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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박지원 대변인 ‘전향적 대북관’에 안도 / 한완상

등록 2012-11-01 19:29

1998년 8월10일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종필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료와 통일고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시 대비 훈련인 을지연습 준비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필자는 박지원 대변인 등 청와대 참모들과 남북관계 의견을 나눴다.
1998년 8월10일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종필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료와 통일고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시 대비 훈련인 을지연습 준비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필자는 박지원 대변인 등 청와대 참모들과 남북관계 의견을 나눴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23
1998년 7월23일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오랜만에 청와대 만찬에 갔다.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함께 고초를 겪었던 옥중 동지들을 위로하는 자리였다. 모두들 감개무량한 모습이다.

나는 문득 지난 문민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는 감옥이야”라고 갑갑해했던 와이에스의 얘기가 떠올라, 청와대와 감옥의 유사점과 다른 점을 얘기했다. ‘감옥은 인간의 자유와 희망을 동시에 잔인하게 빼앗아가지만, 청와대는 국민에게 희망과 자유를 불어넣어주는 따뜻한 감옥이다. 그래서 청와대 지붕은 희망처럼 파랗다’고 했다. 그러자 옆자리의 한승헌 감사원장이 재치있게 내 말을 받아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청와대 감옥은 들어올 때는 기분 좋지만 진짜 감옥은 들어갈 때 기분 나쁘다. 그런데 청와대는 나갈 때 기분 나쁘지만, 감옥은 나갈 때 기분 좋다.’ 디제이가 청와대를 나갈 때도 웃으며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주위를 둘러보니, 함께 고생했던 동지들 중에 서남동 목사, 김녹영 전 의원, 유인호 교수가 안 보인다. 그들은 벌써 유명을 달리했다. 만찬이 끝나고 나오려는데 이희호 여사께서 따로 한번 만나자고 하신다.

7월24일 오후 김순권 박사에게 북한 옥수수 심기 기금으로 1000만원을 전달했다. 저녁에는 자유총연맹 이사장으로 취임한 양순직 자민련 상임고문을 만났다. 항상 냉전수구인사들이 차지했던 자유총연맹의 수장에 디제이가 예춘호 선생과 민주화 투쟁을 함께 했던 그를 임명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양 이사장은 총연맹을 반북반공 조직에서 이름 그대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단체로 탈바꿈시키겠다고 했다. 그는 대쪽 같은 정의파이기에 큰 기대를 걸고 싶다.

8월9일 안병무 박사 등이 세운 향린교회에서 8·15 기념 설교를 맡아 사도 바울의 원수사랑 선교와 햇볕정책을 연결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명령이 바로 악을 사랑하라는 뜻은 전혀 아님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악이 우리 속에도 존재하듯이, 원수 속에도 선이 존재한다는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 냉전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확신하듯이 우리만 선이고 원수는 악이라면, 예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명령은 악을 사랑하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함으로써 원수와 선한 관계, 곧 평화의 관계를 만들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원수를 사랑할 때 나타나는 놀라운 효과를 ‘머리 위에 숯불을 쌓는 셈’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이며, 이 뜻이 한반도 냉전 대결을 해소하는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원래 머리 위에 숯을 얹는 행위는 죄를 강제로 자백받기 위한 고문행위였다고 한다. 그런데 바울은 이를 양심의 작동 효과를 내는 사랑 행위로 해석한 것 같다. 원수 속에 꽁꽁 얼어붙다시피 한 선한 마음, 곧 양심이 상대방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제대로 작동하게 된다는 진실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런 양심의 작동은 원수 간의 증오의 관계를 대화와 화해의 관계로 바뀌게 한다. 그래서 마침내 악순환은 선순환이 되고, 적대적 공생관계가 우호적 상생관계로 아름답게 변화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국민의 정부가 표방하는 햇볕정책의 본질도 남북의 냉전제도와 냉전의식을 모두 녹여줄 ‘숯불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복음의 진리를 한국 기독교인들이 진실로 깨닫게 된다면, 예수를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북한을 악으로만 정죄하는 냉전식 삶을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한국 교회, 특히 대형교회일수록 냉전근본주의와 밀착되어 있기에, 숯불의 힘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세우는 일에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앞장서야 한다. 앞으로 더욱 외치려고 한다. 숯불의 힘은 복음의 힘이요, 사랑의 힘이다. 이 힘으로 냉전동토에 햇볕을 더욱더 따뜻하게 비추어야 할 것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8월10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하는 전시 대비 을지연습 준비회의에 참석했다. 서울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끔찍하게 파괴되는 가상 영상도 보았다. 디제이는 다소 피곤해 보였다. 박지원 대변인은 내가 며칠 전 <정범구의 세상읽기>(KBS 2TV)에 출연해서 ‘8·15 민족대축전, 국민의 정부의 통일정책 그리고 개혁과 지식인’을 주제로 대담한 방송을 보았다며 “퍽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디제이의 가장 가까운 참모인 그가 남북관계에 대해 생각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듯해 다행스럽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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