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복지 전문가가 본 ‘진보정권 10년’
복지가 한국 사회에서 의미를 띠기 시작한 건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라는 게 학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비록 ‘다급한 시대적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고 해도 김대중 정부는 ‘생산적 복지’를 주창하면서 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등 획기적 복지개혁을 일구었다. 노무현 정부도 ‘참여복지’를 내세우며 복지재정 확충을 꾀했다.
하지만 분배악화는 여전하고, 국민들의 복지체감도는 아직도 미약하다. 복지국가를 향한 우리 사회의 도정은 이른바 두 ‘진보개혁’ 성향 정부 시기의 복지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진보개혁 복지 10년’, 우리 사회의 복지는 어떤 발전을 이루었고, 또 어떤 한계를 보였나? <한겨레>는 이와 관련해 김원섭 고려대 교수(사회학)의 글과, 두 정부 시기 복지개혁의 주역이었던 청와대 수석들의 대담을 싣는다.
복지지출 2배 이상 늘려 수혜자 확대 성과
사회보험 강화했지만 ‘선별적 복지’ 한계
‘소득불평등’ 양극화 대처 소홀 뼈아픈 실책 무엇을 했나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 건설이 본격화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성과와 한계를 검토하는 것은 향후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두 정부는 복지를 주요한 국가목표로 제시했다는 점이 이전과 달랐다. 김대중 정부는 국정지표로 외환위기 극복, 민주주의의 진전과 함께 ‘생산적 복지’를 내세웠다. 참여정부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와 함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를 제시했다.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의 핵심은 ‘참여복지’였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정부는 국가목표로 늘 경제성장과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제시했다. 복지나 민주주의는 부차적이었다. 물론 전두환 정부에서 복지사회 건설을 국정지표로 제시한 바 있지만 이는 아무런 내용 없는 구호일 뿐이었다. 이와 달리, 두 정부에서는 기존 제도가 고쳐졌고, 새 제도가 도입되고 실행되었다. 예산의 증가도 뚜렷했다. 한 나라의 복지 수준은 복지재정과 예산 등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대표적인 통계가 바로 국내총생산(GDP)에서 공공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이 비율은 1997년 고작 지디피 대비 3.80%였다. 하지만 두 정부를 거치면서 그 비율은 2007년 7.48%로 늘었다. 상당한 증가를 이뤘지만 이 수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치인 20.6%(2005년)에 견주면 현저하게 낮다. 그러나 양적 성장만으로는 복지발전의 성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성장의 결과가 누구에게 혜택이 갔는지 등 질적인 평가도 함께 살펴야 한다. 개발독재 시대의 복지는 사회적 시민권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복지급여는 엄연히 국민들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어야 하지만 권력자의 선의로 치부되었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는 경제성장과 정권유지에 중요한 집단부터 복지제도가 적용된 것도 바로 이런 시각에 따른 결과다. 공무원, 교원, 군인, 대기업 노동자 등 특정 집단의 필요에 맞추어 선별적으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이 시기의 복지는 사회 전체 구성원의 소득분배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복지 발전과 개혁은 이전까지의 흐름과는 궤를 달리하는 측면이 있었다. 결론부터 제시하면, 두 정부는 복지제도의 포괄성, 보편성과 연대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복지정책을 전개했다고 할 수 있다. 주요 개혁조처를 보면 분명해진다. 첫째,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급여와 서비스의 종류가 확대됐다. 제5의 사회보험인 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됐고, 영유아보육료 지원의 강화, 기초노령연금의 도입, 아동·장애인·노인을 위한 복지서비스의 확대 등이 이루어졌다. 둘째, 복지제도의 보편성이 강화됐다. 국민연금은 그 대상이 도시 자영업자로 확대돼 모든 경제활동인구를 포괄하게 되었으며,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도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셋째, 복지가 국민의 권리로 명백히 인정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모든 국민에게 최저생계를 누릴 생존권을 인정한다는 기조를 분명히 했다. 넷째, 연대성의 원리도 강화됐다. 가장 대표적인 게 건강보험제도인데, 420개의 개별조합 단위로 관리하던 방식에서 하나의 보험자가 묶어 관리하는 통합방식으로 전환됐다. 이는 전국민 연대란 효과로 이어졌다. 한계는 무엇인가? 하지만 한계도 명확했다. 개발독재 시기에 사회정책은 주로 대상자들의 기여금에 기반을 둔 사회보험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국민의 정부 역시 이 체제를 수용하여 사회보험의 확대와 공고화를 추구하였다. 또한 참여정부에서 야심차게 추진된 사회서비스에 대한 투자도 기존 틀을 전환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이에 따라 두 정권 나름의 복지발전과 개혁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복지제도에서 사회보험의 지배적인 구실은 변하지 않았다. 가장 뼈아픈 비판은 선별적 복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점이다. 이른바 ‘진보개혁’ 정부인 두 정부는 사회보험 확대를 통해 그 적용 대상자를 높였지만, 사회보험의 보편성을 완성하지 못했다. 국민연금의 경우, 2007년 기준으로 적용 대상자의 70%만이 실제 가입했고, 고용보험에서도 대상자의 70%만이 가입돼 있다. 또한 최저생계비 이하의 가구 중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을 받는 가구의 비중을 표시하는 욕구 대비 수급률은 41.48%에 그친다. 숱한 이들이 복지제도 밖에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들이다. 이들의 상당수는 실업자거나 다행히 취업이 됐다고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인 것이다.
또다른 비판의 지점은 양극화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 기간 동안 소득격차는 갈수록 늘어났다. 소득분배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복지개혁의 성격은 지니계수의 추이보다는 복지정책이 불평등을 얼마나 완화하느냐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지니계수의 변화는 복지제도뿐 아니라 경제제도, 노동시장제도 등 많은 요소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복지정책이 소득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는 여전히 미약하기만 하다. 즉 2006년 우리나라에서 복지, 조세제도는 지니계수를 0.014만큼만 개선시켰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에 속한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0.078만큼 개선한 것에 비하면 매우 저조한 것이다. 결국 두 정부의 복지개혁이 복지국가를 지향했다고는 하지만 그 방법이 소극적이었고, 영향력도 기대만큼 크지 않았던 것이다.
복지한국 건설의 향후 과제
종합적으로 볼 때,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복지국가 방향을 지향한 것은 명확하다. 복지가 국가목표의 핵심이 됐고, 복지제도에서도 포괄성, 보편성, 연대성을 중심으로 사회적 시민권이 강화됐다. 하지만 동시에 정책의 실행과 효과에서 복지사각지대와 낮은 분배효과의 문제가 나타났다.
복지개혁의 이런 한계는 이제 국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곧 복지국가 건설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첫째, 기초연금, 장애수당, 아동수당 등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제도가 더 확대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안정된 보험료 납부를 전제로 하는 사회보험제도가 모든 국민에게 복지급여를 제공하기는 어렵다.
둘째, 사회투자전략을 우리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사회투자전략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복지제도는 확대하고 경제에 부담이 되는 소모적인 복지제도는 삭감하는’ 개혁을 실시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실시한 참여정부도 사회투자적으로 분류된 사회서비스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확대를 위해 재정소모적인 사회보장 부문에서 지출을 축소하려 했다. 이에 따라 2007년 연금개혁에서 국민연금의 급여수준은 20%나 삭감됐다. 또한 야심차게 추진했던 건강보험의 공공성 확대도 재정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기본적 사회안전망이 잘 갖추어진 상태에서 사회투자적 요소를 도입하고 있는 선진복지국가와 달리, 사회안전망이 허약한 우리나라에서 복지제도를 선택하고 집중할 경우 빈곤과 양극화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투자전략과 전통적인 사회안전망 구축 전략이 동시에 진행돼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보적 정부가 복지국가 건설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좀더 과감한 복지정책의 실행을 위한 정치적 결단과 기술이 요구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재정건전화를 의식해 지나치게 점진적인 복지확대정책을 실시했다. 이러한 소극적 전략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부가 장기적으로 정권을 장악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에 비추어볼 때 효과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김원섭 고려대 교수(사회학)
사회보험 강화했지만 ‘선별적 복지’ 한계
‘소득불평등’ 양극화 대처 소홀 뼈아픈 실책 무엇을 했나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 건설이 본격화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성과와 한계를 검토하는 것은 향후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두 정부는 복지를 주요한 국가목표로 제시했다는 점이 이전과 달랐다. 김대중 정부는 국정지표로 외환위기 극복, 민주주의의 진전과 함께 ‘생산적 복지’를 내세웠다. 참여정부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와 함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를 제시했다.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의 핵심은 ‘참여복지’였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정부는 국가목표로 늘 경제성장과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제시했다. 복지나 민주주의는 부차적이었다. 물론 전두환 정부에서 복지사회 건설을 국정지표로 제시한 바 있지만 이는 아무런 내용 없는 구호일 뿐이었다. 이와 달리, 두 정부에서는 기존 제도가 고쳐졌고, 새 제도가 도입되고 실행되었다. 예산의 증가도 뚜렷했다. 한 나라의 복지 수준은 복지재정과 예산 등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대표적인 통계가 바로 국내총생산(GDP)에서 공공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이 비율은 1997년 고작 지디피 대비 3.80%였다. 하지만 두 정부를 거치면서 그 비율은 2007년 7.48%로 늘었다. 상당한 증가를 이뤘지만 이 수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치인 20.6%(2005년)에 견주면 현저하게 낮다. 그러나 양적 성장만으로는 복지발전의 성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성장의 결과가 누구에게 혜택이 갔는지 등 질적인 평가도 함께 살펴야 한다. 개발독재 시대의 복지는 사회적 시민권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복지급여는 엄연히 국민들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어야 하지만 권력자의 선의로 치부되었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는 경제성장과 정권유지에 중요한 집단부터 복지제도가 적용된 것도 바로 이런 시각에 따른 결과다. 공무원, 교원, 군인, 대기업 노동자 등 특정 집단의 필요에 맞추어 선별적으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이 시기의 복지는 사회 전체 구성원의 소득분배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복지 발전과 개혁은 이전까지의 흐름과는 궤를 달리하는 측면이 있었다. 결론부터 제시하면, 두 정부는 복지제도의 포괄성, 보편성과 연대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복지정책을 전개했다고 할 수 있다. 주요 개혁조처를 보면 분명해진다. 첫째,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급여와 서비스의 종류가 확대됐다. 제5의 사회보험인 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됐고, 영유아보육료 지원의 강화, 기초노령연금의 도입, 아동·장애인·노인을 위한 복지서비스의 확대 등이 이루어졌다. 둘째, 복지제도의 보편성이 강화됐다. 국민연금은 그 대상이 도시 자영업자로 확대돼 모든 경제활동인구를 포괄하게 되었으며,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도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셋째, 복지가 국민의 권리로 명백히 인정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모든 국민에게 최저생계를 누릴 생존권을 인정한다는 기조를 분명히 했다. 넷째, 연대성의 원리도 강화됐다. 가장 대표적인 게 건강보험제도인데, 420개의 개별조합 단위로 관리하던 방식에서 하나의 보험자가 묶어 관리하는 통합방식으로 전환됐다. 이는 전국민 연대란 효과로 이어졌다. 한계는 무엇인가? 하지만 한계도 명확했다. 개발독재 시기에 사회정책은 주로 대상자들의 기여금에 기반을 둔 사회보험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국민의 정부 역시 이 체제를 수용하여 사회보험의 확대와 공고화를 추구하였다. 또한 참여정부에서 야심차게 추진된 사회서비스에 대한 투자도 기존 틀을 전환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이에 따라 두 정권 나름의 복지발전과 개혁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복지제도에서 사회보험의 지배적인 구실은 변하지 않았다. 가장 뼈아픈 비판은 선별적 복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점이다. 이른바 ‘진보개혁’ 정부인 두 정부는 사회보험 확대를 통해 그 적용 대상자를 높였지만, 사회보험의 보편성을 완성하지 못했다. 국민연금의 경우, 2007년 기준으로 적용 대상자의 70%만이 실제 가입했고, 고용보험에서도 대상자의 70%만이 가입돼 있다. 또한 최저생계비 이하의 가구 중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을 받는 가구의 비중을 표시하는 욕구 대비 수급률은 41.48%에 그친다. 숱한 이들이 복지제도 밖에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들이다. 이들의 상당수는 실업자거나 다행히 취업이 됐다고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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