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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YS 아들 김현철씨, 대통령 분신 노릇 / 한완상

등록 2012-08-30 19:50

1994년 7월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이부영 의원이 11일 외무통일위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 조문사절단 파견 계획’을 질의한 것에 대한 여당과 보수언론의 매카시즘 공세에 맞서 ‘소신 발언’을 하고 있다. 전날 필자와 만난 ‘실세 아들’ 김현철씨도 이 의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1994년 7월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이부영 의원이 11일 외무통일위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 조문사절단 파견 계획’을 질의한 것에 대한 여당과 보수언론의 매카시즘 공세에 맞서 ‘소신 발언’을 하고 있다. 전날 필자와 만난 ‘실세 아들’ 김현철씨도 이 의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80)
1994년 7월13일 나는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국회 문화체육위에 출석했다. 통일부총리 자리를 그만두면서 국회도 졸업한 줄 알았는데, 다시 출석하려니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우리 위원회가 네번째로 업무보고 하고 질문을 받게 된다고 한다. 나는 박종웅 간사와 박계동 의원에게 우리 위원회가 첫번째로 업무보고 할 수 있도록 순서를 바꿔달라고 요청해 받아들여졌다. 대부분 의례적인 질문을 해서 곤혹스러운 비난은 없었다. 다만 강용식 의원이 ‘오만한 충고’를 한마디 했지만 나는 웃으며 여유있게 넘겼다. 예전 외무통일위에서 겪었던 어려움에 견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국회를 떠날 때 총무부장이 말했다. “상임위원회에서 산하단체장을 이렇게 예우한 것은 처음일 겁니다.”

이날 오찬은 김영삼 대통령의 둘째아들 김현철씨가 이례적인 요청을 해서 함께 했다. 특별한 용건은 없었고 그냥 인사 차원이었다. 그는 정부 밖에 있으면서도 정부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엄밀하게 말하면 대한민국의 한 국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실세 중 실세’로 행세하고 군림하고 있었다. 일요일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함께 가족예배를 보고 점심을 하면서 그가 자연스럽게 전달·해석하는 정보가 대통령을 기쁘게 해주고 있는 듯했다. 경찰·군·안기부 등을 통해 얻는 소중한 정보를 그 조직의 장들이 대통령에게 공식 보고하기 전에 그가 먼저 아버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적절하게 윤색을 할 것이다.

이런 일이 상례화된다면, 국가 공권력의 권위가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대통령은 반드시 알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염려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대통령께서 아들이 전달해주는 새로운 정보에 귀기울이면서 만에 하나 “우리 아들이 최고”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이는 국가의 공적 관리에 위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테면 경찰 총수가 보고하는 정보를 듣고 대통령의 눈빛이 반짝일 때 그리고 깊은 관심을 보여줄 때 비로소 그는 자신과 공공조직의 존재감을 뿌듯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런 존재감을 박탈하는 것은 국가 권위를 허물어뜨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대통령께서 이미 알고 있는 시들한 정보를 그가 보고한다면, 그만큼 경찰 조직의 힘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철씨가 휘두르는 힘은 정당한 영향력으로서 권위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위태로운 권력일 뿐이다. 원래 권위와 권력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는 법이다.

여하튼 이날 오찬에서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가 대통령의 분신 노릇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는 이부영 의원의 김일성 주석 조문 발언에 대해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김대중 총재에 대해서도 질시와 경멸을 숨기지 않았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합의 소식을 전해 주었을 때 입을 딱 벌릴 만큼 좋아했던 그 태도가 진실로 김 대통령의 속뜻이었다면, 조문 발언을 이토록 혐오하는 것은 정말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원래 우리 전통예법으로는 원수가 죽어도 조의는 표하는 법이다. 죽은 사람 앞에 너그러워지는 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 아니던가. 여하튼 이번 조문파동은 문민정부로 하여금 또 한번 대통령 취임사의 정신에서 멀어지게 하는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일종의 역사 후퇴 현상이라 하겠다. 문민정부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가져올 탈냉전을 통한 평화 정착의 효력을 소중하게 여기기보다는 그 회담이 갖는 정략적 중요성을 이용하고 싶었던 것 같다. 조문파동 과정에서 한국적 매카시스트들의 맹공을 이 정부가 의도적으로 방관한 것도 바로 그런 정치적 계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7월20일치 내 일기장을 열어보니, 국민들에게 ‘전쟁 불감증’을 지나치게 경고하면서 ‘전쟁 불가피’를 외치는 냉전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현실을 어느때보다 걱정하고 있었다. “이런 위험하고 걱정스러운 흐름에 휩쓸려 정부는 춤추는 듯하다. 새삼 김일성의 남침을 강조한다. 지난번 김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서 가져온 역사적 자료를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김영삼 총재의 모습이 아니다. 이런 정치적 활용으로 얻는 것이 하나라면, 잃는 것은 여러 가지다. 첫째가 남북관계의 교착과 악화이다. 둘째로, 국내 민주적 개혁의 후퇴이다. 셋째, 미국과 중국과의 공조 약화다. 넷째, 정부의 통일정책과 대북정책이 일관성 없이 냉탕·온탕을 왔다갔다 한다는 비판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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