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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평양행 막은 ‘급박 사정’은 김정일 권력승계 / 한완상

등록 2012-11-07 19:49수정 2012-11-08 10:09

1998년 9월5일 북한은 제10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주석직을 폐지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재추대함으로써 김일성 주석 사후 권력승계를 매듭지었다. 필자는 앞서 8월21일 베이징에서 만난 전금철 북한 정무원 책임참사가 암시했던 ‘평양의 급박한 사정’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1998년 9월5일 북한은 제10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주석직을 폐지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재추대함으로써 김일성 주석 사후 권력승계를 매듭지었다. 필자는 앞서 8월21일 베이징에서 만난 전금철 북한 정무원 책임참사가 암시했던 ‘평양의 급박한 사정’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27
1998년 8월24일 오후 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만났다. 베이징에서 전금철 북한 정무원 책임참사와 만난 사실, 대화 내용, 특히 북한 당국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몇 가지 문제의 요점을 들려주었다. 그중에서도 지난 4월 비료회담 결렬을 북한 당국은 매우 아쉬워하면서 그로 인해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을 매우 고약한 흡수통일 술책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자 임 수석은 전 참사가 강경파요 냉전인사라서 곧 그만두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번 베이징 대화에서 청와대가 참고하고 성찰해야 할 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빛을 발하려면 무엇보다 디제이피(DJP) 체제의 한계를 하루빨리 극복해내는 것이 시급하다.

나는 임 수석이 내가 전한 대화 내용을 김 대통령에게 심도있게 보고해주기를 기대했다. 비록 개인적인 신념에서 했지만, 햇볕정책이 결코 위장된 흡수정책이 아니란 사실을 북한의 대남정책 당국자에게 설득했다는 점이 디제이에게 꼭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날 저녁 늦게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안기부의 라종일 차장과 만나 베이징 대화를 놓고 좀더 솔직한 의견 교환을 했다. 그는 전 책임참사가 제기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해 내가 한 대답을 듣고 퍽 놀라워하면서 열린 마음으로 이해해줬다.

8월31일. 북한은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평양 당국은 인공위성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국제사회는 이를 위성이 아니라 장거리 미사일 개발 실험으로 보는 듯하다. 미국과 일본은 이번 발사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에 놀라고 당황하는 듯하다. 특히 한국의 냉전세력들은 경악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는 미리 확인한 것 같다. 북한은 김정일의 권력기반을 확실히 다지기 위해 이른바 ‘강성대국’의 신호로 일종의 무력시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베이징에서 전 책임참사가 암시했던 비상한 사태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북-미 관계나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나는 판단했다. 제네바 합의 사항 중에는 미사일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이 발사로 미국 정부를 난처하게 한다면 북한 당국은 도대체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디제이 정부에는 무슨 신호를 주고자 하는 것일까? 조만간 또 북에서 어떤 충격적 조처를 터뜨리지 않을까 적이 긴장된다.

9월6일. 북한은 전날 밤 최고인민회의에서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첫째는 김정일을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추대했다. 국방위원장 자리를 국가를 대표하고 총괄하는 최고 지위로 격상했다.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주석 자리에는 취임하지 않았다. 주석은 오직 김일성뿐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군을 완전히 장악했다. 군부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전적으로 통솔해 나갈 것이다. 또 정무원을 내각으로 개편했다. 경제 테크노크라트들에게 실권을 갖게 할 것 같다. 안으로는 군부를 장악해 강성대국을 이룩하고 밖으로는 경제의 문을 열어 실리를 챙기려는 듯하다. 일종의 북 나름의 정경분리책을 내놓은 셈이다. 그렇다고 남북 당국간 대화의 물꼬를 터놓은 것 같지는 않다. 남쪽 정부가 정경분리책으로 먼저 북의 경제난 극복에 협조한다면 북에서도 호의적으로 나오겠지만, 핵개발 등 경제 외적 문제에서는 대화를 선호하지 않을 것 같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둘째로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헌법을 개정했다. 이는 경제 분야에서 변화의 바람을 예고한다. 그 변화를 이끌어갈 주체로 대외경제위원회 대신 정무원을 내각으로 개편한 것 같다. 개정 헌법에는 ‘독립채산제 실시와 원가·수익성 개념의 도입, 개인 소득범위 확대, 특허권 보장, 주거와 여행의 자유권 규정(주민의 경제생활에 관련된 자유권), 국가 이외 사회협동단체도 대외무역 주체가 될 수 있음, 특수경제지대 안에서 기업 창설과 운영을 장려함’ 등을 새롭게 명시했다.

북한은 당장 미국의 대북 경제봉쇄(엠바고) 해제에 외교력을 집중할 것 같다. 부분적이나마 시장경제의 특성을 수용할 의지도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북한도 중국식 개방경제 쪽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나는 이제야 지난달 베이징에서 전 책임참사가 나의 평양행 연기를 요청하면서 얘기한 ‘평양의 바쁜 형편’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평양은 지금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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