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2월4일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장에서 96년 말 재선에 성공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 2기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4자 회담’을 성공시켜 한반도 냉전시대를 끝내겠다는 그의 연설을 들으며 필자는 입장이 대조적인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 말을 우려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09
1997년 1월27일 점심때는 이각범 정책기획 수석비서관과 함께했다. 그는 내가 아끼는 제자이자 서울대 사회학과 동료 교수이기도 했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이 야당 당수일 때부터 도와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보좌관으로서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는 외로움을 느끼는 듯했다. 대학에 남아 있었다면 이런 곤혹스러움은 느끼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날 저녁에는 후배인 박세일 사회복지 수석비서관과 현승일 국민대 총장, 이명현 전 교수와 함께했다. 모두 김 대통령을 좋아하는 이들이다. 그들도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에서 내 칼럼을 읽고 착잡했을 터인데, 나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김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해를 맞아 새로운 방식의 개혁으로 초기의 인기를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듯했다. 뒤집기와 깜짝쇼를 잘하는 그의 정치 스타일이 다시 한번 멋지게 발휘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하려면 모세가 했듯이, 먼저 철저한 자기반성을 위해 시나이산이나 광야로 잠시라도 나가야 한다. 진솔한 사과와 함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해야 한다. 사실 나는 이렇게 제안을 하면서도 힘이 빠졌다. 너무 늦은 것 같기 때문이다.
1월30일 오전에는 뜻밖에 교육부의 이영탁 차관이 전화를 해서는 <한겨레신문>에 실린 내 칼럼에 대해 비난을 쏟아냈다. 고위 관료 특유의 맹목적 충성심인가. 그러더니 다음날 오전에는 안병영 교육부 장관이 이 차관과 함께 내 방송대 총장 집무실로 찾아왔다. 안 장관은 점잖은 지식인이다. 그는 어제 이 차관의 절제 없는 언어 사용에 대해 나의 이해를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그 역시 ‘집단적 정치 치매’란 칼럼의 표현은 너무 직설적이었다고 정중하지만 날카롭게 지적했다. 고마웠다. 그래서 나도 이런 글을 쓰게 된 고뇌를 설명하며 주말에 김 대통령에게 전화를 드려보겠다고 했다.
오후에는 내가 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사회문화연구원의 대표인 이장현 교수(홍익대)가 전화해서는, 김 대통령이 내 칼럼을 읽고 대로했다고 전했다. 역지사지해보니, 내 글의 참뜻과 달리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월2일 일요일 아침 9시35분에 안 장관에게 약속한 대로 청와대에 전화했다. 김 대통령께서 가족예배 중이라 전화를 받기 어렵다고 했다. 10분쯤 뒤 대통령께서 전화를 해주셨다. 예상한 대로 화가 풀리지 않은 목소리다. 나는 차분하게 내가 그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말씀드렸다. 세계 여론의 악화와 국내 지지도의 10% 하락 현상을 보고 팔짱끼고 구경만 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고 이해를 구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은 국내 민심과 인기 하락을 심각한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낙관하고 있었다. 게다가 연말 대선에서 야당이 집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은 디제이(김대중)가 대통령이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대통령께 남은 1년이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데, 이 소중한 시간을 값지게 활용해 취임사의 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통령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에 대해서만 공감을 표시했다.
통화가 끝난 뒤 내 마음은 더욱 허전해졌다. 최악의 경제상황, 최저의 인기, 썩은 냄새 나는 한보부정사건,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의 날치기 통과 강행, 최악의 외신 평가, 미묘한 한-미 관계 등등의 상황 속에서 정부는 대선 승리에 온정신을 쏟고 있다. 대통령은 남북관계만 아니라 야당과의 관계도 제로섬 게임으로 보고 있다. 승리하지 않으면 끝장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때마침 워싱턴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발표했다. 그는 교육개혁을 강조했다. 한반도 정책으로는 ‘4자 회담’을 성공시켜 마침내 북-미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한반도 냉전체제를 해소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아! 정말 부럽구나, 부끄럽구나.”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통일 부총리 임명장을 받을 때만 해도, 나는 재임 기간 동안 분단된 조국과 민족을 하나로 잇고 한반도 냉전체제를 종식시킬 수 있는 확실한 기반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중동평화협정의 사다트 대통령과 베긴 총리처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의장과 데클레르크 대통령처럼, 한반도의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나란히 노벨평화상을 받는 꿈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97년 초의 이 엄혹한 현실을 보며 나는 더욱 비감에 잠겼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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