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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DJ의 둘째 홍업씨에 “이권세력 조심하라” 조언 / 한완상

등록 2012-10-24 20:04수정 2012-10-25 09:04

1998년 2월25일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장에서 세 아들 홍일(왼쪽부터)·홍업·홍걸씨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필자는 3월초 미국 망명 시절 친밀했던 둘째 홍업씨를 만나 와이에스의 둘째 아들 김현철씨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당부했다.
1998년 2월25일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장에서 세 아들 홍일(왼쪽부터)·홍업·홍걸씨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필자는 3월초 미국 망명 시절 친밀했던 둘째 홍업씨를 만나 와이에스의 둘째 아들 김현철씨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당부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17
1998년 3월2일 점심은 김대중 대통령의 둘째 아들인 김홍업 아태재단 부이사장과 함께 했다. 그는 디제이의 세 아들 가운데 가장 덜 정치적인 편이다. 나는 디제이가 와이에스의 실패를 거울삼아야 한다는 점과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역사적 작업임을 설명했다. 특히 와이에스의 아들(소산)이 당하고 있는 오늘의 곤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나는 아태재단을 김 대통령의 정치와 정책 성공을 위한 개혁 상황실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흩어져 있는 민주개혁세력을 네트워크로 묶어내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자칫 잘못하면 이 재단에 온갖 불순한 이권욕을 지닌 이들이 몰려들 위험이 있다고 나는 우려했다. 특히 그런 이들이 대통령의 아들들을 결코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것임을 나는 너무나 잘 알기에 내심 삼형제가 잘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랐다.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북한 당국에서 체제가 약해질수록 자존심을 앞세우고 대남 강경 발언을 일삼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평양 당국과 물밑소통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남북간, 특히 최고위층 사이에 소통의 길이 열려 있으면 불필요한 대결과 불신을 미리 관리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의 실패가 이 소통의 문을 완전히 닫았기 때문임을 환기시켰다.

그는 내 얘기를 무겁게 듣는 것 같았다. 80년대 초반 미국 망명 시절 내가 디제이에게 하는 고언들도 곁에서 자주 들었던 그였기에 내 속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국에서 결혼할 때 고맙게도 내게 주례를 부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아버지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그러면 틀림없이 신부님이 주례해야 한다고 말씀할 것이라고 했다. 내 말이 맞았다.

3월5일. 만 62살 생일을 맞아 큰딸과 사위가 만찬을 베풀어주었다. 스물여섯에 미국 유학 때 품었던 그 꿈과 한을 과연 이뤘는지 새삼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남은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남은 시간을 더 값진 ‘사회 의사’의 삶을 위해, 무엇보다 분단 고통을 극복하는 데 여생을 바쳐야 한다.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몸은 쇠잔해질 것이다. 기회도 줄어들 것이고, 총기와 비전도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내게 꿈과 희망의 가치가 더 절박하게 필요하다. 죽는 날까지 꿈을 꿀 수밖에 없다. 새날이, 새 하늘과 새 땅이 이 비극의 한반도에서 펼쳐질 때까지.

3월6일 점심때 이신범 의원(한나라당)이 찾아왔다. 그는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김종필 총리 인준을 둘러싼 지금의 정국 경색을 풀어내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내가 디제이를 쉽게 만날 수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먼저 집권 새정치국민회의 쪽에서 먼저 사과를 하고 총리 신임투표를 다시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이제 대통령이 된 디제이가 개혁전선을 명확히 하면서 개혁세력의 연대를 형성하는 조처를 내려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어 그는 이제 야당이 된 한나라당 안에서 초·재선 의원들 70명 정도는 묶어낼 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하든지 민주개혁세력의 대동단결이 절박하다고 한다. 그 말도 맞다. 그래서 곧장 여당의 원내총무인 한화갑 의원에게 전화를 했더니 다음주 중 연락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김 대통령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을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제이피계의 보수세력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이용해 냉전수구세력을 관리·통제하려는 것이다. 한데 자칫 잘못하면 바로 그 ‘오랑캐’에 의해 포위되어 그들의 포로가 될 위험이 적지 않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이들 ‘오랑캐’들은 늙은이들, 특히 소탐대실형의 늙은 정치인들을 즐겁게 해주는 기쁨조의 특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3월11일 오후 국민회의 당무위원인 심재권 박사가 찾아왔다. 권노갑 전 의원의 주거제한이 아직도 풀리지 않아 강북삼성병원에 여전히 갇혀 있다고 했다. 곧바로 박상천 법무부 장관에게 전화했더니 13일 사면 발표 이후 곧 그의 주거제한을 풀겠다고 한다. 현 대통령의 최측근 가신의 병원 구금을 내가 풀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어이없는 일처럼 여겨진다.

3월11일 오후 국민회의 당무위원인 심재권 박사가 찾아왔다. 권노갑 전 의원의 주거제한이 아직도 풀리지 않아 강북삼성병원에 여전히 갇혀 있다고 했다. 곧바로 박상천 법무부 장관에게 전화했더니 13일 사면 발표 이후 곧 그의 주거제한을 풀겠다고 한다. 현 대통령의 최측근 가신의 병원 구금을 내가 풀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어이없는 일처럼 여겨진다.

벌써부터 디제이피 정부 안에 대북강경책을 선호하는 세력들이 포진하고 있는 것 같다. 통일부의 최고 책임자들은 물론이고 박태준 자민련 총재까지도 와이에스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가 나 같은 대북 유화론자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니 기가 찬 인식이다. 이런 흐름이 과연 김 대통령의 햇볕론적 대북정책과 만날 때 어떤 작용이 일어나게 될지 궁금해진다. 아니 염려된다. 다만 나의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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