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지금은 대한민국의 무상복지 정책 전반을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국고가 거덜나고 있는데 ‘무상 파티’만 하고 있을 것이냐.”
홍준표 경남지사가 지난 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예산 편성을 둘러싼 논란 가운데 새누리당이 제기한 ‘무상복지’라는 용어는 정부·여당과 보수세력이 복지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들이 쓰는 ‘무상복지’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제34조 1항)를 보장할 ‘국가의 의무’보다, 국민들이 ‘돈 안 내고 공짜로 혜택만 챙기는 것’이라는 쪽에 무게를 더 싣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사실 정치권에서 ‘무상’이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쓴 원조는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창당 때부터 무상교육과 무상급식, 무상의료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복지가 무엇인지 개념조차 희박했던 그 무렵 ‘무상○○’은 복지 제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이름이었다. 10년 뒤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무상급식’을 내세워 이겼고, 제1야당은 보편적 복지를 강령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무상○○’은 복지 확대가 보편적인 상식이 된 그 무렵 그쳤어야 했다. 하지만 무상급식으로 선거에서 ‘재미’를 본 야당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3무1반’(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으로 또 한번 ‘무상’을 꺼내들었다. 지난 지방선거 땐 ‘무상버스’ 공약까지 나왔다. 여당과 보수세력은 ‘무상복지 포퓰리즘’이란 자극적인 딱지를 붙여 마치 고무신 선거, 막걸리 선거처럼 선거에 이기려고 복지를 공짜로 제공하는 것인 양 공격했다. ‘무상’의 어감은 점차 ‘복지=공짜’라는 식으로 변질됐고,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무상복지’가 성립 가능한 단어인가? 복지의 재원은 세금이다. 민주노동당도 ‘무상○○’을 주장할 때 부유세 도입이라는 그 나름의 재정 대책을 같이 제시했다.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이,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부담해 다 같이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10여년 전 우리 사회에 ‘복지’의 개념을 가장 쉽게 전달했던 ‘무상’이란 단어가 오히려 복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것 자체는 씁쓸한 일이지만, 이런 공격을 받으면서도 ‘무상복지’를 입에 올리는 야당의 모습은 답답하다. 수명이 다한 ‘무상’이라는 표현은 접고, 이제 복지의 다른 이름을 찾을 때가 됐다. 보편복지, 협동복지, 의무급식, 연대보육…. 복지의 가치와 철학을 담은 새 이름 찾기가 복지논쟁의 또다른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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