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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외교무대 환대받은 DJ, 국내 개혁은 머뭇 / 한완상

등록 2012-10-28 19:34수정 2012-10-29 09:46

1998년 4월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아셈)에 참석한 김대중(왼쪽 둘째) 대통령이 하시모토 류타로(맨 왼쪽) 일본 총리를 비롯한 25개 나라 정상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취임 이래 첫 국제 외교무대에서 김 대통령은 ‘군사독재를 이겨낸 민주투사 정치인’으로 환대를 받았다.
1998년 4월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아셈)에 참석한 김대중(왼쪽 둘째) 대통령이 하시모토 류타로(맨 왼쪽) 일본 총리를 비롯한 25개 나라 정상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취임 이래 첫 국제 외교무대에서 김 대통령은 ‘군사독재를 이겨낸 민주투사 정치인’으로 환대를 받았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19
1998년 3월21일. 며칠 전 오재식(전 세계교회협의회 아시아 총무간사) 선생과 약속했던 대로, 나는 예춘호·이문영 선생과 박형규·김상근 목사를 점심에 초대했다. 예춘호 선생과 박형규 목사는 87년 ‘후보 단일화’를 지지했고, 이문영 교수와 김상근 목사는 ‘비판적 지지’에 속했다. 결국 둘로 분열된 민주화세력은 둘 다 실패했다. 두 김씨 모두 낙선했으니 말이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실패는 이 땅에서 극우반개혁세력의 득세를 의미하므로 혹여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이제 모든 민주세력은 힘을 모아 도와야 된다고 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실패할 역사적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의견에 대해 다소 다른 견해들이 나왔다. 예 선생은 당분간 그대로 지켜보자고 했다. 디제이의 당선에 힘을 쏟았던 김 목사는 벌써부터 실패 여부를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 교수도 김 대통령의 반개혁 보수인사 기용은 와이에스를 닮아서가 아니라 반디제이세력의 저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자구책이라는 김 목사의 의견에 동의했다. 또 문민정부의 실패는 경험 없는 아마추어들과 정치를 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는 문민정부의 실제와는 다른 평가였다. 초기에는 와이에스 주변에 아마추어들이 더러 있긴 했지만, 점차 경륜과 국정 경험이 지나치게 풍부한 냉전보수 기술관료와 원칙 없는 전문가에게 둘러싸인 게 문제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직도 87년 대선의 불신이 깊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 사이의 작은 차이를 극복하지 않고서 한반도의 평화·지속적 국내 개혁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협력과 단합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음을 안타깝게 느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민주적 자세가 아쉽다. 목숨 걸고 민주화 운동을 같이한 사람들끼리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또다시 수구냉전세력이 디제이 정부도 실패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4월2일, 새정치국민회의의 한화갑 원내총무와 만났다. 8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난 지 18년 만에 사형수 디제이는 당당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고 지금 그의 가신 중에 가장 원숙한 정치인과 마주한 것이다.

그간 그의 정치력은 성장했다. 특히 듣는 내공을 쌓은 것 같다. 나는 김 대통령의 카리스마가 탁월한 나머지 평화도 개혁도 혼자서 다 해낼 수 있다고 속단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바로 와이에스가 빠졌던 오류이기도 하다. 또 와이에스가 정치적 반대세력을 너무 가볍게 여겼다면, 디제이는 너무 두려워하고 소심해서 오류가 우려된다고 했다.

4월5일, 김 대통령이 영국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아셈회의)에 참석한 뒤 귀국했다. 취임 이후 첫 국제 외교무대에서 특별한 환대를 받아서인지 자신감을 되찾은 듯 보인다. 그런데 국내 개혁전쟁에서는 여전히 너무 소극적이다. 물론 와이에스의 무모함에 견주어 마음이 놓이긴 하지만, 개혁은 집권 초기에 확실히 추진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초기부터 합리적 보수인사들을 적절히 활용해 개혁전쟁에 과감하게 참여시켜야 한다. 그런데 여기도 위험이 따른다. 전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하면 그들은 언제나 카이사르(시저)의 브루투스로 돌변할 수가 있다. 그러기에 개혁전쟁의 장수들은 신념·경험·성실성을 공유한 동지가 되어야 하고 이들이 개혁의 튼튼한 몸통 구실을 해야 한다. 튼튼한 개혁 몸통이 있어야 좌우에 합리적인 전문가들을 날개로 활용할 수 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4월6일에는 남궁진 의원(새정치국민회의)과 만나 93년 국회 외통위에서 벌어졌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때 여당의 이세기·박정수 의원 등이 통일부총리인 나의 햇볕론적 접근을 신랄하게 공격하자 야당이었던 남궁 의원이 오히려 나를 옹호해주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때 냉전투사 노릇을 했던 박 의원이 지금 국민의 정부 초대 외무장관이 되지 않았는가.

4월9일, 이문영 교수와 점심을 나누며 우직하리만큼 견고한 그의 디제이에 대한 충정을 확인했다. 그는 1300여년 민족의 수난사가 곧 호남 탄압의 역사였다며 부당하게 억압당해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간 설사 민주화를 거역했거나 무관심했던 호남 사람이라도 국민의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강변한다. 내가 염려하는 디제이피연합에 대해서도 1300년 만에 맞은 집권의 호기를 잡기 위해선 필요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

과연 목숨 걸고 싸웠던 민주화의 큰 장수를, 집권한 김 대통령이 이 시점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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