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0월21일 서울 성수대교의 붕괴 참사가 벌어지자 김영삼 대통령은 사흘 뒤인 10월24일 대국민 사과 담화문을 발표했으나 바로 그날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고가 터졌다. 이튿날 한 조간신문의 1면에 김 대통령의 사과 사진과 유람선 화재 사진이 나란히 실렸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86
1994년 10월21일 미국과 북한은 마침내 북핵 일괄타결을 원칙으로 한 ‘제네바 기본합의문’을 서명·발표했다. 지난해 11월 한·미 두 정상의 서명만 남겨둔 시점에서 청와대의 ‘몽니’ 탓에 뒤집혔던 일괄타결안이 끝내 관철된 것이다. 이번에도 북·미는 남북대화 문제에 막혀 주춤했으나 북한이 미국의 체면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막판 수용함으로써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겼다. 돌이켜보면 정말 안타까운 1년의 시간을 낭비한 셈이다.
제네바 기본합의문은 93년 6월11일 나온 ‘미국-북한 공동성명’의 원칙을 준수한다는 전제 아래, 크게 네가지 사항에 합의했다. ‘첫째, 양쪽은 북한의 흑연 감속 원자로 및 관련 시설을 경수로 발전소로 대체하기 위해 협력한다. 둘째, 양쪽은 정치적 및 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를 향해 나아간다. 셋째, 양쪽은 핵 없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 넷째, 양쪽은 국제적 비확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한국의 수구 언론에서는 여전히 제네바 합의를 폄훼했다. <조선일보>는 ‘통일이 멀어진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특히 ‘북-미 관계가 대사급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합의 내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흡수해 버려야 할 악의 체제’를 혈맹인 미국이 국교 정상화 대상으로 명시했으니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마침 그 전날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초청 특강을 하러 광주에 내려와 있었다. 그런데 제네바 합의 조인식을 하는 10월21일 아침 7시40분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터졌다. 다리의 중간 부분 상판이 내려앉으며 30여명의 등굣길 학생들이 희생되고 말았다. 고질적인 부실공사가 원인이라니, 오랜 군사독재의 구조적 부패가 낳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날 뜻밖에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내일 오후에 들어오라고 한다. 10월22일 낮에는 ‘거물급 탈북자’인 김정민씨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 그는 북한 노동당에서 직영하는 큰 회사 사장 출신이다. 그의 망명을 크게 반긴 정부는 신부도 짝지어 주었다.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남북관계 개선에 그의 결혼과 안정된 가정생활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꺼이 축복을 해주었다. 실은 강영훈 전 총리의 간곡한 부탁도 물리치기가 어려웠다. 군인 시절, 박정희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드문 양심적 장군이었던 강 총리를 나는 좋아했다.
그날 오후 4시 정각에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을 독대했다. 성수대교 참사로 그의 심기는 매우 불편해 보였다. 대통령은 이번 참사를 민심에 부합하게 수습하고 싶어했다. 나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이런 사고는 대통령 탓이기도 하다”고. 그는 놀라는 얼굴로 왜 그런지를 물었다. “요즘도 장관들의 행동이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전화해서 야단치십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느날 밤 ‘9시 뉴스’를 보다가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야단맞았다는 어느 국무위원의 얘기를 전했다. 그는 그 이후 국무회의 때 대통령을 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고 했다. 자연히 그는 복지부동 상태로 빠져들어갔다. 이런 장관이 무슨 확신과 소신으로 소임을 추진할 수 있겠는가, 다시는 대통령이 언짢아할 얘기는 하지 못하니 개혁은 실종되고 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나는 이 기회에 청와대부터 전폭 개편을 단행하시라고 진언했다. 용기 있게 일을 추진할 인물과, 특히 워싱턴과 평양이 모두 안심할 수 있는 소신 있고 평화지향적인 인물을 기용하시라고 강조했다.
청와대를 나오면서 ‘대통령께서 정부 밖에 있는 나를 불러 의견을 들으려 하는 것을 보니 취임 초기의 개혁 의지를 잊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 이틀 뒤인 10월24일 김정남 교육문화수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께서 사과 담화를 발표하는데 좋은 의견을 달라고 했다. 나는 기술적 조언보다는 ‘지금 보수 쪽으로 역행하려는 역사의 흐름을 문민정부가 막지 못하면 지난 권위주의 정권 때 비리로 인한 사고는 계속 터져 나올 것’이라는 경계론을 전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바로 그날 하필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건이 터졌다. 30여명이 죽어가는 참사 현장이 그대로 방송에 중계됐다. 이 무슨 괴이한 일인가! 나는 이런 때일수록, 김 대통령이 원점으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성찰해내는 원숙하고 도덕적인 지도력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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