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여군’ 오 대위의 친구, 재판에서 당시 상황 대신 증언
‘다 찔러’ 조언에 “노 소령 아버지가 장성 출신…소용없다”
‘다 찔러’ 조언에 “노 소령 아버지가 장성 출신…소용없다”
“여군 여군 여군!그놈의 여군 비하 발언 듣기 싫고 거북했습니다. 제 억울함 제발 좀 풀어주세요. 누구라도. 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오아무개 대위 유서 중)
2013년 10월15일. 오 대위는 부대 인근의 강원도 화천군 청소년 야영장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음악을 틀어놓은 채 한 시간 반 동안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자동차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녹화됐다.
25일 인터넷언론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오 대위의 일기와 유서 전문, 그리고 공판에서의 가족, 친구, 동료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오 대위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직속상관인 노아무개 소령의 가혹 행위와 성폭력의 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월17일 오 대위의 컴퓨터 메모에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극으로 치닫는 모욕…. (부하) 병사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고, 그러면서 하나를 넘어가질 않는다. 말투, 자세, 업무, 지식, 태도 다 맘에 안 드시나 보다. 진짜 미래가 없다”고 적혀 있다.
노 소령의 성폭력과 모욕은 업무에서의 부당한 지시와 함께 나타났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빽하시거나 찢어버리시니까”(2013년 2월15일) 등 관련 내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심지어 노 소령은 불교 신자인 오 대위에게 매주 교회에 나오라고 요구했다. 무엇보다 오 대위를 힘들게 한 것은 여성 차별적 모욕이었다. 노 소령은 “이래서 여군은 쓰는 것이 아니다. 너 같은 새끼가 일을 하니까 군대가 욕을 먹는다”는 폭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냈다.
노 소령이 성관계를 언급한 2013년 7월12일, 오 대위는 같은 사건을 업무용 컴퓨터와 일기에 모두 남겼다. 컴퓨터 메모엔 “자는 시간 빼고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그 의도도 모르나? 같이 자야지 아나? 같이 잘까? (힐끔 반응 보더니) 나도 원하지 않아. 그러면 실무자와 참모 관계가 안 되니까”라는 노 소령의 발언이 그대로 적혀 있다. 같은 날 일기엔 “‘나랑 잘래?’, 이건 심하지 않은가. 치욕적이다. 저 사람은 도대체 날 얼마나 우습게 보면 저런 저질 비(B)급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한 것일까?”라는 오 대위의 솔직한 감정이 드러나 있다.
재판 과정에서 가족과 친구들은 오 대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대신 증언했다. 오 대위의 아버지는 “회식 자리에서 참모(노 소령)가 ‘하룻밤만 자면 군대 생활 편하게 할 건데 그 의도도 모르나?’라면서 성희롱을 하더라고 했다”고 말했다. 친구 박아무개씨도 “‘회식 자리에서 다리를 더듬고 노래방에서 안고 가슴 만지고 그런다고 너무 괴롭다’고 했다. ‘다 찔러’(다 보고해)라고 하니까 ‘군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고 그 사람 아버지가 장성 출신이라 빽 있으니 소용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노 소령은 오 대위의 업무에 대해 자주 지적했지만, 부서 동료들은 오 대위를 성실한 장교로 기억했다. 공판에서 동료들은 “야근, 주말 근무를 마다하지 않으며 병사들과 얘기도 많이 하는 좋은 사람”,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분”이라고 진술했다.
노 소령 쪽에서는 여전히 오 대위의 자살이 남자친구와의 갈등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노 소령이 근무한 15사단의 부사단장은 오 대위 가족들에게 “한 무속인이 ‘저(오 대위)는 잘 있으니 노 소령을 풀어주라’고 했다”는 말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성추행 및 가혹행위 등으로 자살한 여군 오아무개 대위 추모제’가 열린 24일 저녁 서울 태평로1가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시민들이 고인의 넋을 위로하며 헌화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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