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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기회의 시간’…현안 떠오른 이인모씨 북송 / 한완상

등록 2012-05-22 20:08

1993년 2월25일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터진 북핵 위기는 직전 노태우 정부에서 추진했던 남북교류와 북방정책의 산물이었다. 92년 9월17일 평양에서 열린 제8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남쪽 대표 정원식 총리와 북쪽 연형묵 총리가 합의서에 서명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3년 2월25일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터진 북핵 위기는 직전 노태우 정부에서 추진했던 남북교류와 북방정책의 산물이었다. 92년 9월17일 평양에서 열린 제8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남쪽 대표 정원식 총리와 북쪽 연형묵 총리가 합의서에 서명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⑦
1992년은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였다. 이 시기에 북한은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씨 북송과 93년도 팀스피릿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지를 끈질기게 요구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사찰 줄다리기를 하며 남북간 핵사찰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이런 요구는 남북관계의 긴장을 유지시키는 구실을 했다. 특히 이씨 송환 문제는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총리회담)의 주요 의제였다. 그해 9월14일 고위전략회의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열망을 토로하면서 북한이 끈질기게 이씨 송환을 요구한다면 우리도 다음 3가지를 요구하되 협상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남북이산가족방문단 사업의 정례화, 둘째 판문점에 이산가족 면회소와 우편물 교환소 설치 및 상설 운영, 셋째 동진호 선원의 송환이었다.

특히 첫째와 둘째 사항이 관철되면 이씨 송환 문제도 전향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9월15~18일 평양에서 고위회담이 열렸고 정원식 총리가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임동원·이동복 등 7명도 회담대표로 참석했다. 이때 북쪽은 공개적으로 핵문제 전제조건 철회와 이씨 송환이라는 2가지 조건이 선행돼야만 이산가족 노부모 방문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은 비공식적으로는 남쪽이 이씨 북송을 약속해주면 이산가족 방문과 남북면회소 연내 설치 문제도 풀릴 수 있다고 시사했다. 9월17일에는 동진호 문제와 관련해 선원들이 자진 월북했음을 강조하면서 이산가족 문제와 연계시키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다음날에는 다소 융통성 있는 안을 내놓았다. 면회소 설치 운영 문제를 먼저 논의한 다음 이씨 송환을 협의하고 그다음에 노부모 방문단 문제를 협의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우리 쪽은 동진호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훈령 조작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사건은 훗날 문제가 됐을 때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자.

아무튼 그렇게 이씨 송환 문제가 핵문제와 함께 새 정부로 넘어왔다. 이때 나는 새로운 발상과 패러다임으로 국내외 정책을 펼친다는 취지에서 좀더 유연하고 자신감 있게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새 정부가 들어설 즈음 북한 당국은 이른바 남조선혁명전략을 실현하기에 어려워진 상황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대남적화전략의 비현실성을 직시하는 한편, 내심 남한에 의해 흡수되는 상황이 벌어질까 봐 두려워했다. 한마디로 북한은 방어 대책을 모색해야 할 처지였다.

남북간의 경제력 차이가 현격히 벌어지고,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함에 따라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은 더욱 수세적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사실상 평양 당국은 이때 ‘하나의 조선 정책’을 포기한 것 같다. 이는 91년 9월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데서 잘 드러난다. 91년 신년사에서 김일성 주석은 ‘2정부 2제도 방식’의 연방제 통일안을 제시했다. 남한의 냉전근본주의자들은 북한의 연방제 통일 방안이 적화통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전일적 적화통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뼈아픈 현실 인식에서 나온 수정안이라고 봐야 한다. 남북기본합의서 1조와 4조도 남북 상호체제의 인정과 존중, 내정 불간섭, 비방·중상·파괴·전복 행위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 역시 북한의 방어적 입장에서 나온 것이고 2개의 국가 논리를 인정한 것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이런 현실론적 인식에서 북한은 “전국적 범위에서의 통일” 곧 한반도 전체를 적화한다는 정치 공세는 92년 4월 헌법 개정 때 삭제하고, 남북간 경제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어 10월에는 외국인 투자법·합작법 등 경제 관련 법률도 제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비교적 실용적인 기술 관료들을 정부 주요 부서에 발탁했다. 강성산 총리, 김달현 국가기획위원장, 김용순 등이 대표적이다. 앞서 그해 7월에는 부총리가 된 김달현씨가 7박8일간 서울을 방문했다. 이렇게 부드러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지만, 핵문제를 비롯해 팀스피릿 훈련, 이인모씨 송환 문제가 이 흐름을 언제 뒤틀리게 할지도 모를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뭔가 변화가 요청되는 기회의 시간(Kairos)이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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