개적으로 혼냈다. “원칙대로 해야 문제가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참모를 비롯한 주변의 얘기는 충분히 듣되, 의사결정은 신속하게 하는 편이다.

참모들과는 비교적 잘 지낸다. 캠프 대변인인 양승조 의원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안정감과 신뢰감을 준다”면서 “이 후보가 19년 동안 정치를 했는데, 그 비서나 보좌관은 대부분 8년 넘게 같이 한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버럭해찬’은 그냥 붙은 별명이 아니다. 이 후보는 가끔 자기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한 참모를 공개 석상에서 무안하게 만든다.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간혹 있다. “누군가 이전의 주제를 다시 꺼내면 ‘아, 그건 이미 결론이 난 거고, 그 다음…’ 하는 식으로 말 허리를 싹뚝 자른다. 말한 사람은 무색할 수밖에. 맥락과 다른 얘기를 하거나 중언부언해도 마찬가지다.”(한 참모) 후보 앞에서는 다들 입을 다무는 바람에 참모들끼리 따로 회의를 열어 의견을 모으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한다. 뒤끝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가 혼을 낸 뒤 상대방을 다독였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문국현 ‘공동체적 인화형’
잡일도 마다안해 카리스마 부족 지적도

“캠프에 합류하고 나서, 처음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했는데, 만족한 후보가 칭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뿐만 아니라 회의에 같이 참석한 다른 참모 7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수고했다’고 하더군요.”

문국현 대선 예비후보의 김헌태 정무특보는 이런 경험을 소개하며 문 후보의 리더십을 ‘공동체적 인화형’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특징은 캠프 운용과 주요 참모들과의 관계맺기에서도 나타난다. 문 후보는 핵심참모들과 거의 독대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논의할 일이 있으면 여러 명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김 특보는 “비선라인을 통해 일을 추진하거나, 복수의 라인을 서로 경쟁시키고 견제시키는 일이 없는 ‘열린 의사소통’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문 후보는 캠프 안에서 잡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캠프를 처음 꾸릴 때 집기를 함께 날랐고, 가끔 대걸레질도 한다는 게 참모들의 얘기다. 이 때문에 캠프 안에서는 잡일이 생기면, “공자님(문 후보의 별명) 오시기 전에 빨리 끝내자”는 말들이 나온다고 한다.

문 후보는 평소 “낯선 사람과 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그의 캠프도 문 후보와 특별한 개인적 연이 없는 소장파 학자·전문가들이 중추를 이루고 있다. 김헌태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 고원 전 서울대 연구원, 김혁 목사 등이 그들이다. 이들 모두 저서나 강연을 통해 문 후보를 접했다. 인화에 능한 문 후보의 리더십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의 이런 리더십은 때론 카리스마가 부족한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를 잘 아는 시민단체 인사는 “카리스마 중심의 전통적인 대통령상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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