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가 국익 도움 판단
‘한겨레’ 청와대 요청 거부
애초 엠바고 성립 안돼
‘한겨레’ 청와대 요청 거부
애초 엠바고 성립 안돼
한국과 미국 정상이 26일(현지시각) 캐나다에서 열리는 양자회담에서 2012년 4월17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시점을 연기하는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는 <한겨레> 보도(23일치 1면)와 관련해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24일 “한겨레신문이 엠바고(특정 시점까지 보도 유예)를 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이 수석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작권 연기 문제가 논의될 것이 분명하지 않으냐”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의 질의에 “혹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민감한 사안이므로 엠바고를 지켜달라고 부탁드렸는데 한겨레가 깨고 혼자 기사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수석의 주장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이 사안은 애초 엠바고가 성립하지 않았다. 통상 엠바고는 출입처의 요청에 따라 출입기자들의 만장일치 합의로 결정되지만, <한겨레>는 처음부터 동의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지난 22일 오후 이 사안에 대한 엠바고를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요청해 왔으나 <한겨레>는 검토 끝에 “엠바고를 수용할 수 없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아울러 23일치 신문에 전작권 전환 연기 관련 보도를 하겠다는 뜻도 통보했다. 당시 이 수석은 엠바고 수용 여부에 대한 기자들 전체의 합의가 이뤄지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엠바고 성립을 기정사실로 전제한 채 “엠바고를 지켜달라”고 말했다. 따라서 “<한겨레>가 엠바고를 깼다”는 이 수석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한겨레>가 엠바고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전작권 문제는 국민의 의견이 갈려 있는 만큼 공론화되어야 하며 그러려면 관련 내용에 대한 시의적절하고 충실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와대는 전작권 문제를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것이라는 최근까지의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해 왔다. 그랬던 청와대가 정상회담에 임박해 그동안의 태도를 바꾸며 엠바고를 요청한 것은 정부의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라고 봤다.
전작권 관련 사항을 보도하지 않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청와대의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전작권처럼 중요한 문제를 공개적인 논의 과정 없이 ‘비밀 외교’, ‘깜짝 외교’로 해결하려는 것 자체가 국익에 심각한 위해요인이 될 수 있다. 공론의 장에서 치열한 논의를 거치는 것이 더 국익에 부합한다는 게 <한겨레>의 판단이었다.
엠바고는 다수의 생명과 안전이 직접 걸려 있거나 국가의 기밀에 관련된 사안, 흉악범죄 발생시 비공개 수사가 필요한 때 등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실행돼야 한다. <한겨레>는 전작권 문제는 이런 일반적인 기준에 맞지 않으며, 청와대의 요청을 수용할 경우 언론 보도 통제에 도리어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이런 이유로 <한겨레>는 23일치에 전작권 기사를 다뤘다. <경향신문>도 엠바고가 성립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기사를 썼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이슈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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