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23일간 ‘분당 막기’ 물거품…오늘 사퇴
3일 밤 11시께 민주노동당 임시 당대회에 비대위 대표로 참석한 심상정 의원이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당내 다수파인 자주파 대의원들이 심 의원이 제출한 ‘제2 창당을 위한 평가·혁신안’에서 일심회 사건을 해당행위로 규정한 부분을 삭제해 버린 순간이었다. 심 의원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회의장을 벗어났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머뭇거림도 없었다. ‘창당 8년 만의 분당’은 심 의원의 힘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돼 버렸다.
대선 참패 이후 이날 임시 당대회까지 40여일 동안 민주노동당은 자주파와 평등파의 극한 대립 속에 여러 차례 분당 위기를 넘어왔다. 17대 대선에 세번째 도전장을 낸 권영길 후보가 애초 공언했던 500만표에 턱없이 못미치는 71만2121표(3.0%)를 득표하는 데 그치자, 지난해 12월29일 문성현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가동하기로 했다. 심 대표는 지난달 12일 비대위 대표를 수락했고, 대선 패배 책임을 둘러싸고 당내 다수파인 자주파와 비주류인 평등파 사이의 갈등이 본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민노당의 발목을 잡아온 ‘종북주의’에 대한 논란이 물위로 떠올랐다.
일심회 사건 관련자인 최기영 전 사무부총장 등에 대한 제명과 친북 편향적 행태의 추방 의지를 혁신안에 담아내자 자주파는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반해 조승수 전 의원 등 강경 평등파는 신당 창당을 밀고나갔다. 이 사이에서 분당을 막기 위한 심 의원의 20여일 동안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심 의원은 4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비대위 대표 사퇴의 뜻을 밝힐 예정이다. 사퇴 이후 심 의원은 아무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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